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이 1월10일 교내 문화관 중강당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2004년 및 2005년 논문이 조작됐다”고 발표하자(왼쪽), 황 교수가 다음 날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줄기세포는 미즈메디병원 연구원들이 바꿔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이튿날 기자회견을 통해 “논문 조작은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지만 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서울대의 조사가 끝났음에도 황 교수는 논문에 대한 과학적 사실 가운데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조사위의 최종 보고서와 황 교수의 주장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처녀생식 vs 체세포 복제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면 먼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해 전기충격을 가하면 복제 수정란이 된다. 이를 배양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다. 그런데 핵이 채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난자는 정자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해 수정란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처녀생식이다. 단성생식이라고도 한다.
조사위는 체세포를 제공한 B 씨에게서 얻은 혈액의 미토콘드리아(세포 내 소기관) 유전자와 2004년 줄기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외부 기관에 검사 의뢰한 결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은 B 씨가 2004년 줄기세포에 난자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난자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날은 가고….<br>2004년 6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황우석 연구팀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조사위는 핵 유전자에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난자가 분열할 때 보이는 특성이 나타난다는 점을 알아냈다. 따라서 2004년 논문에서 난자가 스스로 수정란처럼 분열하는 처녀생식으로 배아가 만들어졌다고 추정한 것이다.
또 당시 핵이식 실험을 했던 이유진 연구원도 자신이 실험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험 도중 ‘우연히’ 처녀생식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사위에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황 교수는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이견을 보였다. 2004년 논문을 제출할 당시 팀원이었던 유영준 연구원이 처녀생식인지를 입증하는 실험을 주도했고, 그 결과 처녀생식이 아닌 체세포 복제로 만들어진 줄기세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매우 기뻐했다는 것. 유 연구원과 이 연구원은 부부 사이다. 결국 유 연구원이 아내의 진술을 근거로 처녀생식을 주장했다는 게 황 교수의 설명이다.
학계에서는 처녀생식을 유도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기술로 인정한다. 동물의 경우 처녀생식이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지금까지 처녀생식이 보고된 사례는 없다. 2004년 논문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동물생리학과 호세 시벨리 교수는 원숭이 난자로 처녀생식 유래 배아줄기세포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 결과는 2002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결국 황 교수팀의 2004년 줄기세포가 실제로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인간의 경우로는 ‘세계 최초’의 성과이고 ‘사이언스감’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난치병 치료에 쓰일 수도 있다. 여성 환자에게서 난자를 채취해 처녀생식을 일으켜 줄기세포를 얻으면 이 환자에게 이식할 때 면역거부 반응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여성용’ 줄기세포인 것이다.
기반기술 vs 독보적 기술
처녀생식 여부 이외에 조사위와 황 교수의 주장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은 황 교수팀의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다. 조사위가 “현재 독보적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기반기술’ 수준”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 황 교수는 “어느 나라의 연구팀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강력히 반박했다.
황 교수는 복제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일은 미즈메디병원 소속 연구원들이 담당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니 줄기세포 추출과 배양은 황 교수팀의 기술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를 이식해 융합시켜 복제배아를 만든 다음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배반포 단계까지 키우는 게 바로 황 교수팀의 핵심 기술이다. 조사위는 황 교수팀의 실험노트를 검토한 결과 배반포 배아들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비교적 양호한 것도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조사위는 배반포 기술을 독보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영국 뉴캐슬대학 연구팀의 성과를 들었다. 최근 그 연구팀이 황 교수팀과 같은 방법으로 복제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교수는 “뉴캐슬대학 연구팀은 난자 36개에서 단 하나의 배반포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 연구팀은 2004년 논문에서는 30개, 2005년 논문에서는 71개의 배반포 배아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뉴캐슬대학의 머독 교수가 우리에게 연구 조언을 받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1월11일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 조작 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에도 여전히 황 교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도 “뉴캐슬대학 연구팀은 핵이 제거된 난자에 체세포가 아니라 일반 수정란의 줄기세포를 융합시켜 배반포까지 키운 것”이라며 “이는 황 교수팀보다 뒤떨어지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2061개 vs 242개, 185개
조사위는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미즈메디병원, 한나산부인과, 한양대 의대 산부인과, 삼성제일병원의 4개 병원에서 129명으로부터 채취한 난자 총 2061개가 황 교수팀에 제공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교수팀은 2004년 논문에 242개, 2005년 논문에 185개 난자가 쓰였다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정확한 난자 수는 잘 모르겠다”며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논문에 기록한 숫자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팀의 김수 연구원은 “논문에는 의미 있는 데이터만 넣는다”며 “2005년 논문에서는 185개 난자에서 유래된 배반포 배아로 실험한 게 맞다”고 강조했다.
사람 난자의 경우 핵을 빼내기가 동물보다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황 교수팀이 난자 35개를 받았을 때 전체가 삶은 계란처럼 딱딱해 단 한 개에서도 핵을 꺼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실험하기 전에 연습용으로 난자가 많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난자를 제공한 여성의 건강에 따라 난자 상태가 달라진다. 불량한 난자는 물론 실험에 쓸 수 없다. 또 배아가 잘 자랄 수 있는 배양조건 등을 결정하기 위한 예비 실험용으로도 난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황 교수팀의 주장은 연습용, 예비 실험용, 건강하지 않아 실험에 쓰지 못한 난자 등은 논문에 개수를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생명의료윤리 전문가인 KAIST(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임종식 교수는 “다른 세포와 달리 난자 채취는 여성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2000개 이상이나 채취했다면 이를 논문에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명희 위원장은 줄기세포 ‘바꿔치기’ 의혹에 대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진상을 밝힐 수 없었다”며 “조사위의 한계를 넘은 문제로 판단했고, 수사기관에서 밝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12일 기자회견에서도 미즈메디병원 연구원들이 줄기세포를 바꿔치기 했다는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황 교수는 지난해 12월 미즈메디병원 박종혁 연구원과의 통화에서 “2004년 9월 미즈메디병원에서 만든 수정란 줄기세포를 정기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할 때 황 교수팀의 2004년 줄기세포도 함께 검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2004년 논문의 유전자 데이터와 일치했다. 문제 없다”고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위는 최종 발표에서 2004년 논문 역시 조작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렇듯 조사위와 황 교수가 들었다는 연구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바꿔치기 의혹은 여전히 미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2일 황 교수를 비롯한 이번 파문 관련 핵심 인물들의 집과 연구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황 교수팀의 기술이나 논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