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 28일 서울에서 열린 ‘2011 FCI 아시아&퍼시픽 섹션쇼’.
“멀리서 온 보람이 있네요. 오랜만에 ○○맘도 만나고요.”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호회 엄마들의 수다가 아니다. 8월 27, 28일 서울 강남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1 세계애견연맹(FCI) 아시아·퍼시픽 섹션쇼’를 관람하던 이들의 대화다. 아시아 최대 규모 애견 축제에 참석한 이들의 상당수가 서로를 개 주인으로 칭하지 않고 ○○맘, ○○파파, ○○언니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 대신 애견의 엄마, 아빠, 언니로 칭할 만큼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펫 페어런츠’ 문화가 확대하면서 애견 시장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 쇼에 참가한 개는 2024마리. FCI가 주관한 국제 도그쇼 중 ‘FCI 월드 도그쇼’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 일본, 중국, 태국, 러시아, 노르웨이 등에서도 429마리가 건너왔다. ‘아마추어 애견 대상 선발대회’도 함께 열려 펫쇼용으로 브리딩된 애견 외에 일반 가정에서 기르는 애견도 미모를 겨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애견인 중에는 단체티켓을 구매한 뒤 버스를 대절해 함께 상경한 이도 적지 않았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애완동물 전문 매장 ‘몰리스 펫샵’, 애견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펫러브즈미(Petloves me)’를 비롯해 사료, 용품, 간식 등을 취급하는 애견 관련 업체도 부스를 마련했다.
FCI는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국제기구다. 영국의 켄넬클럽, 미국의 아메리칸켄넬클럽과 함께 세계 3대 애견 기구로 알려졌다. 한국애견연맹은 “보신탕 문화 등으로 세계 동물애호가의 비난을 면치 못하던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대규모 국제 대회가 열린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로,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외 애견인이 폭넓게 소통했다”고 평가했다.
‘내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개를 기르는 이들은 강아지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인식한다. 애견 산업 종사자의 마인드도 바뀌고 있다. 소비자를 몸 달게 하려면 ‘내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만으론 부족하다. 내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 애견 상품 소비자의 개를 바라봐야 한다.
이마트가 펫 페어런츠 문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한다. 지난해 12월 트레이더스 구성점을 시작으로 분당, 광명, 송림, 월평, 가든5 등 6개 점에 몰리스 펫샵을 오픈해 가파른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몰리스 펫샵에서 파는 개 간식과 사료 등 먹거리만 500여 종이고, 패션용품과 위생용품도 수백 종에 달한다.
8월 27, 28일 서울에서 열린 ‘펫쇼’.
몰리스 펫샵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애완동물과 사람이 함께 쇼핑을 즐긴다는 데 있다. 애완동물 매장 쇼핑의 주체이자 이마트 고객의 가족인 애완동물도 쇼핑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몰리스 펫샵이 애완동물 출입을 허용하는 이유다. 쇼핑몰이 대부분 애완동물 출입을 막는 점을 생각할 때 파격적인 규정이다. 애완견 호텔, 유치원, 병원과 미용실을 갖춘 데다, 애완견 분양 서비스도 제공해 쇼핑과 애견 케어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마트 애완담당 바이어 홍자민 씨는“이용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애견 산업이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트렌드의 메카로 부르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복판에도 반려동물 전문 서비스 매장이 오픈했다. 애완동물을 위한 최첨단 장비를 구비한 동물병원과 고급 호텔, 카페, 미용실, 유치원, 용품 매장을 갖췄으며 반려동물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토털 매장 ‘이리온’이 그곳이다. 이 매장은 물리치료를 해주는 개 물리치료과와 노령견을 위한 노령견 클리닉을 별도로 운영한다. 개를 포함해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애견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5월에는 애견 패션 브랜드 ‘핀업독’이 각계각층 유명 인사를 초청해 론칭쇼까지 하며 청담동 쇼룸을 오픈했다. 일부 명품 브랜드에서 고가의 애견용 패션 아이템을 선보인 적은 있으나 국내 토종 브랜드가 시크 앤드 럭셔리를 표방하며 ‘개 패션 브랜드’ 론칭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애견인의 주목을 받았다.
애견 산업 규모는 날로 커진다. 한국펫산업협회 박용희 부장은 “지난해 애견·애묘 식품 산업의 규모만 3400억 원으로 추산한다”며 “과거에는 일반 사료와 프리미엄급 사료로 구분하던 식품 시장이 요즘엔 단백질 함량을 높인 사료, 피부와 모질을 좋게 하는 사료, 관절에 도움을 주는 사료 등으로 세분화했으며, 소비 흐름도 고급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리온’동물병원 CT실, ‘핀업독’의 ‘개옷’ 컬렉션, 고급화하는 개 사료(왼쪽부터).
원료의 출처와 성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대량 생산 사료 대신, 수제 사료를 선호하는 애견인도 적지 않다. 사람이 먹는 것 이상으로 재료를 엄선한 뒤 철저한 위생관리 하에서 생산한 먹거리만을 판매한다는 것이 수제 사료 및 간식 제조업체의 설명이다. 일부 사료 업체가 음식물 쓰레기와 정육점 부산물을 수거해 원료로 쓴다는 사실이 알려져 애견인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사례가 있었던 만큼, 수제 사료와 간식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수제 애견 간식 업체 ‘아이라이크펫’은 일본에서 펫영양관리사 자격증을 딴 전문가가 온라인 상담을 통해 맞춤형 간식을 조제한다.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나은 셈이다.
‘애견 장례식’이 문화로 자리 잡아
개 장례식장.
“1999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 장례식장을 열 때만 해도 반려동물의 사체를 화장하고 장례 치르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즘 개를 키우는 이들 사이에선 장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됐죠”
개를 가족에 버금가는 반려동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개에 대한 배려는 늘었으나 정작 중요한 개의 사회화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개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예절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선진국에선 개가 애견 학교에서 예절을 교육받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곱게만 자란 개는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스스로를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좋은 옷 입히고, 비싼 사료 먹이는 것 못지않게 개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