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유일하게 아파트가 없고 골목 문화를 간직한 ‘가로수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일명 ‘은행나무길’)에 문을 연 공연장 ‘떼아트르&클럽 삐우’의 이재원 기획이사는 경기 침체와 함께 ‘고사’한 것처럼 보였던 가로수길이 되살아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사동 530번지에서 537번지를 지나는 가로수길은 2000년대 초까지 30여개의 화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화랑거리’로 불리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랑들이 철수하면서 생기를 잃고 말았다.
그러다 2005년 강남 토박이 화랑들이 다시 모이고, 뉴욕 소호와 도쿄의 긴자에서 막 넘어온 듯한 디자인숍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가로수길엔 다시 사람들과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엔 국적 불명의 카페와 부티크들이 앞다투어 개업하던 4~5년 전 청담동 풍경과 비슷한데, 가로수길 사람들은 오히려 이곳이 느리게 변화하거나 ‘정지’한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남의 속도전과 ‘짝퉁’ 문화에 질린 이들을 끌어들인다고 분석한다.
“가로수길은 강남에서 유일하게 ‘사라지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강남 시장’이라는 재래시장도 숨어 있어요. 강남에서 드물게 시간의 지층을 간직하고 있어요.”
가로수길이 좋아 도로 옆 다가구주택에서 살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 겸 전시디렉터 최두수 씨의 말이다. 신사동 토박이들과 동사무소 직원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사평리’로 불렸던 신사동은 종로, 마포 등 옛 서울의 행정·경제 중심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오면 바로 닿을 수 있기에 강남에선 드물게 70년대 아파트 개발 열풍이 불기 전부터 원주민의 골목 문화가 온존했던 동네였다.
‘사라지는 것들’ 볼 수 있는 공간
‘코발트 디자인숍’. 창밖 풍경이 전 세계 디자이너들의 ‘신기한’ 물건과 잘 어울린다.
그 대신 신사동은 우리의 근대문화 형성에서 가장 큰 공간적 특징으로 꼽히는 골목들을 간직하게 된다. 신사동이 ‘강북스럽다’는 것은 이곳에서 삼청동과 북촌의 낯익은 골목 형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의 은행나무들은 ‘80년대 중반 민간 새마을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심은 가로수’라고 하니 이 길은 모더니즘 개발의 축으로서 옛날 골목의 자취들이 모였다 다시 흘러 사라지는 공간이었다.
90년대 말부터 가로수길에 화랑들이 몰린 이유는 강남 아파트촌에 대한민국의 부가 축적되면서 아파트 거실용 그림과 조각 작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화를 감상하는 것보다 아파트 평수 늘리는 데 더 재미를 붙였고, 급기야 IMF 사태가 터지자 미술작품 거래는 완전히 끊겼다. 대부분 화랑들은 ‘판화=아파트 주방 그림’이고 ‘조각=가족 모형’이란 도식만 남긴 채 강북으로 ‘유턴’했다.
‘앨리’와 멋쟁이 주인 김창호 씨.
강남에 가장 빨리 들어온(82년) 화랑 중 하나인 예화랑은 2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2005년 말 새 건물에 들어가 거장 페르난데스 아르망 유작전을 열어 화제가 됐다. 또 박여숙 화랑이 2005년 11월 이곳에 ‘려 갤러리’를 오픈해 개관전으로 김중만, 박지원, 최유주 전을 열었다. 청작화랑은 논현동에서 이사 왔다. ‘화랑거리’ 시절보다 덜 상업적인 기획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건물마다 광고·디자인 회사들 입주
강남이면서 ‘강북’인 신사동을 되살린 건 예술이자 산업인 장르, 즉 영화와 광고, 디자인 등에서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돈 많은 펀드 매니저들이나 팬시한 부티크들이 들어서기엔 건물들이 너무 작고 낡았다. 게다가 좁은 골목이 많아 차가 다닐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2년 동안 새 건물을 지어 최근 문을 연 예화랑.
신생 영화기획사 대표 최모 씨는 2년 전부터 충무로에 있던 중소 규모의 영화기획사들이 가로수길 근처로 옮겨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곳에는 코리아픽처스, 신씨네, LJ필름 같은 큰 규모의 제작사들을 포함해 약 40개의 영화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충무로에 있던 광고와 디자인 업체, 사진 스튜디오들도 많이 옮겨왔다. 아르티즌 빌딩, 리빙컬처 빌딩에서 ‘J-타워’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건물마다 광고 혹은 디자인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J-타워’ 못 미쳐 높은 천장에 시선이 머물게 되는 책방은 디자인전문 서점 겸 갤러리 ‘아트앤드림’이다. 2001년 개업했지만 건물을 지어 지난해 다시 문을 열었고 지하엔 디자인전문 갤러리를 확보해 ‘커뮤니케이션그래픽 100명전’을 열었다. ‘아트앤드림’ 김희선 이사는 “전 세계에서 수입하는 모든 디자인 관련 책이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최첨단 광고, 최신의 트렌드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려 갤러리’내부.‘우리그릇 려’의 그릇도 판매한다.
“2005년 초 ‘J-타워’에 TBWA코리아(광고업계 5위) 같은 대형 광고회사들이 옮겨오면서 젊은 사람들이 부쩍 늘고 거리가 살아났어요. 점심시간이면 광고회사, 영화사 직원들이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가로수길을 따라 내려와요.”
앤티크와 커피를 파는 ‘앨리’를 5년째 운영하는 김창호 대표의 말이다.
1. 모든 디자인 관련 책은 여기에, ‘아트앤드림’. 2. 뉴욕 차이나타운의 느낌이 물씬 드는 ‘콰이19’. 3. 와인과 공연 ‘떼아트르&클럽 삐우’. 4. 멋쟁이들로 붐비는 ‘블룸&구떼’.
‘블룸&구떼’는 꽃집을 겸한 카페로 나이 지긋한 멋쟁이들과 디자이너들로 언제나 붐비는 곳이고, ‘떼아트르&클럽 삐우’는 일종의 연극 갈라콘서트를 공연하는 극장과 와인클럽을 겸하는 독특한 곳으로 뉴욕 브로드웨이의 작은 극장(99석)을 연상시킨다.
‘콰이19’ 역시 단번에 눈에 띄는 중식 레스토랑인데, 해외의 트렌드를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소개하는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영희 씨(가수 ‘싸이’의 어머니로도 유명하다)가 “평소 젊은 아티스트를 만나러 다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연” 가게다.
“보존도 개발만큼 많은 자본과 노력 필요”
가로수길 대부분 가게들은 2005년에 새로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오래된 집처럼 보이는 건 외관을 그렇게 꾸몄기 때문이다. 이 가게들은 미국적인 것과 유럽 스타일, 아시아적 요소들을 섞어놓았다. 그러나 청담동과는 달리 오래된 듯한 느낌이 자연스러운 건, 여전히 일부 상가들이 나지막한 2층이고 골목 골목에 주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에서는 ‘소호’란 간판도 보이는데 이곳이 뉴욕의 소호에 비유되는 것은 팬시한 가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문화와 세계의 첨단이 공존하는 스타일의 공통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엔 문화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2003년 건축 용적률이 300%에서 200%로 낮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땅 주인들은 서둘러 건축허가를 냈지만, 대부분은 집 한두 채가 이어진 작은 대지들이어서 2층 집들이 6층 높이의 건물로 바뀌는 선에서 재난(?)은 최소화됐다.
작가 최두수 씨는 “보존도 개발만큼 많은 자본과 노력이 필요한 ‘발전’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상업화의 운명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단지 사람들이 개발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여기에 역사와 문화를 담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라지요.”
한 가지 제안은 해야겠다. 가로수길이 더 이상의 변화를 겪기 전에 꼭 한 번 들러보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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