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보내줄게 미국 가지 말라” 회유](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06/17/200406170500048_1.jpg)
미 의회에서 북한의 생체실험과 필로폰·위조달러 제조 등에 대해 증언하려다 모 기관의 회유로 미국 방문이 좌절된 A씨.
왜 이런 오보를 내게 되었는가. A씨의 출국을 이틀 앞둔 6월3일 기자는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미국 비자가 붙어 있는 A씨의 단수여권을 보았고, 이 여권을 그가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에 분실신고됐다는 관계당국의 주장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A씨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자신을 소개해줘 생체실험 기사가 나오게 한 한국계 미국인 B씨의 주선으로 미국에 가기 위해 2월28일 단수여권을 발급받고 B씨가 가져온 초청장을 첨부해 주한 미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보류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비자를 신청하기로 한 날 두 사람을 함께 만났을 때 A씨는 “모 기관에서 여권을 달라고 해서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B씨가 “왜 기관에서 개인의 여권을 달라고 하느냐. 문제를 삼겠다”고 화를 냈는데 이후 모 기관은 A씨에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이에 대해 모 기관 관계자는 “A씨가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또 언론에서 떠들면 문제가 될 것 같아 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기자는 A씨의 출국 실패에는 모 기관의 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제 발로 여권 분실신고 후 거짓말
그런데 A씨는 B씨와 기자 몰래 송파구청에 여권 분실신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내 욕심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하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A씨는 북한에 있을 때 1남1녀의 아버지였다. 한국에 온 뒤 그의 딸도 탈북에 성공했다(2002~2003년쯤, 정확한 시기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 무렵 A씨는 모 기관의 대북공작에 참여, 잘 알고 지내던 조선족으로 하여금 북한에 들어가 북한군 미사일에 관한 문건을 빼내오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두 번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오기 전 장기간 중국에 머물렀던 A씨는 당시 위조 중국여권을 만드는 조선족에게 몸을 의탁했는데, 이때 그의 누이와 가까워졌다. 얼마 뒤 A씨는 여기서 만든 위조 여권으로 중국을 떠나 제3국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그곳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A씨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중국에 가게 된 사실을 무척 좋아했다. 탈북한 딸과 신세 진 조선족 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중국에 간 그는 공작 임무를 하는 한편으로 딸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놓고 조선족 여성도 만났다. 그런데 두 번째 중국 방문을 하고 돌아오자 모 기관이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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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비자.
그리고 1년 가까이가 지난 올해 초 A씨는 B씨를 만나 미국행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비자 발급을 1차 거부했던 미대사관에서 4월1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A씨는 바로 미국에 가지 않았는데 이유를 묻자 “모 기관이 자꾸 가지 말라고 해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B씨는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에 나와 A씨를 설득했고 이에 A씨는 미국행 의지를 거의 굳혔다. 이때 단수여권으로 중국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모 기관은 그에게 “중국 비자를 받기 쉬운 복수여권을 내줄 테니 미국행을 포기하라”고 회유했다.
마음이 다시 크게 흔들린 A씨는 B씨가 비행기표를 마련하는 사이 송파구청을 찾아가 단수여권 분실신고를 내놓고 입을 닫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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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발급된 단수여권
“필로폰 만들어 팔았다” 주장
A씨는 그러나 “복수여권을 신청한다고 할 때 여권 신청 목적란에 ‘탈북자인 딸을 만나러 중국에 간다’라고 쓸 수는 없으므로 결혼으로 쓰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것을 갖고 그런 주장을 한다. 그들은 또 ‘우리 민족 문제는 우리끼리 논의해야지 왜 외국에 가서 떠들어야 하는가’라며 열심히 회유했다. 관계자와 대질을 시켜주면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까지가 A씨의 미국행이 좌절되기까지의 자초지종이다. 그렇다면 A씨는 어떤 정보를 갖고 있기에 모 기관은 A씨의 미국행을 막으려고 그렇게 회유한 것일까. 첫째는 생체실험 부분이다.
A씨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통해 북한의 생체실험을 폭로한 후 모 기관은 전문가를 대동하고 R호텔에서 A씨를 만나 무려 10시간 동안 디브리핑(debriefing·비밀 진술을 듣는 것)을 했다. 이 디브리핑은 A씨의 주장 중에서 거짓을 찾아내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던 것 같다. 관계자의 말이다.
“디브리핑 때 A씨는 청산가리로 독가스를 만들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 쪽 화학자들은 ‘청산가리는 기화(氣化)가 잘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독가스를 만들 수 있느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A씨가 워낙 완강히 주장했고 A씨가 기억하는 성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어,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A씨가 갖고 있는 두 번째 정보는 마약 부분. A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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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미국 증언을 위해 노력해온 한국계 미국인 B씨.
북한이 아편이나 필로폰을 제조해 국제사회에 돌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에 대해 모 기관 관계자는 “A씨가 말하는 마약 건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사실이 아닐 수 있는가”란 질문에는 말끝을 흐리며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세 번째는 위조달러 부분인데 A씨는 이렇게 말했다.
“84년 나는 북한 중앙당 간부와 장령(장성)의 신분증을 만드는 일을 했다. 북한에서는 신분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위조를 하지 못하도록 특수하게 만든다. 그 무렵 중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이 나를 포함한 전국의 인쇄 전문가를 모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만들게 했다. 화폐 종이는 홍콩에서, 물감(잉크)은 일본에서 도입했다. 그러나 ‘오(誤)돈’이 너무 많이 나와 이 사업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리고 89년 다시 위조달러 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진짜 돈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위폐를 만들었다. 무역일꾼들은 이 위폐를 진폐와 섞어 감별 능력이 떨어지는 동남아 쪽으로 갖고 나가 사용했다.”
“어디든 달려가 실상 알릴 터”
미국은 초정밀 위조달러의 유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A씨의 증언은 충격적인데 모 기관 측은 A씨의 증언이 사실무근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초 A씨는 우리에게 ‘이것이 북한에서 만든 위폐’라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하여금 정밀 감식케 했는데 진폐로 밝혀졌다. 그제야 A씨는 ‘그 돈은 일본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하고 받은 것 중의 하나인데, 환전하기 위해 농협에 가져갔더니 유독 그 지폐만 위폐감별기에 걸려 튀어나왔다. 그래서 북한에서 만든 위폐일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왔다’라고 발뺌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과장하는 습성이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나는 탈북 후 중국에서 지낼 때 위조 달러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내 말을 믿지 않아 북한산 위폐를 보여주려다 그런 실수를 했다. 모 기관은 소영웅주의적인 내 실수를 근거로 내게 ‘위조달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하고 그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다. 그러나 모 기관이 뭐라고 하든 나는 위조달러 제작에 참여한 사실이 있다”라고 말했다.
생체실험과 마약, 위폐 문제와 관련해 A씨와 모 기관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A씨에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4월과 6월 A씨는 한국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인 미 육군 정보사(INSCOM) 산하 501 정보여단의 524 정보대대 팀을 만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았다. 기자는 이 대대 소속 H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한국어로 이뤄진 통화에서 H씨는 ‘501 정보여단 소속이다’는 것과 ‘A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시인했으나,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도 A씨에 대해 관심이 많다. 주한 일본대사관 정치과에는 북한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O씨 등이 있다. 이들은 주한 일본특파원들에게 종종 “누구를 만나면 북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덕분에 산케이 신문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다 먼저 A씨를 만나 생체실험 등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한국·미국·일본의 정보기관과 미국·일본의 언론은 일찌감치 A씨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는데, 한국 언론만 A씨의 존재와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그토록 애태우던 딸이 최근 제3국으로 빠져나와 난민 판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 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므로 나는 미국이든 어디든 달려가 북한의 적나라한 실상을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A씨가 미국 의회에 나가 위조달러 등에 관해 진술한다면 세계 언론은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모 기관은 왜 그렇게 열심히 A씨를 회유했을까. A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 기관의 A씨에 대한 판단이 틀린 것일까. 진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