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 무장간첩 26명을 태우고 강원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으로 침투했던 북한 상어급 잠수함.
이러한 기자회견을 한 것 자체가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이다. 선전전의 일환인 만큼 하고 싶은 거짓말도 마음껏 쏟아냈다. ‘제3자’인 구글어스가 2006년에 찍힌 연어급 잠수정 사진을 공개했는데도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 연어급 잠수정 실체를 중심으로 북한의 잠수함정 전력을 정리해본다.
구글어스에 찍혔는데도 오리발
북한이 보유한 가장 큰 잠수함은 1500t인 로미오급(Romeo級)이다. 76.8m 길이의 이 잠수함은 1940년대 소련이 만든 타입-031 잠수함을 원형으로 한다. 냉전 시절 소련은 핵잠수함 건조에 전력하면서 중국 등 동맹국에 재래식 잠수함 건조기술을 제공했다. 1970년대 이 잠수함을 건조하게 된 중국은 1973~74년 북한에 4척을 수출했다. 냉전 시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은 타입-031을 조금씩 개량해 공산국가로 퍼져나간 이 잠수함을 ‘로미오급’이라고 통칭했다.
1975년부터 북한은 함경남도 신포의 미양도 조선소에서 2년에 한 척꼴로 이 잠수함을 자체 건조하기 시작했다. 1985년 2월 20일 동해에서 사고로 한 척을 잃어 현재는 22척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가 경제난을 겪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로미오급 30여 척을 포함한 40여 척의 퇴역 잠수함을 수입했는데, 이는 로미오급 등의 부속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해에 18척, 서해에 4척 배치된 로미오급은 중어뢰 발사관을 8개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은 독일에서 가져온 U보트 기술을 토대로 배수 톤수 1600t에 길이 75.8m, 중어뢰 발사관 6개를 가진 타입-613 잠수함을 만들었다. 이 잠수함 역시 조금씩 개량해 공산국가들에 퍼져나갔는데 나토군은 이를 ‘위스키급(Whiskey級)’이라고 통칭했다. 북한은 위스키급을 4척 도입했으나 지금은 오래돼, 서해에 배치해놓고 훈련용으로만 이따금 사용한다.
북한이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것은 1991년부터 건조하기 시작한 370t급(상어급) 잠수정이다. 이 잠수정은 1996년 9월 25일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에 좌초함으로써 실체가 완전 공개됐다. 상어급은 한미연합사에서 붙인 별명인데, 북한은 상어급 잠수정을 26척 정도 보유하고 작전에 따라 적절히 동서해에 배치해놓고 있다. 상어급 잠수정에는 4개의 중어뢰 발사관이 있다. 그러나 강릉으로 침투한 상어급은 공작원 침투가 주목적이어서 어뢰를 싣지 않았다.
1998년 6월 22일에는 속초 앞바다에서 75t인 북한의 유고급(Yugo級) 잠수정이 그물에 걸려 역시 실체가 드러났다. 이 잠수정은 1965년 유고슬라비아에서 건조돼 공산국가로 전파된 것이라 나토군은 ‘유고급’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크기가 너무 작아 중어뢰 발사관은 없다. 장거리 잠항도 할 수 없어 모선과 함께 다닌다. 북한은 자체 제작한 이 잠수정 2척을 1997년 베트남에 수출했다. 북한은 이 잠수정을 30여 척 보유하고 있다. 강릉 상어급 잠수정 사건 때 생포된 이광수 씨는 “북한은 로미오와 위스키급은 대형, 상어급은 중형, 유고급은 소형이라 부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란에 빌린 돈 대신 잠수정 공급
이씨가 귀순한 뒤 북한이 만든 잠수정이 130t짜리 연어급이다. 연어급도 한미연합사가 붙인 별명으로, 북한 이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이 이 잠수정을 보유하게 된 데는 이란과의 부채관계가 작용했다. 2007년 2월 북한과 이란의 고위관리는 3국에서 만나 북한이 이란에 지고 있는 부채 문제를 논의했다. 그해 5월 북한의 김영일 외무성 부상이 이란을 방문해 마누체르 모타키 외무장관과 같은 문제로 회담을 했고, 양측은 북한이 잠수정을 공급해 부채를 갚는 방안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는 우리 서해보다 폭이 좁은 페르시아 만(걸프 만)이 있는데 이곳 바다로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의 30~40%가 지나간다. 미 해군 5함대가 핵을 개발하는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 이 바다로 들어오려면 폭 55km, 평균 깊이 150m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이란 해군 처지에선 이 해협만 잘 막으면 미 5함대의 위협을 최소화하고, 원유 수송로를 끊어 서방세계를 압박할 수 있다. 이런 천해(淺海)에서 항공모함 등 수상함을 공격하는 데는 소형 잠수정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므로 이란은 북한에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위)북한이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 가디르급 잠수함. (아래)북한의 수출용 130t 소형 잠수정.
2008년 11월 25일 이란 국영 영어방송인 ‘프레스TV’에서 이란 국방부가 자국 기술로 제작한 카엠 잠수정을 진수했다고 보도했다. 카엠은 가디르와 동형이기에 서방세계는 이 잠수정을 가디르급이라고 통칭한다. 연이은 잠수함 진수에 만족한 듯 나자르 이란 국방장관은 이 TV에서 “이란은 모든 종류의 전함을 자체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란은 전략적인 지역인 페르시아 만과 오만해(海)의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주력군이다”라고 자랑했다.
이란이 진수한 잠수정의 제공국이 북한이라고 판단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일본 ‘교토통신’도 2008년 1월, 북한은 이란이 원하는 잠수정 4척을 제작해 제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도했다. 이후 이란은 가디르급 잠수정을 타고 대미(對美) 항전을 다지는 병사들의 유튜브(동영상)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한미연합사는 북한이 이란 수출을 계기로 건조한 연어급을 자국 해군에도 10여 척 공급해 동서해에 배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실수는 북한이 서해로는 잠수정을 침투시키지 않으리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경계작전을 하다 허를 찔렸다는 것이다. 북한은 천안함 침몰에 성공함으로써 이란 등 우호국에 연어급 잠수정을 더 수출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의 소행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 세계적인 압박을 받게 됐다. 경제가 어려운 북한이 이러한 압박을 피해 반미국가들에게 계속 연어급 잠수정을 수출하려면 어떻게든 연어급의 존재를 부정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북한 국방위가 코미디 같은 기자회견을 연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과 북한은 잠수정 커넥션과 거짓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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