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미술을 대표하는 쇼나 조각들.
국민소득으로 그 나라의 ‘수준’을 판단하는 우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지 몰라도, 아프리카 조각은 이미 1970년대에 세계 미술의 중심에 들어왔고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동양에 대한 관심은 아프리카 다음이었다. 어찌 보면 현대예술의 중심인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 관계도 깊은 아프리카가 ‘새로운 것’을 찾는 서구 비평가들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당연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1년 서울 성곡미술관의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뒤 아프리카 예술을 소개하는 책과 전시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컬렉터들도 늘고 있다. 현재 부산 N.C 갤러리에서 ‘아프리카 미술의 매혹과 신비전’이 열리고 있고, 6월30일부터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아프리카 쇼나 조각전이 열릴 예정이다. 가나아트센터가 대표적인 상업화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폭등한 중국 미술품 이후 아프리카 미술품이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 ‘신상품’이 될 수도 있다.
짐바브웨 부족, 돌 다루는 데 천부적 재능
‘쇼나’는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부족의 이름이며, ‘쇼나 조각’이란 70년대 서구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짐바브웨 조각작품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는 ‘검은 돌 조각품’은 거의 대부분 쇼나 조각들이다.
쇼나는 다른 어느 민족보다 돌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바로 이들의 솜씨로 알려져 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거대한 돌성으로, 오로지 돌만을 다듬고 짜맞췄음에도 전체적으로 우아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데다 서양 도굴꾼들이 몰려들기 전 1000년 동안이나 원래 형태를 유지했기에 ‘고대 건축의 미스터리’로도 꼽힌다. 나라 이름 짐바브웨도 여기서 따온 것으로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쇼나 조각의 최고 스타 작가인 버나드 마테메라 작품. 그의 작품은 묘하게 이중섭의 그림과 많이 닮았다. 2002년 사망해 작품가가 유럽 인기 조각작품들과 맞먹는다.
당시 실세 평론가였던 프랭크 맥퀸 등의 소개로 서구에 소개된 쇼나 조각은 1969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현대미술관과 로댕 미술관 등에 전시돼 서양인의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2001년 성곡미술관 전시 전까지 쇼나 조각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프리카에 수출을 하던 한 대기업이 쇼나 조각을 들여와 사옥 분수대에 전시했다가 빈축을 샀을 정도다.
경기도 일산의 쇼나 조각 화랑 ‘터치 아프리카’를 운영하는 시인 정해종 씨.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아지오도 쇼나 조각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갤러리 아지오는 2004년 석재회사를 운영하는 이영두 대표가 인수한 이후 짐바브웨에서 매년 공모전을 열어 작가를 발굴한다. 갤러리 아지오의 조국희 실장은 “매년 300명 정도가 공모전에 지원하고, 우리가 심사 후 당선작을 구입한다. 현재 갤러리 아지오 옆에 ‘아프리카 조각관’을 짓고 있으며 6월 개관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광공예품 ‘에어포트 아트’와는 차원 달라
국내 미술시장에서 쇼나 조각의 강점 중 하나는 가격이 국내 및 서구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웬만큼 검증이 된 국내 작가의 돌조각 작품이 쉽게 1000만원대를 넘는 데 비해 쇼나 조각은 200만~30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쇼나 조각이 대부분 구상이어서 이해하기 쉽다는 점. 때문에 쇼나 조각은 전문 컬렉터보다 순수하게 작품을 즐기려는 중산층 미술애호가나 제3세계 문화를 선호하는 지식인들이 많이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갤러리 아지오 짐바브웨 조각 공모전에서 당선된 여성 작가 콜린 마다몸베.
이렇게 국내로 들여온 짐바브웨의 ‘에어포트 아트’는 주로 모델하우스나 아파트 입주단지 등을 옮겨다니는 이동식 ‘컨테이너 갤러리’에서 몇 배에서 몇십 배 비싼 가격에 ‘작품’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깨지거나 흠집이 나서 쇼나 돌 특유의 아름다움이 파괴된 상태에서도 ‘아프리카 조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판매되고 있다는 것.
한국인들이 쇼나 조각을 많이 사들이자 짐바브웨 현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짐바브웨에서 발행되는 ‘데일리 미러’지는 한 한국 공무원이 현지 조각가로부터 작품 15점을 샀는데 1점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작가 서명까지 위조된 가짜임이 드러나 현지 경찰에 고발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위조된 작품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다는 콜린 마다몸베와 버나드 마테메라의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갤러리 아지오 짐바브웨 조각 공모전에 관한 기사가 실린 현지 신문.
1월 ‘아프리카의 영혼-쇼나’라는 책을 펴낸 김정근 전 짐바브웨 대사(현 제주도 국제관계자문대사)의 부인이자 쇼나 조각 애호가인 백경순 씨는 “작가마다 워낙 개성이 뚜렷해 공부만 하면 생각보다 빨리 좋은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갖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믿을 것은 컬렉터 자신의 눈이다. 정 씨는 “어떤 미술작품이든 철저히 공부를 한 뒤에 구입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한다. 화상도 작가들의 이력 관리와 작품 거래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아프리카 미술품이 서구 미술에 식상한 컬렉터들에게 또 하나의 신선한 투자 대상이 될지, 반짝 유행으로 지나갈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분명한 것은 아프리카 예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소동과 상관없이 쇼나 조각의 검은 광채는 바래지 않으리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