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와인이 있다. 2018년 10월 13일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55만8000달러(약 7억3300만 원)에 낙찰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 콩티 1945년산이다. 로마네 콩티 자체도 가볍게 3000만 원을 넘는 초고가 와인이지만 이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20배 비싼 가격에 팔렸다.
당시 경매에서 낙찰된 1945년산은 프랑스 토종 포도로 만든 마지막 로마네 콩티였다. 이듬해부터 와이너리에서 병충해에 강한 미국산 포도를 접목해 사용했기 때문에 ‘진짜 프랑스 포도’로 만든 마지막 로마네 콩티가 돼버렸고 가치 역시 올라갔다. 줄어든 생산량도 희소성을 높였다. 현재 로마네 콩티는 한 해에 6000병가량 생산되는데 당시에는 608병만 만든 것이다. 고급 와인의 가격은 주식처럼 시시때때로 조정된다. 특히 고급 와인을 수집하는 컬렉터 시장이 따로 있어 로마네 콩티 같은 와인은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와인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언제일까. 와인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사적 측면을 봐야 한다. 포도가 익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기면 그 안으로 공기 중 효모가 들어간다. 효모는 포도의 당을 알코올로 바꾼다. 즉 와인의 탄생은 포도의 탄생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도의 흔적은 공룡들이 활약한 백악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약 1억4000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포도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어쩌면 공룡들은 자연 상태에서 발효된 와인을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학계에서는 농업이 시작될 무렵 인류가 와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본다. 특히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서 오래된 와인 유적지가 발견됐다. 실크로드 요충지였던 이 두 곳은 동서양이 만나는 지역으로, 백인을 지칭하는 ‘코카소이드(Caucasoids)’의 어원인 코카서스(Caucasus: 캅카스의 영어 이름) 산맥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와인 발상지로 불리는 이곳은 종교도 기독교다. 아르메니아 국민의 93%, 조지아 국민의 88.1%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두 나라 가운데서 ‘와인의 발상지’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유적을 기준으로 하면 조지아가 좀 더 가능성이 크다. 기원전 60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와인 및 용기 제조 흔적이 조지아의 코카서스산맥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현존하는 와인 관련 흔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도 지금과 유사하게 항아리를 사용해 와인을 빚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조지아에서는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항아리를 ‘크베브리’라고 부른다. 크베브리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조지아에서는 세속적 또는 종교적 행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밀봉된 크베브리를 개봉해 와인을 대접한다. 와인 저장고는 외부 진입이 적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잡균 유입이 제한되고 와인의 유지·관리도 용이하다. 우리가 김치를 겨우내 땅속 항아리에서 숙성시켰다가 꺼낸다면 조지아는 와인을 그렇게 하는 셈이다.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 저장고를 신성시하는데, 이는 과거 시어머니들이 곳간 열쇠를 소중히 관리한 것과도 유사하다.
조지아 와인을 서방에 알린 사람은 바로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이 조지아 와인을 추천한 것이다. 스탈린의 고향이 조지아인 만큼, 조지아 와인에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의 영향으로 지금도 상당수 조지아 와인이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최초 와인 산지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 있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와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방탕한 생활에 빠진 인간을 홍수로 심판한 이야기다. 노아는 120년에 걸쳐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이에 대비했고, 8명의 가족과 각종 동물을 한 쌍씩 배에 태웠다. 노아 덕분에 40일간의 대홍수에도 인류와 동물들이 멸종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방주는 아라라트산에 안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32㎞ 떨어진 해발 5137m의 활화산으로, ‘대(大)아라라트’와 ‘소(小)아라라트’ 두 봉우리가 있다. 지금도 산자락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노아는 아라라트산 자락에 표착한 후 물이 빠지자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단순히 기록으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고 지금도 와인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이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됐다. ‘최초의 양조 흔적’은 조지아에서, ‘최초의 와이너리 흔적’은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 위치 역시 노아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아라라트산에서 1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라라트산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간 분쟁 지역이다. 아르메니아는 민족 성산인 아라라트산은 물론, 노아의 방주까지 자신들의 국장(國章)에 넣어 기독교 국가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고대사 속 와인 이야기가 현대에도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술의 역사는 인류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공룡도 와인을 마셨을까
조지아에서는 예부터 항아리를 사용해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 오늘날 이 항아리는 크베브리로 이어져 사용되고 있다. [levan totosashvili]
와인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언제일까. 와인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사적 측면을 봐야 한다. 포도가 익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기면 그 안으로 공기 중 효모가 들어간다. 효모는 포도의 당을 알코올로 바꾼다. 즉 와인의 탄생은 포도의 탄생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도의 흔적은 공룡들이 활약한 백악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약 1억4000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포도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어쩌면 공룡들은 자연 상태에서 발효된 와인을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학계에서는 농업이 시작될 무렵 인류가 와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본다. 특히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서 오래된 와인 유적지가 발견됐다. 실크로드 요충지였던 이 두 곳은 동서양이 만나는 지역으로, 백인을 지칭하는 ‘코카소이드(Caucasoids)’의 어원인 코카서스(Caucasus: 캅카스의 영어 이름) 산맥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와인 발상지로 불리는 이곳은 종교도 기독교다. 아르메니아 국민의 93%, 조지아 국민의 88.1%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두 나라 가운데서 ‘와인의 발상지’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유적을 기준으로 하면 조지아가 좀 더 가능성이 크다. 기원전 60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와인 및 용기 제조 흔적이 조지아의 코카서스산맥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현존하는 와인 관련 흔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도 지금과 유사하게 항아리를 사용해 와인을 빚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조지아에서는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항아리를 ‘크베브리’라고 부른다. 크베브리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조지아에서는 세속적 또는 종교적 행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밀봉된 크베브리를 개봉해 와인을 대접한다. 와인 저장고는 외부 진입이 적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잡균 유입이 제한되고 와인의 유지·관리도 용이하다. 우리가 김치를 겨우내 땅속 항아리에서 숙성시켰다가 꺼낸다면 조지아는 와인을 그렇게 하는 셈이다.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 저장고를 신성시하는데, 이는 과거 시어머니들이 곳간 열쇠를 소중히 관리한 것과도 유사하다.
조지아 와인을 서방에 알린 사람은 바로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이 조지아 와인을 추천한 것이다. 스탈린의 고향이 조지아인 만큼, 조지아 와인에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의 영향으로 지금도 상당수 조지아 와인이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다.
성경 속 와인 이야기
노아의 방주가 안착한 것으로 알려진 아라라트산 전경. [위키피디아]
노아는 아라라트산 자락에 표착한 후 물이 빠지자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단순히 기록으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고 지금도 와인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이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됐다. ‘최초의 양조 흔적’은 조지아에서, ‘최초의 와이너리 흔적’은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 위치 역시 노아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아라라트산에서 1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라라트산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간 분쟁 지역이다. 아르메니아는 민족 성산인 아라라트산은 물론, 노아의 방주까지 자신들의 국장(國章)에 넣어 기독교 국가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고대사 속 와인 이야기가 현대에도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술의 역사는 인류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