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비디오게임이 도박이나 마약처럼 중독 대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명(Civiliazation)’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Heroes of Might and Magic)’, 이혼제조기라 불리는 ‘풋볼 매니저(Football Manager)’ 같은 게임은 비디오게임의 중독성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비디오게임은 영화, 드라마, 스포츠와 달리 왜 이렇게 중독성이 강할까. 다른 오락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주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동기는 대체 뭘까.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요리법과 재료가 좋아야 하듯, 비디오게임도 소재와 구성 방법이 좋아야 한다. 게임 속 모든 구성요소는 철저하게 게이머를 즐겁게 하고 그로부터 자동적, 무의식적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각 구성요소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도 무척 중요하다. 반대로 자극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중독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극이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은 기대보다 후한 대접을 받고, 어떤 자극은 푸대접을 받는다.
섹스, 폭력, 공포, 음악 등 비언어적 자극
과학자들은 게이머로부터 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극을 하나하나 규명해왔다. 과학적 검증을 통해 그 효능이 입증된 자극은 섹스, 폭력, 공포, 음악, 부와 권력, 승리, 유머, 명품, 응시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게이머의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우연히도 이들은 모두 비언어 자극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지적 투자(mental effort)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비언어는 게이머에게서 천차만별의 반응을 유발한다.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자동적, 무의식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게임에 포함된 갖가지 자극은 대부분 현실과 유사한 반응을 낳는다. CD 재생 음악이 라이브 음악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것처럼 게임 속 음악, 섹스, 폭력, 공포 같은 자극도 현실 이상의 반응을 가져온다.
‘풋볼 매니저’.
적자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수단인 부와 권력은 사람의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든다.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음식물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품이 부이고, 권력은 이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부를 상징하는 명품 브랜드, 스포츠카 같은 사치품 역시 자동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소형차보다 스포츠카 같은 고급차를 보면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는 고급차가 생존경쟁에 필수적인 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의 파워는 현실에 그치지 않고 비디오게임에까지 확대된다. 이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 속에서만이라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고성능 차량인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GT)’를 운전하고 싶어 한다. 비디오게임 속에서라도 현실의 부자와 권력자가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나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오락물 속 콘텐츠 통해 대리만족 효과
게임 안의 많은 자극은 게이머에게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들어 쾌락과 중독성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게이머를 즐겁게 하고 비디오게임을 계속하도록 만들려면 도파민을 분비시키거나 게이머의 자동적, 무의식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성요소를 게임에 넣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오락물에 포함된 많은 자극이 실제와 마찬가지로 도파민을 자동으로 분비시켜 중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특정 자극은 강도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음악은 물론 영화, 드라마, 게임에 포함된 자극도 실제 자극과 비슷한 반응을 유발한다.
축구 TV 중계방송에서 한국이 일본을 통쾌하게 물리치면 마치 내가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 양 ‘인지감정’이 변화한다. 경쟁욕구가 생기고 승리를 통해 쾌감을 느낀다. 그럼으로써 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이는 오락물 속 콘텐츠가 대리만족 효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란물은 다르다. 음란물을 보면 실제로 성욕은 유발되지만 이를 해소할 해결책은 제공하지 못한다. 유발된 성욕에 대한 해결책은 현실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게임에 포함된 자극은 그 속성에 따라 현실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키넥트(Kinect) 같은 동작인식컨트롤러를 채택한 비디오게임을 할 경우 게임과 현실의 경계는 거의 무너진다. 예를 들어 슈팅게임을 하면 슈팅에 대한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댄스 센트럴(Dance Central)’ ‘댄스 마스터(Dance Master)’같은 게임을 하면 게이머는 댄스교습이나 배틀처럼 현실과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게이머는 자신의 인지·감정·행동 시스템을 모두 활용해 직접 댄스를 체험하는 셈. 이 같은 게임을 온라인을 통해 한다면 댄스경연도 벌일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게임은 장르에 따라 정도 차는 있지만 오락물이 현실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현실과 환상세계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증강현실(Aug mented Reality)’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간과 환상세계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