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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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전하는 돈, 처음 생각한 금액이 맞다

[돈의 심리] 거듭 생각할수록 금액 줄이고 합리화… 제인 오스틴 소설에 교훈적 에피소드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6-04-05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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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돈은 처음 생각한 금액이 맞다. 생각하면 할수록 액수는 줄어든다. GETTYIMAGES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돈은 처음 생각한 금액이 맞다. 생각하면 할수록 액수는 줄어든다. GETTYIMAGES

    친척 어르신 한 분이 있다. 어렸을 때 굉장히 신세를 많이 진 분이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끔 얼굴을 뵈었지만,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가 점차 없어지면서 지난 20여 년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부조금을 보내려 했고, 내가 생각한 금액은 100만 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100만 원을 부조한 적이 없다. 가깝고 친한 사람의 애경사에 50만 원을 드린 적은 있다. 그것도 한두 번뿐이다. 하지만 이 어르신에게는 100만 원을 부조하고 싶었다. 어려서 내가 그분에게 도움받은 것, 그분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100만 원은 많은 돈이 아니다.

    ‘이성과 감성’ 존 대시우드의 고민

    다른 친지들이 부조를 얼마나 할 거냐고 서로 얘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100만 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보통 이런 반응이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50만 원이어도 충분히 마음이 전달된다.” “50만 원만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50만 원도 다른 친척들보다 훨씬 많은 금액일 테고, 내가 그 어르신을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이 전달될 것이다. 또 다른 친척들 부조금과 나의 부조금이 너무 차이가 나면 그것도 또 그 나름대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0만 원이면 충분할 수 있다.

    50만 원 부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또 다른 얘기를 듣게 된다. “30만 원도 충분하지 않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을 텐데.” 그 말을 듣자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생각한 돈이 어떤 식으로 줄어드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에피소드다. 



    헨리 대시우드는 두 번 결혼했다. 처음 결혼해서 아들 존 대시우드를 두었고,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해 딸 3명을 낳았다. 딸들은 모두 10대 소녀다. 헨리는 큰 영주였지만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그 재산은 모두 아들 존이 물려받게 돼 있었다. 지금의 아내와 딸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은 없었다. 헨리가 병들어 죽게 됐을 때 그는 아들 존에게 자기가 죽으면 아내와 딸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존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해서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존은 계모, 이복동생과 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악감정도 없다. 존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그들에게 잘해주려고 마음먹는다. 

    존은 이들에게 3000파운드를 주려고 했다. 당시 평생 일한 하인이 고령으로 은퇴하면, 주인은 그 하인이 죽을 때까지 매년 연금 식으로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하인에게 주는 연금이 1년에 6파운드 정도였다. 6파운드면 1년 동안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으니, 3000파운드면 정말 큰 금액이다. 여자 4명이 평생 동안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의 재산이었다. 

    하지만 존의 아내는 이 금액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들을 도와주는 건 좋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줄 필요는 없지 않나. 1500파운드만 줘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적게 주는 것보다는 많다 싶게 주는 편이 좋다. 그런데 1500파운드면 본인들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테고, 주위 다른 사람들이 봐도 그 정도면 많다고 여길 것이다. 1500파운드도 충분하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존은 1500파운드를 주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에서 헨리 대시우드의 세 딸. 출처 IMDB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에서 헨리 대시우드의 세 딸. 출처 IMDB

    3000파운드에서 0파운드로 

    그런데 생각은 계속 진행된다. 한번에 1500파운드라는 거액을 주는 것보다 매년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큰돈을 가지고 있으면 낭비해서 써버리다가 나중에 돈이 없어 힘들어질 수 있다. 아니면 사업을 벌이다가, 혹은 사기를 당해서 큰돈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1500파운드라는 목돈을 주기보다 1년에 100파운드씩 계속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1년에 100파운드씩 계속 주면 네 식구가 평생 동안 돈 걱정 안 하고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 방안에 다시 반대한다. 정기적으로 돈을 주면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받는 사람은 그 돈을 자기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으로 여기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 없이 그 돈을 원래 자기 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의견은 일견 일리가 있다. 그래서 존은 매년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주는 것보다 비정기적으로 돈을 챙겨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아니면 생각날 때마다 돈을 줘서 1년에 총 50파운드 정도면 되지 않나. 그만큼으로도 4명이 돈에 쪼들릴 일은 없다. 이렇게만 해도 4명을 잘 보살펴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충분히 잘 지킬 수 있다.

    그런데 1년에 50파운드 정도 돈을 주려고 하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세 딸들은 이번에 물려받은 게 없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받은 1000파운드 정도 재산이 있다. 1년에 들어오는 이자 수익 등이 50파운드 정도는 된다. 이 정도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인을 많이 쓰지 않고 따로 마차를 둘 필요도 없으니 돈 쓸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도 여자 4명이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나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고는 하지만 써야 할 돈도 많아 지금 있는 돈으로 부족할 수 있다. 그런데 여자 4명은 지금 수입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나를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가 그들을 도우라는 유언을 남기기는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나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고, 그 여자들만 아꼈다. 아버지가 그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은 것은 선대의 계약으로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기 마음대로 재산을 나눠줄 수 있었다면 나에게는 주지 않고 모두 그들에게 줘버렸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였는데, 내가 아버지의 유언을 꼭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존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인과 딸들에게는 이웃에게 베푸는 친절 이상의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 그랬다간 오히려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

    존은 분명 처음에 3000파운드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액수가 점점 줄었고, 결국에는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이 아까워서 고민한 것이 아니고, 돈을 줄이려고 고민한 것도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좋은 방법을, 주위 사람들에게 비판받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금액은 계속 줄었다. 존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고, 선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하다 보니 마음이 그렇게 흘러갔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존을 비난하려고 이런 에피소드를 쓴 게 아니다. 실제 사람 마음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에피소드다.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합리화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돈, 타인을 돕기 위한 돈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주겠다고 마음먹은 뒤 처음 떠오른 금액이 제일 크다. 그리고 생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금액이 줄어든다. 주기 아까워서, 주기 싫어서 줄어드는 게 아니다. 이정도도 충분하다는 생각. 그러다 끝까지 가면 결국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항상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게 돼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돈,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돈은 처음 생각한 액수가 맞다. 처음 떠오른 금액을 그냥 주는 게 최상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액수는 줄어든다. 액수가 줄어드는 걸 내가 좀 더 합리적으로 판단해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사람 마음은 이럴 때 액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합리화한다. 이 마음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으면 그냥 처음 떠오른 금액이 가장 맞는 액수라는 걸 인정할 수 있을 테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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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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