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TV에서 본 흐릿한 기억과 달리, 이 영화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SF 대작은 아닙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공들였을 원숭이 분장이 놀랍긴 해도, 아기자기하다 싶을 만큼 소규모인 원숭이 도시나 ‘인간’을 가둬놓은 철창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오히려 전위 부조리극의 무대장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히피즘과 대항문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뉴욕 언저리의 아방가르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따지고 보면 주제도 마찬가지죠. 인류가 핵전쟁으로 지구를 말아먹고 나면 원숭이들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반전(反戰) 메시지. 주류 과학의 편견과 오만을 비판하는 풍자 역시 사뭇 진보적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찰턴 헤스턴이라는 사실입니다. 필모그래피 앞뒤로 빽빽한 종교성 짙은 역사물 속의 그는 의연하고 당당한 남자 그 자체죠. 노년에는 전미총기연합(NRA)이라는 단체의 회장으로 일하면서 총기규제법안 반대 로비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진보진영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해 비판한 이유죠. 하지만 이 영화 속의 그는 완전히 다릅니다. 까칠함으로 가득한 허무주의자 캐릭터는 오히려 요즘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미국 민주당 성향의 여피족 무신론자 뉴요커에 훨씬 가까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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