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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만난 박모(75·여) 씨의 말이다. 그렇잖아도 힘든 저소득층의 겨울나기가 해마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매년 저소득층의 주요 난방원인 연탄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 이제는 도시가스 비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화석연료 사용 제한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연탄의 원료인 석탄 가격이 올라 빚어진 일이다. 정부도 쉽게 연탄 가격 인상을 멈출 수 없다.
연탄 대신 가스나 기름 등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것 역시 시작부터 어렵다. 보일러 재설치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후원이 문제다. 민간단체의 후원이 대부분 연탄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정부의 관련 지원을 늘린다 해도 저소득층 난방비가 부족해질 위험이 있다.
아직은 연탄이 가장 저렴하지만
2018년 12월 서울 중랑구 신내초등 학생들이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모습.
하지만 배달이 어렵다. 입구에서 20~30m만 올라가도 사람 1명이 겨우 다닐 만한 폭의 골목이 나온다. 말이 골목이지 사실상 계단이다. 계단 사이사이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왜 연탄 배달 자원봉사자들이 한 줄로 선 채 연탄을 손에서 손으로 옮기는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길도 곧게 뻗은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 꺾여 있다. 통행이 어려우니 LPG통이 들어오기 쉽지 않다. 등유도 상황은 마찬가지. 가까운 주유소도 없고, 연탄처럼 배달 인프라가 갖춰진 것도 아니다. 게다가 LPG와 등유 모두 가격 경쟁력이 없다. 둘 다 시간당 난방비가 2000~3000원 들어 연탄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다.
극빈층 주머니는 더 추워져
이미 웬만한 공동주택의 난방비보다 비싸다. 서울도시가스의 가스요금표를 보면 MJ(메가줄)당 15.3449원이다. 하루 평균 사용 열량이 42~43MJ이니 하루 660원, 30일 기준 2만 원가량이다. 반면 하루에 연탄을 한 장씩만 사용해도(배달료를 가산하면 장당 1000원) 달동네에서는 월 3만 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환경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연탄 가격을 계속 올릴 개연성이 높다. 일단 연탄 사용자가 너무 적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 개별난방 가구 가운데 도시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의 비중이 76.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석유보일러(14.3%), 전기보일러(4.14%) 순이었다.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전체의 1%에 불과했다. 연탄 수요가 감소하니 대한석탄공사(석탄공사)의 손실액은 점차 커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조사 결과 2015~2017년 2년간 석탄공사의 당기순손실 합계는 2248억 원이다. 누적 부채는 지난해 6월 기준 1조7692억 원이다.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에 따라 2010~2017년 석탄공사에 지급된 세금만 3815억 원이다. 세금 누수를 막으려면 연탄 가격을 올리거나, 아예 국내 생산을 멈추는 쪽으로 돌아서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연탄 가격을 올렸으나 극빈층의 소득 또한 그만큼 올랐을 리 만무하다. 통계청의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 중 최저소득층인 소득분위 하위 10%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84만1203원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11만7386원 줄어든 것.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감소했다. 실질소득은 80만9160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2만4573원 줄었다.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은 근로소득이다. 극빈층의 일자리가 가장 많이 줄어든 것. 일자리가 줄어든 데는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극빈층 대부분이 노인이라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소득분위 하위 20% 가구의 평균 연령은 65.7세다. 백사마을 외에도 영등포 쪽방촌, 홍제동 개미마을 등 빈곤층 거주지역 인근에는 대부분 인력사무소가 있다. 노원구 한 인력사무소를 드나든다는 백모(65) 씨는 “겨울에는 일자리가 없다. 방학 시즌이라 젊은 학생들까지 이 판에 뛰어든다. 또 50대면 몰라도 당장 70대를 바라보는 사람을 쓰려고 하는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지원금? 연탄은행에서 주는 거 말하는 거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가장 넓은 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다. [박세준 기자]
연탄은행 관계자는 “해마다 백사마을에 가구당 연장 150~200장을 나눠드렸다. 하지만 올해는 연탄 가격이 올라 120장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여타 단체도 마찬가지. 자원봉사단체 관계자는 “그렇잖아도 봉사단체에 대한 후원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인데 설상가상으로 연탄 가격까지 오르니 예년 같은 규모의 연탄 봉사가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민들에게 익숙한 명칭도 ‘연탄쿠폰’보다 ‘연탄은행’이었다. 1월 15일 백사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대부분 정부와 민간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하지만 연탄에 대해 물으면 단박에 연탄은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백사마을에 사는 이모(75) 씨는 “지난번 한파도 연탄은행 덕분에 버텼는데, 연탄 지원이 줄어 이번 겨울은 특히 걱정이다. 정부 지원이 늘었다지만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지원액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쿠폰만도 못한 에너지바우처
백사마을 초입부터 연탄을 쌓아놓은 집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사용하는 연탄이 많지 않은지 버려진 연탄 양은 적었다. [박세준 기자]
1인 가구 기준 8만6000원. 2인 가구는 12만 원, 3인 이상 가구는 14만5000원에 해당하는 에너지바우처를 받는다.
지원 대상도 약간 다르다. 연탄쿠폰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소외계층(한부모 가구, 장애인 가구,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 연탄 사용 가구(약 6만4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지원책이다. 한편 에너지바우처는 생계·의료수급 가구 중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중증 희귀질환자 가구(약 60만 가구)를 지원한다.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에너지바우처 혜택을 받기 어렵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극빈층은 에너지바우처에 대해 잘 모른다. 2016년 7월 에너지시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210가구 중 57%가 에너지바우처라는 제도를 모르고 있었다. 백사마을에 사는 한모(74) 씨는 “연탄지원금은 들어봤지만 에너지바우처라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 연탄을 때니 연탄지원금에 추가로 더 지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사실 알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지원을 받더라도 다 쓰지 못하는 가구 또한 많았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5~2017년 아예 사용되지 않은 에너지바우처 예산이 180억 원에 달한다. 비율로 따지면 연간 10%의 에너지바우처가 그대로 잠자고 있는 것. 사용률이 가장 낮은 가구는 노인 가구와 1인 가구였다. 2017년 기준 지원을 받은 노인 가구의 사용률은 89%, 1인 가구는 87%. 해당 제도를 도입한 2015년 이래 평균보다 높은 사용률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너지공단 측은 입장문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등의 에너지바우처 사용 편의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권신청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또 수급자 대상으로는 우편 안내문을 발송하고, 일대일 문자서비스 등 추가 홍보를 통해 발급률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바우처? 뭔지도 모르는데”
연탄업체 직원이 연탄을 배달하는 모습. 지대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 골목골목 배달해야 해 체력 소모가 심하다. [동아DB]
현행 지원책 안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전기 난방이다. 일단 기본적인 전기 설비는 돼 있으니 난방기구를 갖추는 시간이나 비용이 적게 든다. 게다가 저소득층에게는 월 1만6000원의 전기요금 감면 혜택이 있다. 에너지바우처를 통해 8만6000원을 지원받는 1인 가구가 전기요금을 한 달에 3만6000원 아래로 유지한다면 4개월간 난방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극빈층의 주거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지금의 극빈층 난방 지원책은 한국에너지공단, 지방자치단체 등이 각자 다른 지원 기준을 갖고 있어 오히려 드는 예산에 비해 극빈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적다. 이 예산으로 에너지 빈곤지역을 개발해 도시가스나 재생에너지 등 저렴하게 냉·난방을 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마련해주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