주간동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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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경영권 다툼 이어 ‘화씨 9/11’ 배급 거부로 대박 날려 … 거액 들인 영화마다 흥행 참패

  • LA=신복례 통신원 borae@hanmail.net

    입력2004-08-05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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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디즈니가 배급을 거부했으나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린 ‘화씨 9/11’의 포스터.

    올해 월트디즈니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면 “정말 되는 일이 없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지난 3월 월트디즈니 연례 주주총회를 전후해서는 마이클 아이즈너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과 그를 퇴진시키려는 반대파 사이의 까발리기식 권력투쟁이 연일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아이즈너 회장 축출운동을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디즈니 창업자의 조카 로이 디즈니였다. 아이즈너 회장이 1억2000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마이너스 5%의 수익률을 기록할 만큼 실적이 부진했다는 건 그래도 점잖은 비난이었다. 수위를 높여 2002년 디즈니의 주가가 16% 추락했지만 이사회는 최고경영진 5명에게 4000만 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보도가 뒤이어 터져나왔고, 주총 직전에는 아이즈너 회장이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썼다는 판공비의 내역과 규모까지 공개됐다.

    그래도 아이즈너는 살아남았다. 주주들의 요구에 굴복해 회장직을 내놓고 CEO직만 유지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지난 5월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낙선을 겨냥해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의 배급을 거부해 사전검열이라는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화씨 9/11’은 디즈니의 배급 거부를 시작으로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두 달 가까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더니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넘어서는 대박을 터뜨렸다. 디즈니에 개인 돈 600만 달러를 주고 이 영화를 사들인 제작사 미라맥스의 공동회장 하비와 보브 웨인스타인 형제가 막대한 수익을 올렸음은 물론이다. 속이 쓰렸는지 월트디즈니는 웨인스타인 형제에게 ‘화씨 9/11’ 수익금을 개인적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데 합의하지 않을 경우, 달리 말해 수익금을 나누지 않으면 앞으로 미라맥스에 영화를 배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제작비도 못 건진 영화 수두룩

    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디즈니가 제작한 영화 '킹 아더'.

    그리고 7월 중순, 올해 개봉한 디즈니 제작 영화들의 흥행 성적표가 공개됐다. 한마디로 “죽을 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돈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영화는 7월7일 개봉한 ‘킹 아더’였다. 중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의 전설을 정치•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서사극으로 모두 1억2000만 달러를 들였다. 하지만 개봉 첫 주말 3일간의 흥행수익이 1500만 달러에 그쳤고, 12일간의 총 박스오피스는 3810만 달러였다. 흥행 대참패였다. 재키 챈(성룡)이 주연을 맡은 액션 대작 ‘80일간의 세계일주’(6월16일 개봉)는 1억1000만 달러의 제작비에도 첫 주말 박스오피스가 680만 달러였다. 총 박스오피스 2200만 달러를 기록하고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무참한 결과였다.

    그나마 다행인 일은 억만장자인 필립 안슐츠가 제작비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디즈니는 배급권과 마케팅 비용으로 5000만 달러 정도만 썼다는 점이다. 역시 1억1000만 달러를 들인 웨스턴 뮤지컬 애니메이션 ‘홈 온 더 레인지(Home on the Range•4월2일 개봉)’는 4840만 달러로 반타작도 못했다. 1836년에 있었던 전설적인 텍사스 알라모전투를 소재로 한 제작비 1억 달러의 초대형 액션 서사극 ‘알라모’(4월9일 개봉)는 ‘80일간의 세계일주’와 맞먹는 올해 최악의 박스오피스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박스오피스는 2500만 달러였다. 장거리 경주의 전설 프랭크 T. 홉킨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액션 어드벤처 ‘히달고’(3월5일 개봉)는 역시 1억 달러에 육박하는 제작비를 들여 65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한마디로 1억 달러 넘게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내거는 것마다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알라모'.

    제작비를 능가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한 영화는 10편의 개봉작 중 겨우 3편에 그쳤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스포츠 실화극 ‘미라클’(2월6일 개봉)과 코엔 형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블랙 코미디로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레이디킬러(The Ladykillers)’(3월26일 개봉), 그리고 2000만 달러 예산의 코미디 ‘10대 드라마 퀸의 고백(Confessions of a Teenage Drama Queen)’뿐이다. 물론 이 가운데 대박을 터뜨린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쿡 스튜디오 회장 자리 보전 ‘불투명’

    디즈니가 이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올해의 야심작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영화가 현재 세 편 정도 있다. 하나는 7월30일 개봉한 ‘빌리지’이고, 또 하나는 11월 개봉 예정인 ‘인크레더블(Incredible)’, 그리고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물속의 삶(The Life Aquatic)’ 이다. ‘빌리지’는 영화 ‘식스 센스’로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서스펜스 스릴러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작품이다. ‘인크레더블’은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북미 흥행기록을 세운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이다. ‘물속의 삶’은 ‘로얄 테넌바움’을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으로 빌 머레이와 오웬 윌슨이 바다를 항해하는 부자관계로 나온다. 디즈니가 이들 영화를 통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는 때가 돼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80일간의 세계일주'.

    어쨌든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30억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리면서 기업 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디즈니로서는 올해의 슬럼프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영화계 소식통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통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딕 쿡 회장조차 요즘 들어선 의기소침해져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내놓는 영화마다 죽을 쑤며 바닥을 헤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업계 전문가들은 젊은 관객층에게 잘 먹히지 않는 대형 서사극에 매달린 것을 가장 큰 실패의 원인으로 꼽는다. 더군다나 러셀 크로나 브래드 피트와 같은 흥행력이 있는 스타들을 캐스팅하지 않은 것도 가뜩이나 서사극에 흥미 없는 젊은층을 붙잡지 못한 한 요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스타들을 기용했을 때 줘야 할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출연료와 예상 수익을 놓고 저울질해봤을 디즈니는 스타보다 이제 주목받기 시작하는 신인들, 그리고 지금은 슬럼프에 빠졌지만 재기를 노리는 배우들을 기용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뒀다. 과거 그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 악재 연발 ‘죽을 맛’

    주주들의 요구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즈너.

    하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2002년 마흔 살 슈퍼 루키의 메이저리그 실화로 감동을 안겨주었던 데니스 퀘이드를 ‘알라모’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지만 전쟁 액션 시대극에 카리스마가 없는 배우를 기용한 것이 패인 중 하나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물론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디즈니가 만든 전쟁 서사극의 대부분에서 주인공들은 막바지에 죽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이라크 전쟁터에 보내놓고 가슴을 졸이는, 또 이라크 테러집단에 미국인이 참수됐다는 소식을 들어야 하는 미국인들로선 극장에까지 가서 보고 싶은 내용의 영화는 아닌 것이다.

    쿡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은 인터뷰 때마다 “지난 4, 5월 뉴욕 양키스의 스타 데릭 지터가 32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것 때문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직후 안타 행진을 다시 시작한 것처럼 나도 곧 슬럼프를 극복하고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영화업계 종사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만드는 영화마다 실패하다 자신이 기획한 ‘앵커맨’의 히트를 앞두고 드림웍스에서 쫓겨난 뉴라인 시네마의 마이클 드 루카 프로덕션 책임자와 ‘스파이더 맨’으로 우뚝 서기 전까지 여자애들이나 보는 영화를 만든다며 조롱을 받아온 컬럼비아 픽처스의 에이미 파스칼 사장은, 과연 쿡 회장이 홈런을 칠 때까지 디즈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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