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군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포착해 추적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 교육감 출마 예상자로 분류해두었기 때문이다. 연기군 선관위 관계자는 “명함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행위뿐이어서 선거법에 저촉되는 사항은 없었다”며 “하지만 행사 참석이 많아질 경우 다른 후보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자제를 당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청과 세종시교육청 청사는 2014년이 돼야 완공된다. 현재는 금남면 쪽에 대지만 정해두었을 뿐 터 파기도 진행하지 못해 두 기관이 만들어진 후에도 당분간은 현재의 연기군청과 연기군교육청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7개월 넘게 남은 세종시장 및 교육감 선거전 열기는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선거와 관련 깊은 외곽조직들이 속속 등장할 정도다.
벌써부터 달아오른 선거 열기
6월 15일에는 ‘세종희망포럼’, 20여 일 후인 7월 8일에는 ‘세종미래희망포럼’이 발족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세종희망포럼에는 세종시장 후보군에 포함된 박희부 전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잘 사는 세종시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건 세종미래희망포럼의 공동대표 역시 세종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육동일 교수가 맡았다. 이외에도 일부 출마 예정자는 주소지를 미리 옮겨놓고 이러저러한 행사를 주도하며 경쟁적으로 얼굴 알리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일부 연기군민 사이에서 “경제가 어려워 먹고살기도 힘든데 벌써부터 지역이 선거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종시는 광역자치단체와 대등한 법적 지위를 갖고 2012년 7월 1일 출범한다. 초대시장과 교육감은 내년 4월 11일 19대 총선에 맞춰 선출할 예정. 이들의 임기는 2012년 7월 1일부터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2014년 6월 30일까지 만 2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선거판이 일찍 가열되는 이유는 ‘초대’라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이번에 고배를 마시더라도 얼굴을 충분히 알려두면 곧 다시 열리는 차기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후보자의 경우 미리 표밭을 다져두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단독선거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세종시 국회의원 자리도 넘볼 수 있다. 다양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포석인 셈이다.
‘큰 장’이 섰는데 정당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세종시장 후보를 분명히 내세운 당은 아직 없지만 저마다 세종시에 대한 연고권과 명품도시 건설의 최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 측에서는 “세종시를 노무현 정부가 처음 기획한 건 맞지만 국회를 통과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은 정부와 여당 아니냐”는 논리를 편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도 큰 틀에서 보면 ‘더 나은 세종시’를 위한 하나의 해법이었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 충남도당 김영인 사무처장은 “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은 주민 정서나 민심을 자극했을 뿐 세종시 건설의 주도세력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도시 경영 경험과 경륜, 비전을 갖춘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이 돼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만드는 세종시에 대해서는 당연히 민주당이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간 제1야당으로서 세종시 건설을 적극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과연 사업 진행이 가능했겠느냐는 반문. 한나라당은 세종시 건설을 방해한 세력이고, 자유선진당은 지역정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숨기지 않는다. 민주당 충남도당 김성래 사무처장은 “시장이 정부 여당을 등에 업는다고 해서 세종시가 명품도시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1등 공신인 민주당 후보가 시장이 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세종시장 선거 출마 예상자로 거론되는 인사들. 왼쪽부터 최민호 행정도시건설청장,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이춘희 전 행정도시건설청장, 유한식 연기군수, 박상돈 전 의원, 박희부 전 의원, 오시덕 전 의원.
자유선진당은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대전 유치가 확정되자 대전과 충남 지역 곳곳에 ‘세종시에 이어 자유선진당이 또 해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세종시 건설은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투쟁한 자신들 덕에 가능했다는 주장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자유선진당 충남도당 김진수 사무처장은 “당세는 약하지만 실제로 발로 뛰어가며 노력한 것은 자유선진당이었다”며 “시장이 우리 당에서 나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닥 민심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론되는 인사 또한 대부분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거나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던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기자가 선관위 등에서 시장 출마 예상자로 분류한 7명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해보니 박상돈 전 국회의원(자유선진당)을 제외하고 출마하지 않겠다는 인사는 없었다.
최민호 행정도시건설청장의 경우 5월 청장에 임명되자마자 주변에서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섰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여러 상황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장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한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현직 고위공직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변화는 사실상 출사표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법하다. 그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세종시장은 참으로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특별자치시인만큼 공동화의 소외감을 해결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시티즌 미니멈(citizen minimum)’도 갖춰야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면 탁월한 리더십과 경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미래희망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은 충남대 육 교수는 이미 한 발을 담근 상태다. 그간 각종 단체 대표 자격으로 여러 세미나를 통해 세종시 원안 추진을 촉구해왔다. 그는 “일단 시장 출마를 목표로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의 특별한 친분을 강조하는 대목이 이채롭다. “그간 박 전 대표와 관련한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세종시에 대한 (박 대표의) 뜻과 의지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며 “세종시는 미래권력으로 뒷받침해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대 행정도시건설청장을 지낸 인천도시개발공사 이춘희 사장 역시 출마 예상자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내가 세종시장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의사를 묻는 기자는 처음”이라며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세모(△)’ 정도로 봐달라”고 말했다. “관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선거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 생각해왔다. 단독 후보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고 농담처럼 던진 이 사장은 세종시장의 덕목에 대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일 잘할 사람이 해야 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시장 후보는 유한식 연기군수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53% 이상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선된 현직 군수인 데다, 군민들과 스킨십이 가장 강한 인물이기 때문. 다만 광역자치단체로 지위가 격상된 세계적 명품도시의 수장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은 새로운 과제다. 유 군수는 “그동안 세종시를 만드는 데 노력해온 결과를 평가받을 생각”이라며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철학에 부합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신도시를 만들려면 지역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적임자”라고 말했다.
오시덕 전 국회의원(자유선진당 공주·연기 당협위원장)의 첫 대답은 “뜻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였다. 주택공사 사장을 지낸 경력을 강조하는 그는 “신도시가 자리 잡는 데 필요한 20~30년 동안의 화두는 건설과 개발이 될 것”이라며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업무에 오래 종사해온 경력 덕분에 주변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대로 두면 로드맵대로 건설되는 게 아니라 많은 정부예산을 확보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므로, 국회 의정활동과 공기업 경영 경험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2010년 1월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충남 이·통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정도시 원안추진촉구 결의대회.
박희부 전 의원은 “나를 세종시장으로 보는 여론이 있다면 맞는 것 아니겠느냐”고 에둘러 말했다. “세종희망포럼만이 연기 지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정통성을 잇는 조직”이라 주장하는 그는 자신이 이 조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과 14대 국회 의정활동 경험을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은 “세종시는 연기군과 달리 광역자치단체이므로 최소 국회의원은 해본 사람이 대(對)정부 활동을 벌일 수 있다”면서 “(나는) 국회의원 시절 예결위원을 네 차례나 지내면서 고향에 많은 예산을 따왔다”고 말했다.
거론되는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박상돈 전 의원은 그 대신 “유권자가 허락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며 천안에서 다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충남도청 기획실장을 지낸 데다 연기군이 고향이고 세종시 원안 추진 과정에서 당내 구실이 컸던 그의 이력 때문에 주변에서는 여전히 세종시장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는 분위기다. 세종시가 단독 국회의원 선거구가 되면 정진석 전 국회의원(공주·연기)과 함께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종시교육감 선거는 그간 충남과 대전의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인사들을 포함에 연기군에 연고가 있는 많은 이가 눈독을 들인다. 앞서 언급한 강복환 전 충남도교육감, 김경회 전 서울시부교육감, 임청산 전 공주대 교수, 오광록 전 대전시교육감, 신정균 전 연기군교육장, 진태화 전 충남체육고교장,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 유장준 전 금호중학교장 등 10여 명이 거론된다.
주민은 물론 ‘초대’라는 의미에 걸맞은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 도전장을 내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세종시의 기초를 닦고 교육 자치를 안착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리더십과 전문성, 도덕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배재대 공공정책학과 정연정 교수는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이자 지역발전을 선도할 거점인 세종시의 위상에 걸맞게 소지역주의나 정당 바람에 기대기보다, 명품도시를 차질 없이 조성할 정치력과 행정능력을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