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폭력이다. 특히 남성 게이머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슈팅게임. 폭력 없는 비디오게임은 게임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비디오게임은 폭력과 동의어로 취급당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주요 콘텐츠는 섹스. 그런데 왜 비디오게임은 폭력물만 대중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일까.
폭력은 인간의 쾌감을 자극하는 오락의 핵심
먼저 공격적 호르몬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10~20대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골수 게이머는 10~20대 남성. 많은 연구는 이 연령대 남성의 생산성이나 범죄율이 가장 높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결혼 이후 과학자나 테니스 스타의 실적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감소한 까닭이다. 여성보다 남성, 그것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범죄율이 가장 높다. 이처럼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많을수록 폭력적 성향이나 모험을 즐기는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주요 예술가의 걸작이 20대에 모두 나왔고,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가 20대였다는 사실도 이 같은 과학적 증거를 뒷받침한다.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생존과 번식. 비디오게임도 주로 생사(生死), 즉 생존을 다룬다. 1700년부터 2000년까지 300년 동안 세계의 주요 신문이 변함없이 다룬 것은 생존 관련 뉴스였다. 구체적으로 죽음과 부상, 살인이나 폭행, 강도나 약탈, 명예훼손이나 스캔들, 영웅이나 이타주의, 자살이나 자해, 다양한 형태의 로맨스나 결혼, 결손이나 가족 방기, 아동 상해와 보복, 강간이나 성폭행이 주요 뉴스였다는 사실도 생존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방증한다.
폭력은 인간의 쾌감을 자극하는 오락 가운데 핵심이다. 인간이 폭력을 즐긴다는 구체적 증거로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을 들 수 있다. 대중은 생사를 건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그 역사적 상징물이 콜로세움인 것이다. 지금도 인간은 권투, 킥복싱 같은 격투기를 보며 즐거워한다. 경기가 거칠면 거칠수록, 그리고 신체 접촉이나 몸싸움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더 흥분한다.
각종 통계는 실제 게임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1980년대와 90년대 비디오게임을 연구한 결과, 비디오게임의 80~90%가 폭력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폭력물 비디오게임은 95~98%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게임이 현실 속 폭력 허용 수준을 높이거나 폭력에 둔감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거세다. 폭력성 높은 비디오게임을 즐긴 뒤 실제 운전을 할 경우 위험하게 차를 모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미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대부분 게임중독자로 밝혀지면서 폭력물 비디오게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거세다. 문제는 이렇게 비판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폭력 자체만을 비판할 뿐, 게임 속에 구현한 폭력이 어떤 유형인지에 대한 분석은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력은 인간 생존과 직결돼 진화해왔다. 인간은 씨족, 부족, 종족 등 내부그룹(ingroup)과 외부그룹(outgroup)에서 나타나는 각종 그룹 간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집단은 계속 번창한 반면, 패배한 집단은 쇠퇴하는 전철을 밟았다. 강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경쟁에서 이기면 강자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그룹으로부터 자기 그룹을 지키려는 전쟁에 비협조적인 조직원은 철저히 응징당한 반면, 전쟁에 협조적인 조직원은 자기 그룹에서 영웅으로 숭배됐다. 역사는 그룹 간 갈등 해소를 전쟁, 즉 폭력으로 해결해왔으며 이 같은 갈등 해소 방식이 인간 문화를 진화시켰다. 전쟁이나 폭력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폭력은 이처럼 이중성을 갖는다. 우리 국민이 안중근을 의사(義士),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숭배하는 이유는 이들이 우리 공동체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을 위해 ‘이타적 징벌’을 했을 뿐이다.
따라서 폭력은 어떤 식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그 무엇이다. 게임은 바로 이런 폭력의 양면성을 이용한다. 대중은 폭력이 이타적 징벌이라면 열렬히 환호한다. ‘묻지마 폭력’은 혐오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적 폭력, 즉 이타적 징벌은 오히려 영웅시하는 것. 한일 축구전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응징하듯 승리를 기원하고, 승리하면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폭력을 행사해 즉 적을 이타적으로 징벌해 승리할 경우 우리 몸은 흥분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면서 통쾌함을 느낀다.
비디오게임 잘만 이용하면 교육효과도…
게이머는 대부분 악의 세력을 응징하고 공동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비디오게임을 한다. 자신을 선, 적을 악으로 규정할 경우 악의 세력을 잔인하게 죽이면 죽일수록 게이머가 느끼는 쾌감은 커진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해석은 폭력의 사회적 정당성에 달렸다. 폭력이 이기적 폭력이냐, 이타적 폭력이냐에 따라 게이머가 폭력을 해석하고 행사하는 정당성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이 악당을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한 대상처럼 묘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극악무도하게 그리는 정도가 강할수록 게이머의 쾌감은 배가된다. 따라서 게임 디벨로퍼는 스토리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게이머의 폭력을 이타적 폭력으로 설정하려고 전력을 다한다. 이런 작업을 거쳐 게이머는 악당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대중을 구해낸 영웅으로 변신한다.
비디오게임에 담긴 폭력성은 이타적 폭력을 미화하고 ‘묻지마 폭력’을 죄악시하는 교육효과도 있다. 최근 잇따라 등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자신의 테러행위를 이타적 폭력으로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점도 이와 관련 있다. 더욱이 비디오게임의 폭력을 정당화할 만한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스포츠 비디오게임에 참여하면, 즉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면 즐길수록 현실에서 폭력 성향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물 비디오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지만, 전쟁은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폭력은 인간의 쾌감을 자극하는 오락의 핵심
청소년 불가 비디오게임 ‘GTA4’의 한 장면.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생존과 번식. 비디오게임도 주로 생사(生死), 즉 생존을 다룬다. 1700년부터 2000년까지 300년 동안 세계의 주요 신문이 변함없이 다룬 것은 생존 관련 뉴스였다. 구체적으로 죽음과 부상, 살인이나 폭행, 강도나 약탈, 명예훼손이나 스캔들, 영웅이나 이타주의, 자살이나 자해, 다양한 형태의 로맨스나 결혼, 결손이나 가족 방기, 아동 상해와 보복, 강간이나 성폭행이 주요 뉴스였다는 사실도 생존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방증한다.
폭력은 인간의 쾌감을 자극하는 오락 가운데 핵심이다. 인간이 폭력을 즐긴다는 구체적 증거로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을 들 수 있다. 대중은 생사를 건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그 역사적 상징물이 콜로세움인 것이다. 지금도 인간은 권투, 킥복싱 같은 격투기를 보며 즐거워한다. 경기가 거칠면 거칠수록, 그리고 신체 접촉이나 몸싸움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더 흥분한다.
각종 통계는 실제 게임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1980년대와 90년대 비디오게임을 연구한 결과, 비디오게임의 80~90%가 폭력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폭력물 비디오게임은 95~98%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게임이 현실 속 폭력 허용 수준을 높이거나 폭력에 둔감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거세다. 폭력성 높은 비디오게임을 즐긴 뒤 실제 운전을 할 경우 위험하게 차를 모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미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대부분 게임중독자로 밝혀지면서 폭력물 비디오게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거세다. 문제는 이렇게 비판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폭력 자체만을 비판할 뿐, 게임 속에 구현한 폭력이 어떤 유형인지에 대한 분석은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력은 인간 생존과 직결돼 진화해왔다. 인간은 씨족, 부족, 종족 등 내부그룹(ingroup)과 외부그룹(outgroup)에서 나타나는 각종 그룹 간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집단은 계속 번창한 반면, 패배한 집단은 쇠퇴하는 전철을 밟았다. 강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경쟁에서 이기면 강자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그룹으로부터 자기 그룹을 지키려는 전쟁에 비협조적인 조직원은 철저히 응징당한 반면, 전쟁에 협조적인 조직원은 자기 그룹에서 영웅으로 숭배됐다. 역사는 그룹 간 갈등 해소를 전쟁, 즉 폭력으로 해결해왔으며 이 같은 갈등 해소 방식이 인간 문화를 진화시켰다. 전쟁이나 폭력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잔혹한 살상 장면으로 유명한 비디오게임 ‘닌자 가이덴 시그마2’의 한 장면.
따라서 폭력은 어떤 식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그 무엇이다. 게임은 바로 이런 폭력의 양면성을 이용한다. 대중은 폭력이 이타적 징벌이라면 열렬히 환호한다. ‘묻지마 폭력’은 혐오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적 폭력, 즉 이타적 징벌은 오히려 영웅시하는 것. 한일 축구전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응징하듯 승리를 기원하고, 승리하면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폭력을 행사해 즉 적을 이타적으로 징벌해 승리할 경우 우리 몸은 흥분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면서 통쾌함을 느낀다.
비디오게임 잘만 이용하면 교육효과도…
게이머는 대부분 악의 세력을 응징하고 공동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비디오게임을 한다. 자신을 선, 적을 악으로 규정할 경우 악의 세력을 잔인하게 죽이면 죽일수록 게이머가 느끼는 쾌감은 커진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해석은 폭력의 사회적 정당성에 달렸다. 폭력이 이기적 폭력이냐, 이타적 폭력이냐에 따라 게이머가 폭력을 해석하고 행사하는 정당성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이 악당을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한 대상처럼 묘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극악무도하게 그리는 정도가 강할수록 게이머의 쾌감은 배가된다. 따라서 게임 디벨로퍼는 스토리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게이머의 폭력을 이타적 폭력으로 설정하려고 전력을 다한다. 이런 작업을 거쳐 게이머는 악당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대중을 구해낸 영웅으로 변신한다.
비디오게임에 담긴 폭력성은 이타적 폭력을 미화하고 ‘묻지마 폭력’을 죄악시하는 교육효과도 있다. 최근 잇따라 등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자신의 테러행위를 이타적 폭력으로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점도 이와 관련 있다. 더욱이 비디오게임의 폭력을 정당화할 만한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스포츠 비디오게임에 참여하면, 즉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면 즐길수록 현실에서 폭력 성향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물 비디오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지만, 전쟁은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