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 레포렐로가 부르는 ‘카탈로그의 노래’에 의하면 돈 조반니의 상대는 이탈리아에 640명, 독일에 231명, 프랑스에 100명, 터키에 91명, 스페인에 1003명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카사노바의 난봉을 부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는 대부분의 여자를 무력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도 돈 조반니의 행각은 범죄로 그려진다. 1막에서는 돈나 안나를 겁탈하려 하다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다.
4월20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지는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오페라 프로덕션의 ‘돈 조반니’는 낭만적인 시선을 최대한 배격하고, 선과 악을 극명하게 대비해 드러낸다고 해 화제다. 오타비오 마리노가 지휘봉을 잡고 지노 킬리코, 연광철, 나승서, 임지현 등이 출연한다. 2002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 프로덕션은 프란체스카 잠벨로가 연출을 맡고 마리아 욘슨이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런데 막상 단죄를 앞둔 이 바람둥이를 보고 있자니 착잡함이 밀려온다. 허세에 찬 돈 조반니가 마지막 참회의 기회마저 거절한 채 지옥문의 불구덩이로 사라지는 장면, 욕망을 억제할 줄 모르는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지.

주간동아 532호 (p7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