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50분은 넉넉히 되었을 시각이었다. 그날 밤도 나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콧구멍까지 잔뜩 술기운을 채워가지고 휘청휘청 하숙집 골목을 더듬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직업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취해버리지 않고는 견뎌 배길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잡지 일 말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 잡지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언제나 자기 창의력과 독자에 대한 책임만을 요구한다. 창의력을 포기해버리면 독자에 대한 책임도 면제된다. 자기 창의력이나 독자에 대한 책임을 포기해버린 채 잡지를 만들어 가자면 그것보다 쉬운 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 또 그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어진다. 잡지에서의 창의력과 책임은 언제까지나 완성되어질 수 없고, 또 결코 완성되어져서는 안 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잡지를 만들어왔습니다. 불민한 탓인지 아직도 배운 것보다 익힐 게 많습니다. 창의력,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습니다. ‘소문의 벽’은 편집자, 소설가는 ‘진술’하는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소설에서 화자 ‘나’는 “진술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전짓불이 더욱 더 두렵고 공포스럽게 쏘아댄다”고 고백합니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박준’은 전짓불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갑니다. 낯선 이가 까만 밤 전짓불로 박준의 얼굴을 비춥니다. 박준은 전짓불 불빛 탓에 낯선 이 얼굴을 못 봅니다. 전짓불을 든 심문관은 묻습니다. “너는 누구 편이냐.”
기자는 진술하는 사람이면서 진술을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전짓불을 든 심문관처럼 따져 묻습니다. 누구 편도 아니라고 밝힌 이가 정치권을 뒤흔들었습니다.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떼로 몰려든 전짓불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곤 물을 겁니다. “너는 누구 편이냐.”
![너는 누구 편이냐](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1/09/16/201109160500016_1.jpg)
소설책을 덮으면서 전짓불 없는 사회가 없겠으나 요즘의 편 가르기는 지나치단 단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