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익스프레스 제공, CJ 제공]
동원F&B, 삼양식품도 입점 예정
지난해 10월 론칭한 알리익스프레스 ‘K-베뉴’에 다양한 한국 제품이 입점해 있다. [알리 홈페이지 캡처]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이 알리와 손잡은 배경에 햇반 매출 정체가 있다고 본다. CJ제일제당은 2022년 11월부터 국내 최대 온라인 플랫폼 쿠팡에서 로켓배송이 중단된 이후 신세계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 배달의민족 B마트, 11번가, 네이버 등 다양한 채널로 판로를 확대해 지난해 8504억 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햇반 매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2020년 5595억 원, 2021년 6880억 원, 2022년 8152억 원(소비자가 환산 기준)으로 꾸준히 20% 가까운 성장을 이어오다가 지난해 8504억 원으로 4.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해 CJ제일제당 관계자는 2월 초 연간 실적을 발표하는 콘퍼런스 콜에서 “알리나 테무를 이용하는 소비자 맞춤형 전략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느 플랫폼에 어떤 제품을 제공할지 믹스 전략을 고도화하는 것이 기본 전략 방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내 1위 식품기업 CJ제일제당의 알리 입점은 또 다른 식품기업의 입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3월 12일 동원F&B가 알리와 계약을 완료해 3월 안에 입점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삼양식품도 불닭볶음면 등 주요 제품을 4월부터 판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참치캔, 어묵, 식용유 등을 판매하는 사조대림도 이르면 다음 주 브랜드관을 오픈할 예정이고, 대상과 풀무원, 농심 등 다른 업체들도 입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직구 플랫폼 알리는 지난해 3월 한국 시장에 1000억 원대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배우 마동석을 모델로 기용해 대규모 마케팅에 나서는 한편, 극강의 가성비로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실제 500~1000원대 생활용품·의류·전자기기 등을 판매하는 알리는 가품, 개인정보 유출 같은 논란에도 초저가와 가성비를 무기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앱·리테일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2월 알리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818만 명으로 전년 동월(355만 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종합몰 앱’ 순위에서도 쿠팡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알리는 지난해 10월 한국 브랜드관인 K-베뉴를 론칭한 이후에도 입점·판매 수수료 무료 정책을 이어오며 상품 구성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근 사용자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플랫폼인 데다, 수수료 부담도 없어 입점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알리가 가공식품 및 신선식품으로 카테고리를 넓히는 이유로는 식품이 구매 주기가 짧아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에 좋고 잦은 방문을 유도한다는 점이 꼽힌다.
알리는 현재 자사 쇼핑 축제인 ‘3·28 행사’를 앞두고 K-베뉴 판매자를 대상으로 광고 프로모션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프로모션에 포함되면 앱 최상단에 노출되는 특혜를 받는데, 선정 조건이 네이버 상품 검색 시 최저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쿠팡을 비롯한 다양한 국내 유통업체는 알리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쿠팡·대형마트 모두 발등의 불
[각 사 제공]
최근 알리는 과일과 채소, 수산물, 육류 등 신선식품도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앞서 서울 근무 조건으로 신선식품 상품기획자를 채용한 데 이어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신선식품은 오픈마켓 형식으로 운영되며, 국내 중소 판매자로부터 해당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한다. 현재는 입점 업체 수가 많지 않지만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판매자들을 유인하는 최대 무기는 역시 수수료 무료 정책이다. 입점은 물론 거래 수수료도 받지 않아 판매자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평가다. 소비자 또한 수수료가 절감된 부분만큼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알리가 신선식품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국내 대형마트에도 비상이 걸렸다. 생활용품 등 공산품 판매가 저조해 신선식품이라는 본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 터라 대형마트의 위기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형마트는 이미 지난해부터 오프라인이 강점을 지닌 신선식품 위주로 주력 제품군을 배치하는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3월 리뉴얼한 연수점에 그로서리 매장을 확대하고, 매장 안에 신선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팜을 설치했다. 수산 매장에는 매주 직접 참치를 해제해 판매하는 ‘오더 메이드’ 공간을 마련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부터 매장 내 신선식품 판매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말 ‘그랑 그로서리’ 콘셉트 1호점으로 새롭게 오픈한 은평점은 전체 매장 면적의 90%를 그로서리 부문으로 채웠다.
홈플러스도 식품 매장을 ‘메가푸드마켓’으로 리뉴얼해 백화점 식품관 수준의 전문 매장으로 탈바꿈하며 그로서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 약 70% 수준인 대형마트 식품 매출 비중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일부 그로서리 전문 매장은 전체 매출의 80~90%를 식품군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가 전방위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자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공산품은 규제를 받지 않기에 저렴하게 팔아 소비자를 빨아들였듯이, 판매자마저 무료 수수료 등 파격 조건으로 확보해간다면 국내 유통·제조업계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비자 희생 발판 고물가, 진즉 낮추려 노력했어야”
국회에 계류 중인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법)에 이런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플랫폼법은 거대 유통 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 팔기,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다. 하지만 플랫폼법이 혁신을 옥죄어 국내 플랫폼업체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의된 14개 플랫폼법이 관련 기업들의 반대로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는데, 그 틈을 이용해 알리가 무섭게 성장하니 정부에 보호를 요청하는 상황”이라면서 “먼저 플랫폼법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국내 플랫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알리 열풍은 최근 고물가 현상과 관련 있다”며 “언제까지 소비자 희생을 발판으로 기업만 보호해줘야 하느냐. 한국 기업들도 진즉에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3월 13일 알리·테무 등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제재 방안을 내놓았다. 해외 플랫폼의 4대 피해 항목으로 △위해 식·의약품 △가품 △청소년 유해매체물(성인용품) △개인정보 침해 등을 선정하고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 해외 사업자는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종합점검과 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할 예정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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