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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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능력 확장하는 섬세한 로봇수술

비좁은 공간에서 암 조직 정교하게 제거… AI 활용한 빠른 진단도 가능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4-03-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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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공학이 발전하며 국내외에서 수술용 로봇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로봇보조수술로도 불리는 로봇수술은 일반적으로 최소 침습 수술, 즉 작은 절개를 통해 수행하는 수술과 관련 있다. 이를 통해 의사는 더 정밀하고 유연하게 다양한 유형의 복잡한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특히 머리, 목 같은 섬세한 부위에서 악성 종양을 제거하거나 절제하는 것은 경험이 풍부한 의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암 조직을 말끔히 제거하되 건강한 조직은 최대한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대신 이런 섬세한 수술을 하는 로봇이 등장한 이유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학 및 로봇공학 공동 연구팀은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의 로봇 전문 학술지 ‘RA-L(Robotics and Automation Letters)’을 통해 ‘종양 절제술을 위한 자율시스템(Autonomous System for Tumor Resection·ASTR)’을 발표했다.

    종양 제거하는 로봇 개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CMR서지컬 제공]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CMR서지컬 제공]

    연구팀은 “우리와 협력하는 많은 외과의사로부터 들은 문제는 종양을 정확히 절제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라며 “외과의사가 겪을 수 있는 ‘피로, 탈진, 시각적 방해 같은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에 필적하거나 능가하는 정확도로 종양을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양팔 로봇을 이용해 돼지 혀에 있는 종양 절제술을 구현했다. 이때 암 조직을 5㎜ 이내로 여유를 두고 제거하는 것이 목표였다. 5㎜는 매우 작은 수치지만, 암의 영향을 받은 세포를 포함하면서도 전체적인 손상을 최소화하는 데 충분한 크기로, 암 조직을 제거할 때 고려하는 표준량이다. ASTR은 인간의 지시사항을 로봇이 정밀하게 수행하도록 변환해 작동한다. 연구팀은 여러 차례 테스트한 결과 ASTR을 프로그래밍해 종양과 건강한 조직을 정확히 구분해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2년 전 장의 양끝을 연결하는 자율 복강경 수술 시스템을 개발한 바 있다. 그때 자율시스템과 양팔 구조, 비전 유도 로봇 시스템을 제작했다. 당시 시스템이 조직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조직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는 종양에 접근하기 위해 내부 수술과 해부가 필요한 신장 같은 내부 장기 수술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ASTR의 정밀 수술 및 정밀 영상 기술을 결합하면 종양 절제 치료의 궁극적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21세기 초부터 혁신적인 로봇기술의 출현으로 최소 침습 수술이 발전해왔다. 물론 SF영화처럼 지능형 로봇이 스스로 알아서 진단과 수술을 척척 해내는 단계는 아니다. 로봇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의사들의 인체가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신체 내부를 볼 수 있듯이, 의사의 눈과 손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는 의사 보조 역할

    의사는 수술 시 기존 수술 도구 대신 조이스틱과 풋 컨트롤 등을 사용해 로봇을 원격조정한다. 복강경 또는 개복수술 시 환자 몸 안에 삽입된 로봇 팔은 의사가 3차원 확대 영상을 보면서 원격조정하는 대로 움직인다. 의사의 손놀림을 정확히 재연하기 때문에 직접 시술하는 것과 다름없다. 3차원 영상으로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10~15배 정도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또 떨림이 없으며, 직선인 복강경 기구와 달리 로봇 팔은 관절이 돌거나 꺾이는 등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로봇수술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 정교하게 시행하는 전립선(전립샘)이나 심장 수술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낸다. 특히 전립선은 수술 시 접근이 어렵고, 배뇨기능 및 성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다른 부위에 비해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그 영역이 점차 확대돼 복강 내 대장암과 위암 수술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부인과 수술, 두경부 수술, 갑상선(갑상샘) 수술, 신장 수술 등에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장비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고 재활 속도가 빠르며, 예후도 더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에 따르면 가장 많이 쓰이는 로봇수술 장치 다빈치(Da Vinci)는 매년 150만 건의 수술에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컴퓨터모션(Computer Motion)과 후발 주자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거의 동시에 각각 수술용 로봇을 만들면서 특허 분쟁에 휘말렸다. 이후 2003년 컴퓨터모션이 인튜이티브 서지컬에 흡수 통합되면서 다빈치가 업계 1위로 수술용 로봇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국내에서도 전국에 130대 가까운 다빈치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다. 연대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다빈치 시스템을 활용해 로봇수술에 성공한 이후 최근 3만 건을 달성했으며, 서울삼성병원 역시 2008년 첫 로봇수술 이후 비뇨의학과 관련 수술만 1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로봇수술, 우주까지 진출

    지구에서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로봇을 원격조종해 수술을 하고 있다. [미국 네브래스카대 제공]

    지구에서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로봇을 원격조종해 수술을 하고 있다. [미국 네브래스카대 제공]

    로봇수술로 가능성을 타진한 원격조정 수술 방식은 이제 우주로까지 시험대를 확장했다. 2월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로봇을 보내 무중력 상태에서 첫 수술 시연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번 시뮬레이션에 사용한 ‘spaceMIRA(Miniaturized In Vivo Robotic Assistant)’ 로봇은 약 400㎞ 아래에서 외과의사가 원격조정하는 동안 궤도 실험실에서 여러 작업을 수행했다. 이 로봇은 미국의 수술용 로봇 스타트업 버추얼인시전(Virtual Incision)이 제작한 것으로 무게는 0.9㎏에 불과하다. 전자레인지 크기로 우주여행에 적합한 소형 경량 장비다. 이번 실험은 장기 우주여행이나 심우주를 탐사하는 수개월, 또는 수년 사이 외과적 응급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뿐 아니라, 지구상 외딴 지역에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할 경우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spaceMIRA는 수술을 위해 장치 일부를 신체에 삽입하며, 팔 2개로 인간의 움직임을 모방할 수 있다. 이번 시험에는 총 6명의 외과의사가 원격조정으로 로봇의 손을 제어해 인체를 대신해서 고무밴드로 만든 시험체에 수술을 실시했다. 로봇은 한 손으로 장력을 가하고 다른 손으로는 가위를 사용해 조직을 해부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고됐다. 지구에서 우주에 있는 로봇을 제어할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대기 시간, 즉 명령이 전송되고 로봇이 이를 수신하기까지 시간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번 spaceMIRA 시연에 참여한 미국 네브래스카주 대장항문외과 의사인 마이클 잡스트는 CNN을 통해 “지연 시간이 약 0.85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각을 다투는 수술에서는 1초 이내 시간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한 시간 지연에도 외과의사들은 이번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로봇 기술을 넘어 소프트웨어적으로 AI를 활용하는 수술 또한 예견되는 시점이다. 지능형 시스템이 탑재된 수술용 로봇은 환자 데이터 보호 문제와는 별개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점점 많은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수행하는 작업의 결과가 더 좋아질 수 있다. 로봇에 AI 및 기타 새로운 기술이 결합한 고급 로봇공학이 개발될 경우 수술실에서 외과의사의 역할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예견이 나오는 이유다.

    수술용 로봇 제조업체 CMR 서지컬의 최고 의료 책임자인 마크 슬랙은 ‘가디언’을 통해 “지금까지 수술용 로봇이 수집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했지만, 여기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며 “AI를 사용하면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식별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외과의사 컴퓨터 운용자가 될 수도

    우주여행에 적합한 경량 도구로 제작된 수술 로봇 ‘spaceMIRA’. [버추얼인시전 제공]

    우주여행에 적합한 경량 도구로 제작된 수술 로봇 ‘spaceMIRA’. [버추얼인시전 제공]

    현재 AI는 주로 진단 분야에 사용된다. 최신 다빈치 로봇 또한 보조 초음파 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AI는 대부분 컴퓨터 비전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나 동영상을 분석함으로써 패턴을 인식하거나 이미지를 분류하고 물체를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는 방사선 전문의가 검토하는 데 수 시간이 걸리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몇 분 만에 검토하거나, 눈으로 판독하기 힘든 작고 희미한 지점까지 포착할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 수백 장을 판독한 결과 의사가 직접 수행하는 데 4시간이 걸렸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AI 알고리즘은 90초 만에 비슷한 정확도로 판독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율적인 로봇 기술의 등장을 예측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로봇 장치의 움직임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인간의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 수술 로봇에 대한 AI 법규 또한 사회적으로 합의해나가야 할 문제다. 임상 환경에서 사용하려면 제조업체는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AI 개발업체들에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성형외과 의사인 아바 셔펠은 의료 윤리를 다루는 ‘AMA(American Medical Association·미국의학협회) 윤리저널’을 통해 “많은 사람이 AI가 수술 부작용과 관련된 수행 부족 문제 등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료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AI가 발전하면서 외과의사의 역할이 ‘인간 운용자’에서 ‘컴퓨터 운용자’로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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