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약’으로 불려온 항생제가 논란의 정점에 올랐다. 서울행정법원이 1월5일, 참여연대가 항생제 처방률 상·하위 요양기관 명단 등을 공개하라며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피고(보건복지부 장관)는 비공개한 정보를 공개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소송 당사자는 물론 명단 공개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관련 단체까지 가세하면서 항생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
사실 항생제 오·남용 및 과다처방에 관한 문제는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부터 불거진 해묵은 사안이다. 의약분업 취지 중 하나가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품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
2005년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이 의약분업 이후 병·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환자로부터 분리한 세균의 항생제 내성률은 지극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현애자 의원(민주노동당)도 감기 환자에 대한 동네 의원의 항생제 처방이 2004년부터 다시 증가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 0.3%서 99.3%까지 ‘큰 차’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데는 참여연대의 항생제 오·남용 모니터 활동이 계기가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2001년 이후 약제 사용 오·남용 방지를 위해 항생제와 주사제·약품비 등 3개 항목의 사용률을 전국 병원별로 평가해 등급을 매겨온 점에 주목하고, 지난해 3월29일 복지부에 평가 결과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가 같은 해 4월9일 요양기관별·의원급 표시과목(科目)별·지역별 항생제 사용 지표를 공개하면서도 항생제 처방률 상·하위 요양기관 명단의 공개는 거부하자, 참여연대는 복지부의 부분 공개 결정에 대해 4월18일 이의신청을 냈다. 하지만 이마저 5월3일 기각되자, 마침내 6월2일 소송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법원은 이번 소송의 성격이 복지부 정보공개처분의 절차적 문제점과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행정소송인 만큼 항생제 오·남용 실태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진 않았으나, 신체와 생명을 담보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알권리와 진료선택권, 건강권이 의료기관의 진료방법 선택 재량권에 앞선다고 보고 명단 공개가 정당하다고 판시해 이번 판결에 따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가 요구한 정보공개 대상은 복지부 산하 심평원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요양기관별·의원급 표시과목별·지역별로 급성상기도감염(통칭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전체 감기약 중 항생제가 1개라도 들어간 비율)을 평가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 가운데 상위 4%를 점하는 1등급과 하위 4%인 9등급에 속한 요양기관의 수와 명단, 항생제 사용 지표 등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돼 항생제를 과다처방한 병·의원, 약국, 보건소의 명단이 전면 공개될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기피현상은 물론 의료직능단체, 제약업계까지 후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항생제 오·남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병원균에 약제 내성을 일으켜 항생제 자신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른바 ‘슈퍼박테리아(내성황색포도상구균을 뜻하며,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의 출현과 그로 인한 병원 내 감염까지 불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의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과 환자의 항생제 오·남용으로 ‘항생제 최다 사용국’이란 오명을 얻은 지 오래다. 그만큼 국민들의 항생제 내성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높다.
급성상기도감염의 원인은 대부분 바이러스. 세균 감염이 강력히 의심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곤 항생제로는 치료 효과가 없는 대표적 질환이다. 항생제는 바이러스성 질환엔 듣지 않고 내성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복지부 스스로 밝힌 2005년도 1분기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우리나라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59.2%에 달한다. 의원마다 편차도 커서 낮게는 0.3%에 그치는 곳에서부터 무려 99.3%에 이르는 의원까지 있을 정도다.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외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미국의 경우 43%(1998~99년), 네덜란드는 16%(2000년), 말레이시아는 26%(2002년)에 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항생제를 과다처방한 병·의원의 명단 공개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의 반대 입장은 완강하다. 항생제 처방은 의사가 환자 개개인의 질병 상태에 따라 의학적 소신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히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항생제 처방률의 높고 낮음이 해당 의료기관의 신뢰성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명단이 공개될 경우 전문 의료지식과 정보를 갖지 못한 일반 국민에게 자칫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의료기관=부도덕한 의료기관’이란 왜곡된 인식을 심어줘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위험성도 크다고 주장한다.
“처음 접한 환자의 병이 바이러스 질환인지 세균성인지 금세 판별할 수 있는 의사는 사실상 없다. 그렇다고 감기 환자에게 혈액검사나 X선 촬영 같은 검사를 해보자고 매일 병원으로 부를 수도 없는 게 현실 아닌가. 매일 오라고 하면 ‘진찰료 수입을 챙기려 한다’고 욕하고, 항생제를 안 썼다가 행여 합병증으로 세균성 질환이 생기면 ‘오진’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에다 이젠 항생제를 쓰면 ‘과다처방’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의사들은 대체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의협 권용진 대변인)
국내에선 ‘적정처방’ ‘과다처방’ 가늠할 기준 없어
의협 측은 “환자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항생제 처방의 다소만 기계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황우석 사기극’이나 다를 바 없다”며 “항생제 내성률을 낮춰야 한다는 견해엔 의협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는 우리가 섭취하는 축·수산물에 대한 항생제 사용을 경감하는 정책적 조치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급성상기도감염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지, 세균에 의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세균배양검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항생제 처방률이 가장 높은 진료 과목은 이비인후과.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구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의 말이다.
“이비인후과에 항생제 처방이 많은 이유는 편도샘염이 심한 환자에게 심장판막증, 사구체신염, 관절염 등 합병증이 따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우려해서다. 세균배양검사를 하면 좋겠지만, 대다수 의원에선 배양검사를 할 여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기간도 일주일 이상 걸려 검사의 의미가 없다. 이런저런 약을 써도 환자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때 대학병원에 배양검사를 의뢰할 뿐이다. 거기다 의원급에서 배양검사를 억지로 한 뒤 검사비를 청구하면 심평원에서 전액 삭감해버린다. 배양검사를 하면 세균 유무를 알 수 있어 어떤 항생제가 그 세균에 잘 듣는지 알아보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까지 이어서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의료 현실에선 다분히 ‘교과서적’인 발상일 뿐이다.”
의료계의 이런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국내에는 항생제의 ‘적정처방’과 ‘과다처방’을 가늠할 기준이 아직 없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마다 각기 다른 환자들의 질병, 중증도, 의료기관 특성, 항생제 종류 등을 종합 검토하지 않은 채 단순히 항생제의 처방 빈도와 양만을 잣대로 의료기관명을 공개하면 환자들의 불신만 증폭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심평원은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상대평가하는 방식으로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환자의 중증도나 의료기관 특성 등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통상 일주일치를 처방하는 항생제를 2~3일쯤 복용하다 말고 나중에 재처방을 받는 등 의사의 진료를 따르지 않는 환자도 많아 이것이 결과적으로 항생제 내성률을 높이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반론도 근거가 있다. 항생제는 일정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복용해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최소의 혈중 농도를 항상 유지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어진 뒤에도 2∼3일 더 복용해야 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몸 안에 남아 있던 균들이 내성균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항변들이 ‘항생제를 적게 처방하는 의사의 존재’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복지부는 참여연대와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20일 ‘2005년도 1분기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전체 중 하위 25%) 전국 의원 2603개소의 명단(일반의,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을 심평원 사이트(www.hira.or.kr)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지금은 2005년도 2분기 평가 결과를 공개 중이다. 의원별 처방률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평소 항생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일반인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원을 검색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복지부 직원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기자 역시 심평원 사이트의 어느 코너에서 해당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안내문도 없었다. 담당부서인 심평원 평가2부 직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명단을 검색할 수 있었다.
“합병증 우려해 항생제 처방… 하나의 관행처럼 여겨”
2005년 1·2분기 모두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원으로 검색된 서울 강동구의 한 내과 원장은 “감기의 대부분이 바이러스성 질환인 만큼 환자에게 ‘내 몸의 치유력’을 강조하며 증상 경감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휴식을 권하는 편”이라면서도 “많은 의사가 합병증을 우려해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을 하나의 관행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의약분업 이전부터 약국을 통해 항생제를 오·남용해온 환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참여연대 측은 의료계의 명단 공개 반대논리가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이은미 간사는 “항생제 처방이 불가피한 급성상기도감염 환자가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항생제 처방이 잦은 의료기관은 그 사유를 사후에 부연하면 되므로 명단 공개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협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판결에 따른 명단 공개는 의료기관의 자율적인 항생제 처방률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 실익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항생제 논란’의 1라운드는 시민단체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 복지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복지부 보험급여평가팀 관계자는 “항소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며 “항생제 처방률 공개를 단계적으로 확대할지 여부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인 복지부가 판결문이 도달한 지 2주일 이내인 1월 말까지 항소하지 않으면 판결이 확정돼 정보 공개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항소하면 상급심에서 그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법원 판결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공론화의 장(場)으로 떠오르게 된 항생제 논란. 약과 독, ‘두 얼굴’을 지닌 항생제의 진면목이 어떻게 가려질지가 관심거리다.
사실 항생제 오·남용 및 과다처방에 관한 문제는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부터 불거진 해묵은 사안이다. 의약분업 취지 중 하나가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품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
2005년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이 의약분업 이후 병·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환자로부터 분리한 세균의 항생제 내성률은 지극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현애자 의원(민주노동당)도 감기 환자에 대한 동네 의원의 항생제 처방이 2004년부터 다시 증가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 0.3%서 99.3%까지 ‘큰 차’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데는 참여연대의 항생제 오·남용 모니터 활동이 계기가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2001년 이후 약제 사용 오·남용 방지를 위해 항생제와 주사제·약품비 등 3개 항목의 사용률을 전국 병원별로 평가해 등급을 매겨온 점에 주목하고, 지난해 3월29일 복지부에 평가 결과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가 같은 해 4월9일 요양기관별·의원급 표시과목(科目)별·지역별 항생제 사용 지표를 공개하면서도 항생제 처방률 상·하위 요양기관 명단의 공개는 거부하자, 참여연대는 복지부의 부분 공개 결정에 대해 4월18일 이의신청을 냈다. 하지만 이마저 5월3일 기각되자, 마침내 6월2일 소송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법원은 이번 소송의 성격이 복지부 정보공개처분의 절차적 문제점과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행정소송인 만큼 항생제 오·남용 실태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진 않았으나, 신체와 생명을 담보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알권리와 진료선택권, 건강권이 의료기관의 진료방법 선택 재량권에 앞선다고 보고 명단 공개가 정당하다고 판시해 이번 판결에 따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가 요구한 정보공개 대상은 복지부 산하 심평원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요양기관별·의원급 표시과목별·지역별로 급성상기도감염(통칭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전체 감기약 중 항생제가 1개라도 들어간 비율)을 평가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 가운데 상위 4%를 점하는 1등급과 하위 4%인 9등급에 속한 요양기관의 수와 명단, 항생제 사용 지표 등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돼 항생제를 과다처방한 병·의원, 약국, 보건소의 명단이 전면 공개될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기피현상은 물론 의료직능단체, 제약업계까지 후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은 외국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의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과 환자의 항생제 오·남용으로 ‘항생제 최다 사용국’이란 오명을 얻은 지 오래다. 그만큼 국민들의 항생제 내성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높다.
급성상기도감염의 원인은 대부분 바이러스. 세균 감염이 강력히 의심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곤 항생제로는 치료 효과가 없는 대표적 질환이다. 항생제는 바이러스성 질환엔 듣지 않고 내성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복지부 스스로 밝힌 2005년도 1분기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우리나라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59.2%에 달한다. 의원마다 편차도 커서 낮게는 0.3%에 그치는 곳에서부터 무려 99.3%에 이르는 의원까지 있을 정도다.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외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미국의 경우 43%(1998~99년), 네덜란드는 16%(2000년), 말레이시아는 26%(2002년)에 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항생제를 과다처방한 병·의원의 명단 공개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의 반대 입장은 완강하다. 항생제 처방은 의사가 환자 개개인의 질병 상태에 따라 의학적 소신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히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항생제 처방률의 높고 낮음이 해당 의료기관의 신뢰성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명단이 공개될 경우 전문 의료지식과 정보를 갖지 못한 일반 국민에게 자칫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의료기관=부도덕한 의료기관’이란 왜곡된 인식을 심어줘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위험성도 크다고 주장한다.
“처음 접한 환자의 병이 바이러스 질환인지 세균성인지 금세 판별할 수 있는 의사는 사실상 없다. 그렇다고 감기 환자에게 혈액검사나 X선 촬영 같은 검사를 해보자고 매일 병원으로 부를 수도 없는 게 현실 아닌가. 매일 오라고 하면 ‘진찰료 수입을 챙기려 한다’고 욕하고, 항생제를 안 썼다가 행여 합병증으로 세균성 질환이 생기면 ‘오진’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에다 이젠 항생제를 쓰면 ‘과다처방’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의사들은 대체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의협 권용진 대변인)
국내에선 ‘적정처방’ ‘과다처방’ 가늠할 기준 없어
의협 측은 “환자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항생제 처방의 다소만 기계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황우석 사기극’이나 다를 바 없다”며 “항생제 내성률을 낮춰야 한다는 견해엔 의협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는 우리가 섭취하는 축·수산물에 대한 항생제 사용을 경감하는 정책적 조치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급성상기도감염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지, 세균에 의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세균배양검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항생제 처방률이 가장 높은 진료 과목은 이비인후과.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구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의 말이다.
“이비인후과에 항생제 처방이 많은 이유는 편도샘염이 심한 환자에게 심장판막증, 사구체신염, 관절염 등 합병증이 따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우려해서다. 세균배양검사를 하면 좋겠지만, 대다수 의원에선 배양검사를 할 여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기간도 일주일 이상 걸려 검사의 의미가 없다. 이런저런 약을 써도 환자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때 대학병원에 배양검사를 의뢰할 뿐이다. 거기다 의원급에서 배양검사를 억지로 한 뒤 검사비를 청구하면 심평원에서 전액 삭감해버린다. 배양검사를 하면 세균 유무를 알 수 있어 어떤 항생제가 그 세균에 잘 듣는지 알아보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까지 이어서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의료 현실에선 다분히 ‘교과서적’인 발상일 뿐이다.”
의료계의 이런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국내에는 항생제의 ‘적정처방’과 ‘과다처방’을 가늠할 기준이 아직 없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마다 각기 다른 환자들의 질병, 중증도, 의료기관 특성, 항생제 종류 등을 종합 검토하지 않은 채 단순히 항생제의 처방 빈도와 양만을 잣대로 의료기관명을 공개하면 환자들의 불신만 증폭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심평원은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상대평가하는 방식으로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환자의 중증도나 의료기관 특성 등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통상 일주일치를 처방하는 항생제를 2~3일쯤 복용하다 말고 나중에 재처방을 받는 등 의사의 진료를 따르지 않는 환자도 많아 이것이 결과적으로 항생제 내성률을 높이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반론도 근거가 있다. 항생제는 일정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복용해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최소의 혈중 농도를 항상 유지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어진 뒤에도 2∼3일 더 복용해야 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몸 안에 남아 있던 균들이 내성균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항변들이 ‘항생제를 적게 처방하는 의사의 존재’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복지부는 참여연대와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20일 ‘2005년도 1분기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전체 중 하위 25%) 전국 의원 2603개소의 명단(일반의,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을 심평원 사이트(www.hira.or.kr)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지금은 2005년도 2분기 평가 결과를 공개 중이다. 의원별 처방률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평소 항생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일반인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원을 검색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복지부 직원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기자 역시 심평원 사이트의 어느 코너에서 해당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안내문도 없었다. 담당부서인 심평원 평가2부 직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명단을 검색할 수 있었다.
“합병증 우려해 항생제 처방… 하나의 관행처럼 여겨”
2005년 1·2분기 모두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의원으로 검색된 서울 강동구의 한 내과 원장은 “감기의 대부분이 바이러스성 질환인 만큼 환자에게 ‘내 몸의 치유력’을 강조하며 증상 경감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휴식을 권하는 편”이라면서도 “많은 의사가 합병증을 우려해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을 하나의 관행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의약분업 이전부터 약국을 통해 항생제를 오·남용해온 환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참여연대 측은 의료계의 명단 공개 반대논리가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이은미 간사는 “항생제 처방이 불가피한 급성상기도감염 환자가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항생제 처방이 잦은 의료기관은 그 사유를 사후에 부연하면 되므로 명단 공개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협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판결에 따른 명단 공개는 의료기관의 자율적인 항생제 처방률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 실익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항생제 논란’의 1라운드는 시민단체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 복지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복지부 보험급여평가팀 관계자는 “항소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며 “항생제 처방률 공개를 단계적으로 확대할지 여부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인 복지부가 판결문이 도달한 지 2주일 이내인 1월 말까지 항소하지 않으면 판결이 확정돼 정보 공개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항소하면 상급심에서 그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법원 판결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공론화의 장(場)으로 떠오르게 된 항생제 논란. 약과 독, ‘두 얼굴’을 지닌 항생제의 진면목이 어떻게 가려질지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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