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고시원. 6.6㎡ 남짓한 비좁은 공간은 유튜버 한세상(49·가명) 씨가 스마트폰을 켠 순간, 어엿한 세트장이 됐다. 책상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을 고정하는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사업 실패와 두 번의 파산. 그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그는 현재 ‘TV한세상’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다. 채널을 개설한 지 3개월 만에 구독자 수 1만4000명을 돌파했다. 고시원에 앉아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은 첫 영상은 조회수 32만 회를 넘어섰다. “팬이 보내줬다”며 쌍화탕 한 포를 기자에게 건네는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요즘 그는 전국 각지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다시 태어났어요. 눈빛부터 맑아졌죠.” 그가 말했다.
유튜버 한세상(가명) (왼쪽) 김덕배 이야기 [김솔 인턴기자,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버로 새 출발!
동훈타파 [유튜브 화면 캡처]
몇몇 유튜버는 유튜브로 얻은 경제적 도움 외에 자신만의 콘텐츠를 키워가면서 느끼는 정신적 만족감 또한 재기에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어쩌다장애인함박TV’를 운영하는 함정균(47) 씨는 갑자기 맞닥뜨린 장애를 극복하는 데 유튜브가 힘이 됐다고 한다. 세계대회에서 수상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마술사였던 그는 2013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됐다. 절망에 빠진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유튜브였다. 함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역에서 환승할 때 겪는 어려움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전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다 보니, 내가 가진 장애를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뇌병변을 앓는 신동훈(20) 씨도 구독자 수 7000여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동훈타파’를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이나 ‘먹방’ 등이 주력 콘텐츠. 그는 “장애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해 친구를 사귈 수 없었는데, 유튜브 활동으로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구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자신의 고난을 털어놓거나 이를 극복해가는 유튜브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위안과 공감을 준다. 화려한 세트장이나 값비싼 촬영 장비는 볼 수 없지만,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튜버에게 조금씩 친근감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채널 구독자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유튜버가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구독자도 있다. 평소 유튜브 영상을 자주 시청한다는 손모(25) 씨는 “역경을 이겨냈다는 유튜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꾸준히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미닝아웃 시대…시청자는 위로와 공감 원해
어쩌다장애인함박TV (왼쪽) 박찬협TV잡식이 [유튜브 화면 캡처]
1인 크리에이터를 관리하는 MCN(다중채널네트워크)업체 유커넥의 관계자는 “평범하지만 시청자와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유튜버에게 구독자가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닝아웃(meanig out)’이라는 신조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닝아웃은 개인의 취향 또는 신념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선언하거나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권위자의 식견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전문가나 유명 인사보다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튜버를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식하는 것이다. 취업난, 경기불황 등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공감과 위안이다. ‘고난 극복형’ 유튜버가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는 환경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유튜버들은 “유튜버 도전을 만만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덕배 씨는 “초보 유튜버는 혼자 촬영과 편집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유튜브를 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소수만 큰 성과를 거두는 만큼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할애할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