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단체 코드핑크가 쿠바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보내자는 내용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코드핑크 제공]
우유·달걀 배급 끊겨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위키피디아]
물론 쿠바 암시장에서 우유를 구입할 수 있지만 매우 비싸다. 쿠바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4200페소(약 23만 원)인데, 현 물가 상황에서는 우유 2㎏밖에 살 수 없는 액수다. 결국 쿠바 정부는 WFP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WFP는 2월 초 탈지분유 144t을 지원했다. 문제는 이 양이 수도 아바나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생후 7개월에서 3세 사이 어린이 4만8000명에게 배급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쿠바 정부는 2월 6개월~2세 아이를 위한 우유 배급도 연기한 상태고, 우유 수입에 필요한 외화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쿠바 정부로선 유엔 인도주의 기구들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달걀 배급에서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매달 인당 평균 6알이 배급돼왔지만 수급 사정에 따라 배급이 중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달걀은 우유와 마찬가지로 시장 통제 품목이어서 암시장을 이용해야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달걀 한 판(30알) 가격이 3000페소(약 16만4000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40년을 일한 은퇴자의 한 달 연금이 1500페소(약 8만2000원)로 달걀 반 판만 사면 동이 난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배급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암시장에선 엄청난 가격으로 식료품이 거래돼 일반 국민은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쿠바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비롯해 각종 경제 통계를 국가기밀로 하고 있어 정확한 외환 보유 액수를 알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국제 경제기관들도 쿠바의 경제 상황에 대한 통계가 없다. 다만 서방 경제학자는 대부분 쿠바의 외환보유고가 몇십억 달러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마르 페레즈 전 쿠바 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쿠바의 외환보유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바닥 보이는 외환보유고
쿠바 국민은 1962년부터 국영 배급소의 일종인 보데가에서 생필품을 배급받고 있다. 사진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한 국영 배급소. [위키피디아]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쿠바의 외화 보유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송금액 제한, 원조 제공 국가에 대한 규제 등 방식으로 쿠바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쿠바의 주요 수출품은 설탕인데 최근 가뭄과 비료 부족으로 수출도 못 하고 있다.
쿠바는 경제성장률이 매우 낮은 편인데도 물가는 치솟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쿠바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악 수준인 -10.9%를 기록한 데 이어 2021년 1.3%, 2022년 1.8%인 것으로 추정했다.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에 따르면 2019~2022년 쿠바의 실질 GDP는 8%나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물가상승률은 2021년 152%, 2022년 76.1%에서 지난해 62.3%로 소폭 둔화됐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편이다. 쿠바 1인당 GDP는 2022년 기준 2280달러(약 300만 원)로 추정된다.
쿠바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 원인 중 하나는 화폐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는 2021년 달러화와 페소화 비율을 1 대 25로 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현재 비공식 외환시장(암시장)에서 달러당 300페소까지 치솟는 등 화폐가치가 극심하게 하락하고 있다. 공식 환전소에선 1달러를 120페소로 바꿔주고 있지만 암시장에선 300페소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쿠바 국민은 공식 환전소를 더는 이용하지 않는다. 지난 3년간 수입 물가가 10배 이상 치솟는 등 물가까지 폭등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된 상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쿠바 국민은 2021년 7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직도 500여 명이 당시 시위로 감옥에 갇혀 있다.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4월과 5월 각각 370건, 392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불법이민자 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20만 명 넘는 쿠바 국민이 미국 등 외국으로 탈출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기술력을 갖춘 청년층이었다. 게다가 버팀목이던 러시아와 중남미 우방 베네수엘라의 지원마저 끊겼다.
쿠바 정부는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자 3월 1일 연료 가격을 5배나 인상했고 전기요금도 25% 올렸다. 결국 일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5페소(약 1366원)에서 132페소(약 7216원), 고급 휘발유 가격은 30페소(약 1640원)에서 156페소(약 8535원)가 됐다. 쿠바 정부는 국민 반발을 우려해 대중교통비를 그대로 유지했고 천연가스 가격 인상을 연기했다.
쿠바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연료를 수입할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연료난을 겪는 쿠바 국민은 연료 가격마저 대폭 인상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비센테 데라 오 레비 쿠바 에너지·광산장관은 연료난을 미국의 경제제재 탓으로 돌리면서 “연간 18억 달러(약 2조3600억 원) 규모의 연료 수요가 있지만, 지난해엔 6억 달러(약 7880억 원)어치만 수입해 결국 전체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력난으로 스포츠 경기 중단
전력난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쿠바 정부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발전소 유지 및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로 발전소들이 파괴된 영향도 크다. 2022년 기준 쿠바에는 총 13개 발전소가 있는데, 이 가운데 8개가 노후화와 자연재해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2월 10일부터 전력난을 이유로 야구와 축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경기를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쿠바에서는 정전 사태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고위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데다, 경제적 이유의 절도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쿠바 검찰은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알레한드로 힐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을 부패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쿠바가 2월 14일 한국과 수교한 배경에는 경제 지원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이 대거 쿠바에 진출해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기를 바란 것이다. 한국 관광객의 방문 역시 늘어날 것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쿠바는 협력 가치가 크다. 이차전지 생산에 필요한 니켈과 코발트가 풍부한 덕에 미국 금수조치가 완화될 경우 광물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쿠바의 제1 수출 품목은 니켈로, 생산량은 세계 6위 수준이다. 쿠바 경제난이 갈수록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면서 ‘사회주의 천국’을 만들려던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결론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