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냄새로 다가온다. 출근하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면 싸한 향이 가을임을 알린다. 여름내 머금었던 물기를 분사하면서 내는 나무들의 무채색 향 같기도 하고, 따가운 햇살이 하늘을 말리면서 증발시키는 파르스름한 향인 듯도 하다.
가을 냄새에는 달콤함이나 감미로움이 없다. 건조하고 서늘하여 여름내 들떠 있던 오감을 오그라뜨린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면 기름지고 향이 강한 음식을 찾게 된다. 가을 때문에 빼앗긴 감각을 음식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다행히 가을에는 먹을 것이 많다. 찬바람에 이는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채우라는 자연의 뜻이지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은형과 나는 낚시광이다. 내 고향 바다는 가을이면 전어를 불러들였다. 물때를 잘 만나면 두어 시간 만에 한 주전자의 전어를 잡을 수 있었다.
찬바람 때문에 외로움 음식으로 채우기 제철
이맘때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더니 전어가 싱싱하더라. 회 쳐서 냉장고에 넣어뒀으니 퇴근하면서 들러라.” 작은형과 내가 잡았던 고향의 그 전어 맛이 어땠는지 아직 여쭤보지 못했다. 오래 떠나 있으면, 돌아갈 일이 없으면 고향은 아픔이다.
내 고향의 가을 바다에는 전어보다 더 맛있는 생선이 있었다. 꼬시락이라 불리는 물고기로, 망둥어 종류의 하나다. 뼈째 썰어 채친 채소와 함께 초장에 버무려 먹었다. 바닷가에 꼬시락 파는 횟집이 즐비했는데, 1970년대 후반 그 망할 놈의 공해 때문에 다 사라졌다. 최근 강남 고급 횟집에서 내 고향의 꼬시락을 받아다가 고가에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고향 사람들 말로는 오염된 앞바다에서 잡은 거라 안심하고 먹을 것이 못 된다고.
사라진 고향의 가을 먹을거리가 또 하나 있다. 청포도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탓에 향이 깊어 다른 지역의 청포도보다 가격이 두 배는 더 나갔다. 그런데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청포도밭도 모두 사라졌다.
고향의 가을 음식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쓸 듯하지만, ‘나는 뭐 고향 없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지역을 옮겨야겠다.
초여름부터 나오지만 옥수수는 가을 먹을거리며, 역시 가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단맛을 강화한 신품종들이 많지만 향에서는 강원도 토종 찰옥수수만한 것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강원 산골의 가을 음식으로 송이를 최고로 친다. 차진 촉감과 은은한 솔향이 분명 맛있는 버섯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송이는 그리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일장 주막 장국밥 가마솥에 둥둥 떠다녔던 것이 송이였다. 일본인들이 송이를 보면 ‘환장’을 하는데, 그 미각을 좇아 송이의 몸값이 오른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조상들은 ‘일 능이, 이 송이, 삼 표고’(지역에 따라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고도 한다)라고 해서 능이를 최고로 쳤다. 강원도 여행 중에 혹 ‘능이전골’이라 쓰인 간판을 보게 되면, 밥때가 아니더라도 무조건 맛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을 서해안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하다. 전남에서부터 경기 북부까지 해변이며 포구며 온통 대하가 깔린다. 자연산은 극히 일부고 거의가 양식이다. 자연산으로는 전남 영광 법성포 앞바다의 것을 최고로 친다. 대하를 잡은 후 보관 문제 때문인지 자연산은 냉동이 대부분인 것이 아쉽다. 자연산이 맛있다지만, 나 같으면 살아 있는 양식 대하를 선택할 것이다. 달콤한 생살 맛에 입맛을 한번 들이면 굽거나 찐 대하는 ‘저급’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가을의 맛 중에 사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사과에는 향이 없다. 달기만 하다. 당도 15도가 기본이다. 이 정도면 거의 설탕을 퍼먹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단맛 나는 과일을 좋아하고 시거나 향이 강한 과일을 싫어해 그런 품종만 심은 탓이다. 이 때문에 사과의 왕이라 할 수 있는 홍옥이 사라졌다.
배도 있다. 그래그래, 배는 먹골배가 최고다. 밤도 있네? 밤은 역시 산밤이 최고. 에, 도토리묵도 있구나. 속껍질 안 깐 도토리로 쑨 그 쌉싸래한 맛. 응? 추어탕을 빼먹었다고? 기름이 잔뜩 오른 미꾸라지를 푹 고아 우거지에 된장 풀고…. 가을, 정말 먹을 것이 지천이다.
가을 맛 중에 이것 하나만은 빼놓지 말아야겠다. 밥이다. 사시사철 매일 먹는 밥이지만, 가을에 먹는 밥이 최고다. 막 도정한 햅쌀로 가마솥에 한 밥, 가을에 먹을 만한 음식 중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밥맛의 포인트는 깨끗함이다. 그래야 국과 반찬의 강하고 깊은 맛을 순화시키고 때로는 북돋아준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비어 있어 주변을 더 욕망케 하는 가을을 꼭 닮은 맛이다.
가을 냄새에는 달콤함이나 감미로움이 없다. 건조하고 서늘하여 여름내 들떠 있던 오감을 오그라뜨린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면 기름지고 향이 강한 음식을 찾게 된다. 가을 때문에 빼앗긴 감각을 음식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다행히 가을에는 먹을 것이 많다. 찬바람에 이는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채우라는 자연의 뜻이지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은형과 나는 낚시광이다. 내 고향 바다는 가을이면 전어를 불러들였다. 물때를 잘 만나면 두어 시간 만에 한 주전자의 전어를 잡을 수 있었다.
찬바람 때문에 외로움 음식으로 채우기 제철
이맘때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더니 전어가 싱싱하더라. 회 쳐서 냉장고에 넣어뒀으니 퇴근하면서 들러라.” 작은형과 내가 잡았던 고향의 그 전어 맛이 어땠는지 아직 여쭤보지 못했다. 오래 떠나 있으면, 돌아갈 일이 없으면 고향은 아픔이다.
내 고향의 가을 바다에는 전어보다 더 맛있는 생선이 있었다. 꼬시락이라 불리는 물고기로, 망둥어 종류의 하나다. 뼈째 썰어 채친 채소와 함께 초장에 버무려 먹었다. 바닷가에 꼬시락 파는 횟집이 즐비했는데, 1970년대 후반 그 망할 놈의 공해 때문에 다 사라졌다. 최근 강남 고급 횟집에서 내 고향의 꼬시락을 받아다가 고가에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고향 사람들 말로는 오염된 앞바다에서 잡은 거라 안심하고 먹을 것이 못 된다고.
사라진 고향의 가을 먹을거리가 또 하나 있다. 청포도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탓에 향이 깊어 다른 지역의 청포도보다 가격이 두 배는 더 나갔다. 그런데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청포도밭도 모두 사라졌다.
고향의 가을 음식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쓸 듯하지만, ‘나는 뭐 고향 없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지역을 옮겨야겠다.
초여름부터 나오지만 옥수수는 가을 먹을거리며, 역시 가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단맛을 강화한 신품종들이 많지만 향에서는 강원도 토종 찰옥수수만한 것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강원 산골의 가을 음식으로 송이를 최고로 친다. 차진 촉감과 은은한 솔향이 분명 맛있는 버섯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송이는 그리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일장 주막 장국밥 가마솥에 둥둥 떠다녔던 것이 송이였다. 일본인들이 송이를 보면 ‘환장’을 하는데, 그 미각을 좇아 송이의 몸값이 오른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조상들은 ‘일 능이, 이 송이, 삼 표고’(지역에 따라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고도 한다)라고 해서 능이를 최고로 쳤다. 강원도 여행 중에 혹 ‘능이전골’이라 쓰인 간판을 보게 되면, 밥때가 아니더라도 무조건 맛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을 서해안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하다. 전남에서부터 경기 북부까지 해변이며 포구며 온통 대하가 깔린다. 자연산은 극히 일부고 거의가 양식이다. 자연산으로는 전남 영광 법성포 앞바다의 것을 최고로 친다. 대하를 잡은 후 보관 문제 때문인지 자연산은 냉동이 대부분인 것이 아쉽다. 자연산이 맛있다지만, 나 같으면 살아 있는 양식 대하를 선택할 것이다. 달콤한 생살 맛에 입맛을 한번 들이면 굽거나 찐 대하는 ‘저급’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가을의 맛 중에 사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사과에는 향이 없다. 달기만 하다. 당도 15도가 기본이다. 이 정도면 거의 설탕을 퍼먹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단맛 나는 과일을 좋아하고 시거나 향이 강한 과일을 싫어해 그런 품종만 심은 탓이다. 이 때문에 사과의 왕이라 할 수 있는 홍옥이 사라졌다.
배도 있다. 그래그래, 배는 먹골배가 최고다. 밤도 있네? 밤은 역시 산밤이 최고. 에, 도토리묵도 있구나. 속껍질 안 깐 도토리로 쑨 그 쌉싸래한 맛. 응? 추어탕을 빼먹었다고? 기름이 잔뜩 오른 미꾸라지를 푹 고아 우거지에 된장 풀고…. 가을, 정말 먹을 것이 지천이다.
가을 맛 중에 이것 하나만은 빼놓지 말아야겠다. 밥이다. 사시사철 매일 먹는 밥이지만, 가을에 먹는 밥이 최고다. 막 도정한 햅쌀로 가마솥에 한 밥, 가을에 먹을 만한 음식 중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밥맛의 포인트는 깨끗함이다. 그래야 국과 반찬의 강하고 깊은 맛을 순화시키고 때로는 북돋아준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비어 있어 주변을 더 욕망케 하는 가을을 꼭 닮은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