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결과가 담긴 대북전단을 북한 쪽으로 날려보내는 탈북자 단체 및 납북자 모임 회원들(위). 5월 3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천안함 폭침 모략극 비난 군중대회.
“국경경비대가 5월 23일부터 ‘직일전투비상’에 돌입하는 등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다.”
탈북자 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가 5월 25일 북한 내 자체 통신원들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보도를 내보내자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북한이 전쟁을 선포했다’ ‘피란을 가야 한다’ ‘병무청에서 대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사재기로 마트마다 물건이 동났다’ ‘6월 1~4일 전쟁이 일어난다’ 등. 하지만 북한 각 가정에 있는 스피커를 이용하는 ‘제3방송(유선 방송망)’을 통해 오극렬 국방위원장이 담화 형식으로 밝혔다는 이 보도는 유언비어와 뒤섞이며 큰 폭발력을 얻었다.
“남한 비난 군중대회 소 닭 보듯”
우리 정부의 제주해협 봉쇄, 대북심리전 재개 등 대북 제재수단 발표 후 매일같이 구체적이고 살벌한 대응책을 쏟아내는 북한 내부에서 들려온 이 소식은 우리 국민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이 보도가 사실인지, 실제 북한 주민은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 평소 중국 접경에서 휴대전화 중계 통화로 북한 주민의 삶을 실시간 전해주던 각 언론도 천안함 사고 이후 북한 민심을 전하지 않고 있다.
과연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와 정부의 강력 대응방침 발표 이후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 사람들은 천안함 사고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알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주간동아’는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북한 정보원들과 수차례 통화한 탈북자 및 탈북자 단체 간부 5~6인에게서 북한 사정을 어렵사리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여러 채널을 통해 듣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전군과 주민에게 전투태세를 명한 것은 사실이나 전쟁 분위기가 조성되기는커녕 주민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내부통제가 강화되면서 정권에 대한 반발심만 심해지고 있다는 것. 다음은 자유북한방송, 성공적인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 정착인 신문, 북한동포 직접돕기운동(대북풍선단), NK지식인연대, 북한개혁방송 관계자와 북한 주민의 통화내용 중 공통부분만 정리한 것이다.
▼ 천안함 조사 발표 이후 북한 내부와 연락도 힘들어지는 등 통제가 강화됐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단속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 정권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보위부 요원이 밤에 가가호호 방문해 휴대전화를 단속하고, 집 안 수색도 한다. 그 때문인지 각 단체의 정보원 중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다. 최근 북중 국경 근처에 가도 탈북자를 거의 만날 수 없다. 북한 쪽도 그렇고 중국 쪽도 그렇고, 공안이 쫙 깔렸다. 접경지역 통제가 굉장히 심하다. 탈북자 처벌도 더 심해졌다. 하지만 주민과 통화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전파 단속이 심해졌지만 돈만 더 주면 된다. 통화가 계속되고 있다.”
▼ 천안함 사고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나.
“사고 직후 한 달 동안은 모르고 있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국경에 있는 주민들은 4월 중순 천안함이 바다 밑에서 인양된 뒤 처음 소식을 접한 경우가 많다. 중국에 있는 친척을 방문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 소문을 내는 식으로 북한에 퍼졌다. 그러다 5월 20일 북한 국방위원회에서 성명을 발표했고, 그것을 제3방송을 통해 북한 전체 주민에게 알렸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제3방송으로 알릴 수 없는 곳은 당 조직, 농장, 공장 단위로 모여서 공표하는 식으로 알렸다.”
▼ 북한 주민들은 천안함을 공격한 게 북한 측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사실 일반 주민은 (누가 저질렀든) 크게 관심이 없다. 그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환율이 어떻게 되느냐’ 등 돈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북조선이 했다는 건 짐작으로 다 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한 고위층과 통화했는데 ‘이미 우리가 한 거 다 알면서 왜 물어보냐’는 반응이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다만 ‘천안함 공격했던 군인에게 영웅 칭호를 줬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전쟁 터지면 김정일에게 복수하자!”
▼ 북한 당국은 ‘남한의 자작극’이라며 펄쩍 뛰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현재 각종 수단을 이용해 ‘남조선이 반공화국 모략책동을 한다’며 ‘떨쳐 일어나 싸워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남한이 자작극 만들어놓고 우리한테 책임을 씌우는데, 우리는 남조선 괴뢰군을 용서할 수 없다. 이번에 도발 일으키면 6·25 때 이루지 못한 복수를 하고 내부 통일을 이루자’ 이런 식이다. 또한 ‘싸워서 이길 수 있다, 우리(북)의 군사력이 대단하다’고도 선전한다. 제3방송을 통해서도 남조선을 엄청나게 욕하며 ‘이번 기회에 통일을 해야 한다’고 선전한다.”
▼ 주민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전투태세 명령을 내렸다는데 전쟁하자는 이야기 아닌가. 관련된 군중대회도 자주 열린다고 들었다.
“전투태세 명령이 떨어진 건 맞다. 제3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졌고, 당에서 직접 주민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투태세 지시에 북한 주민들은 ‘또 그거냐, 귀찮다’는 반응이다. 그런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말만 그렇게 했지 실제 훈련을 소집한 적도 없고,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도 없다. 화폐개혁 이후 밥 먹기도 힘들고 짜증스러운 상황이라, 군중대회 소집령이 떨어져도 핑계를 대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국경경비대가 특별 경계태세에 들어갔지만 그것도 표면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 한미합동훈련을 하면 반드시 대응 훈련을 했는데, 이젠 그런 훈련도 안 한다. 훈련할 여건이 안 된다. 부대를 기동하려면 기름 등이 필요한데 대단히 어렵다. 오히려 ‘이번에 전쟁해서 콱 망해라’ ‘이번에 김정일이 끝장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주민이 많다. 당이나 여러 조직에 엮인 주민들은 그저 ‘동원이나 빨리 끝나라’고 바랄 뿐이다.”
▼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 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데 신경 쓰는 사람 별로 없다. 하지만 고위층이나 좀 먹고사는 주민들은 북한 정권이 화폐개혁 실패로 극에 달한 내부 반발을 무마하고자 (천안함) 도발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민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단합을 이뤄보자는 속셈인 걸 주민들은 잘 안다. 문제는 이런 수법을 너무 많이 써먹어서 새로 긴장 정국을 조성하려 해도 정권의 의지가 밑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굶어죽는데 무슨 전쟁이냐’ ‘전쟁 일어나면 김정일에게 복수하고 식량창고 접수하자’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