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

개, 인간과 눈 맞추고 친구로 맘 나누고

1만~4만 년 전 인간 세계로 와 최고의 반려동물로

  • 김선영 동물칼럼니스트 mimi-olive@hanmail.net

    입력2011-09-19 09: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개, 인간과 눈 맞추고 친구로 맘 나누고
    지난해 8월 숙명여대 여름 졸업식. 문과대 수석 졸업생 김경민(23) 씨가 개와 함께 단상에 올랐다.

    “미담이가 입학 때부터 손과 발 구실을 했어요. 입학 무렵엔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으니, 만일 맹인견이 없었다면 수석 영광은 없었을 거예요.”

    그는 교육학과를 7학기 만에 수석으로 마쳤다. 4.3 만점에 평점 4.19. 김씨가 안내견 ‘미담이’를 만난 때는 2007년이다. 미담이는 ‘한국 교단에 서는’ 첫 번째 개다. 김씨가 올해 1월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덕이다. 미담이는 죽을 때까지 김씨의 손발 구실을 할 것이다.

    개는 인간에게 ‘삶의 전부’를 준다. 개는 왜 인간과 함께 살게 됐을까. 인간은 생태계에서 이기적인 것으로 악명 높다. 수많은 동식물을 멸종시켰고, 이 순간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생물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은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소, 돼지, 양, 닭에게 먹이와 물을 주고 비와 바람을 피할 집을 제공한다. 짧은 보호가 끝나면 빚을 갚으라고 윽박지른다. 가죽과 고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얻고자 사육한다. 가축에게 허용하는 삶은 녀석들의 자연수명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닭은 한 달 안팎, 소는 2년 이내에 생애를 마친다.



    그러나 개는 다르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개 6마리를 키운다. 그중 푸들 ‘마리’는 이마트가 출시한 ‘엠엠독스 체중조절·노령견용 2.5kg’ 봉지 모델로 데뷔했다. 정 부회장의 추천 덕분이다. 그는 이마트가 내놓은 사료 제품을 애완견에게 먹이며 품질도 점검한다.

    귀여운 외모와 남다른 충성심

    개, 인간과 눈 맞추고 친구로 맘 나누고

    귀여운 외모는 개가 크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커다란 요인이다.

    “강아지도 입덧하나요?”

    “강아지는 더 먹고 싶어 해도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요.”

    정 회장은 트위터에 개 관련 멘션도 자주 올린다. “강아지 사진은 그만~”이라는 팔로워 의견도 있었으나 꿋꿋했다. ‘푸들계 대부’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이렇듯 인간은 개에게 ‘남는 시간’과 사랑을 준다. 개는 1만~4만 년 전 인간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 의지로 인간 세계에 왔다. 소와 돼지는 7000~9000년 전 인간이 포획해 가축으로 삼았다.

    신석기시대에 인간은 채집, 수렵, 농경이 어우러진 생활을 했다. 인간과 접촉한 옛 개는 인간 집단에서 나오는 짐승의 뼈, 상한 고기 같은 쓰레기에 관심을 보였다. 조개껍질을 버리는 패총(貝塚)에서도 인간과 개가 접촉했을 것이다.

    개는 인간의 쓰레기장에 출입하면 사냥하지 않아도 굶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의 합류는 인간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인간이 투입한 자본은 음식 쓰레기에 그쳤으나, 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부인 또는 동물들로부터 인간 집단의 안녕을 지켜줬다. 게다가 사냥 기량이 뛰어난 파트너였다. 신석기 혁명으로 식량 생산이 늘면서 잉여 곡물을 갉아먹는 설치류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개는 쥐 잡이 노릇도 충실히 수행했다.

    개는 이집트,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의 친구로 격상했다. 사람들은 맹견에 갑옷을 입혀 전투에 내보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애완견은 인간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잠자리도 함께 썼다. 철학자 키케로는 기원전 45년 “개는 네 발을 지닌 인간의 친구이며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과 번영을 위해 탄생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개는 사역견이 아닌 애완견(pet dog)으로 거듭났다. 21세기 개는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칭하는 인간을 위해 장난치거나 애교 부리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다. 바야흐로 인간의 반려자가 된 것이다.

    개가 애완동물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덕분이다. 하나는 진화하면서 외모가 귀여워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충성심이 남달라서다.

    개는 갯과 동물인 늑대나 자칼과 비교해 어려 보인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얼굴을 유지한다. 일종의 ‘동안화(童顔化) 전략’이다. 개는 늑대가 어린 시절 성장을 멈춘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개와 늑대의 얼굴을 비교해보자. 개는 늑대보다 주둥이가 짧고, 대가리가 크며, 얼굴이 둥글다. 사냥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이 같은 변화가 생겼다는 가설도 있다.

    인간도 동안을 희구한다. 사람이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보톡스 주사를 맞으며, 운동하는 것도 동안화 전략이다. 사람 어른은 대체로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도 귀여워하고 예뻐한다. 어린이는 어른이 귀여워할 만한 외모를 가졌다. 아이는 어른보다 몸 대비 얼굴이 크다. 그리고 얼굴 대비 눈이 큰 대신 팔과 다리는 짧다. 개도 똑같다. 남녀 관계에서 동안인 사람이나 젊은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인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개의 동안화 전략은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개는 늑대 후손이다. 유전학 분석법이 발전해 개와 늑대가 헤어진 시점을 밝힌 논문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버트 웨인 연구팀은 2011년 “모든 개의 기원은 중동 늑대”라고 밝혔다. 개가 동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뒤집은 것이다.

    개, 인간과 눈 맞추고 친구로 맘 나누고

    개는 동서양 예술에서 사람의 친구로 등장한다.

    모든 개의 기원은 중동 늑대

    개의 미토콘드리아 DNA 배열을 늑대와 비교하면, 개와 늑대가 분리한 시점은 13만5000년 전이다. 늑대 무리에서 유전적으로 떨어져 나온 야생 개 무리와 인간이 1만~4만 년 전 조우했으며, 인간이 녀석들을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웨인 교수의 연구 덕에 인간이 늑대 무리의 새끼를 받아 개량한 것이 오늘날의 개라는 가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늑대는 개의 천적이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열에 따라 생활한다. 개도 계급사회에서 산다. 개가 인지하는 무리는 사람 집단이다. 개가 인간을 개라고 생각하는지, 자신도 인간이라고 여기는지는 개만이 알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개가 인간과 같은 무리에 속하면서 자신 또한 공동체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개 역시 늑대처럼 무리에서 자기 서열을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게 행동한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수컷 혹은 남성에게는 더 복종하고 아부한다. 늑대 무리에서 ‘알파’라고 부르는 리더에게 하위 계급 녀석이 충성하고 아첨하는 것과 본질이 같다.

    개는 외부인이나 다른 동물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싫어한다. 개에게 집은 늑대 무리의 영역과 같다. 영역을 침범당하면 응징하는 것이 늑대의 전통이다. 개도 자기 집을 침범하는 외부인이나 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상대에게 겁을 주면서 동료인 인간을 불러내는 행동인 것이다.

    개는 같은 무리에 속한 인간이 집에 돌아오면 열렬히 환영한다. 미친 것처럼 날뛰며 짖는다. 혼을 쏙 빼놓을 정도다. 이 같은 환영식은 인간이 개를 키우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환영식은 개가 인간의 입 주위를 핥으면서 절정에 이른다. 인간은 개가 자신을 사랑해서 입을 핥는다고 여긴다. 이런 환영식은 늑대 무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입 주위를 핥는 행동의 뿌리는 다음과 같다.

    늑대 무리에서 사냥에 참여하지 못한 새끼나, 어린 새끼를 돌보던 늑대는 사냥에서 돌아온 늑대의 입 주위를 핥는다. 위에 들어가 있는 고기를 토해달라는 뜻이다. 개의 먼 친척인 아프리칸 와일드 독(African Wild Dog, 리카온이라고도 부른다)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리카온(lykaon) 새끼들은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어미에게 먹이를 토해놓으라며 연신 입 주위를 핥아댄다.

    입 주위를 핥는 것은 정보 수집 활동이기도 하다. 개가 ‘이 인간이 밖에서 뭘 했나’라고 알아보는 것이다. 개는 면식이 없는 개를 만나면 서로 입 주위를 핥고 생식기 주변의 냄새를 맡는다. 이것은 인간의 인사와 비슷한 행동이다. 개가 가축이 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같은 무리에 속한 인간을 핥는 것은 아직도 늑대 피가 남았다는 방증이다.

    개는 인간 집단에 ‘풍덩~’ 빠짐으로써 인간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21세기 개는 사냥이나 양몰이를 하지 않는다. 그저 먹고 놀고 잔다. 지금껏 지구에 등장한 동물 가운데 가장 편하게 살아간다. 녀석을 먹이고자 인간이 일하는 독특한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개에게 유명 브랜드 로고가 박힌 고기 캔이나 드라이 푸드를 먹인다. 개밥이 사람 음식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개에게만은 이기적이지 않다. 길거리에서 아이는 걷게 하고 개를 안고 가는 사람을 종종 본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를 통틀어 자기 새끼는 안지 않으면서 다른 동물을 안고 이동하는 종이 인간 말고 또 있을까.

    문화사 연구가 헬무트 브라케르트는 개를 “인간이 정복한 매우 소중한 동물”인 동시에 “가장 일찍부터 인간과 친숙해진 동물”이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꾸로 “자신의 지배자인 인간에게 은밀하게 영향을 준 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개에게 사랑을 주고, 개는 인간에게 삶의 전부를 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