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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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소리에 마음의 때를 벗기고

  • 최미선 여행플래너 / 신석교 프리랜서 여행 사진작가

    입력2006-01-23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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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바람 소리에 마음의 때를 벗기고

    살포시 내린 눈이 사성암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겨울 산사는 고즈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유명 사찰은 편안한 분위기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 호젓하게 자리한 암자는 다르다. 연초, 남녘땅의 때 묻지 않은 자연에 파묻혀 있는 암자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는 사색 여행이 손짓을 한다.

    구례 사성암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오산(513m) 정상에 위치한 사성암. 높지는 않지만 이곳에 오르면 산자락을 휘감으며 구불구불 흐르는 섬진강 줄기와 드넓은 구례벌판, 멀리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지리산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들면 탁 트인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에 연기조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기대사를 비롯해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승들이 머문 곳인 만큼 호젓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성암은 바위를 병풍 삼아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위치한 점이 이채롭다. 정상에 오르면 바위틈을 파고 들어간 이색적인 암자 모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에선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몸 한 자락을 살포시 숨긴 채 수줍은 듯 고개만 내미는 시골처녀 같다.

    사성암에는 마당이 없다. 대신 가파른 돌계단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연출한다. 좁은 돌계단 양옆에는 1m 높이의 돌담이 쌓여 있다. 돌담 위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기원하며 이름을 적어놓은 기와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솔바람 소리에 마음의 때를 벗기고

    가파른 암벽 위의 사성암.

    돌계단을 오르면 산 아래를 굽어보는 큼지막한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후한 절 인심을 보여주듯 수십 마리의 새들이 감을 쪼아 먹는다. 까치밥으로 보통 몇 개만 남겨놓지만, 이곳은 통째로 두어 새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일도 없다.

    이곳은 주변에 기암괴석이 많아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암벽에는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돼 있다. 밖에서는 약사전 건물에 가려 오른쪽 부분만 살짝 엿보인다. 약사전 안으로 들어가야 유리벽 너머로 마애여래입상의 온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연락하면 산사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저녁이면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고 이른 아침 섬진강을 둘러싼 산자락의 운해 장관을 볼 수 있다. 하룻밤 1인당 1만원. 사성암 061-781-5463

    솔바람 소리에 마음의 때를 벗기고

    고즈넉한 대흥사 일지암.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자리한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창건된 이래 수많은 학자와 시화묵객(詩畵墨客)이 교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흔적을 말해주듯 대흥사 경내에 자리한 대웅보전, 천불전, 용화당, 봉향각,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 등 현판들은 서예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깊고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두륜산에는 암자가 많다. 이중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와 김정희의 교류로 유명한 일지암이 명소로 꼽힌다. 운동장처럼 넓은 마당에 자리한 대흥사 대웅전에서 일지암까지는 700m. 천불전 오른편으로 난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둥근 초가지붕이 푸근함을 주는 일지암이 나타난다. 초의선사가 말년을 지낸 곳으로 우리 차 문화의 성지인 이곳은 언제나 향긋한 차향이 풍겨난다. 콜라, 커피 자판기가 대흥사 문턱까지 밀려들어온 요즘, 일지암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곳이다.

    일지암 뒤편에는 초의선사가 차를 우려내는 데 쓴 샘물, 유천(乳泉)이 있다. ‘젖샘’이라는 뜻의 유천은 이름처럼 희뿌연 색을 띤 데다 맛 또한 달콤하다. 스님이 출타하지 않은 날에 가면 유천 물을 끓여 만든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다.

    솔바람 소리에 마음의 때를 벗기고

    겨울비 내리는 대흥사 경내.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일지암 툇마루에 앉아 겹겹이 펼쳐진 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잡념이 사라지는 듯하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온 뒤 운무가 자욱하게 낄 때나 눈이 올 때 더욱 운치가 있다. 쨍그랑거리는 풍경소리가 세상살이에 찌든 마음을 평안하고 여유롭게 해준다. 일지암 061-533-4964

    고흥 수도암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운암산(484m) 중턱에 위치한 수도암은 고려 공민왕 19년(1369)에 건립된 암자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산자락에 다소곳하게 들어앉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이끼 낀 바위와 작은 석탑, 아담한 약수터가 정겹다. 특히 운암산 정상에서 솟아나 산속에 박힌 맥반석을 거쳐 수도암까지 흘러내려오는 약수 물맛은 전국에서 알아준다. 수도암 산기슭에 자리한 자궁바위는 자손이 귀한 사람이 공을 들이면 자식을 얻는다는 신통한 바위다. 수도암 061-835-5179

    사성암 가는 길
    서울-호남고속도로-전주-남원-동림교-송치리(또는 승사교 앞)-19번 국도-2km-밤재터널-18km-구례읍-861번 지방도-문척교 건너서 우회전-죽마리-오산 어귀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1시간(차로 올라가면 10분 소요) 정도.

    일지암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목포IC-(2번 국도)-성전-(13번 국도)-해남읍-(완도 방면 827번 지방도로)-신기리-(807번 지방도로)-대흥사-일지암

    수도암 가는 길
    서울-광주, 순천-벌교 경유-27번 국도-과역-두원면 운대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운대정류소에서 500m쯤 가다 좌회전-운대저수지(운곡)-운곡마을을 거쳐 2km 올라가면 운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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