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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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대책 없는 인구절벽

출산율 높이는 발칙한 상상 이래도 안 낳을래?

자녀수에 비례해 대학 입학 특례와 주거비까지 전폭 지원한다면…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9-02 16: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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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7년 9월 7일 헌법재판소는 김비혼(非婚), 이독자(獨子·이상 가명) 씨 등이 제기한 ‘대한민국 만년 번영을 위한 특별조치법’(가칭·만번법) 등에 대한 위헌 청구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김씨와 이씨 등은 만번법이 헌법이 보장한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만번법은 2017년 12월 제19대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로 확정된 특별조치법으로, 저출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일부 초헌법적 내용을 담고 있어 지난 20년 동안 비혼자와 외자녀를 둔 부모의 헌법소원이 끊이지 않았다.



    4.3.2.1 룰 또는 0.3.6.9 지원법

    만번법은 양육 및 교육 등에 대한 각종 혜택은 자녀수에 비례해 크게 늘리고, 주거와 교육비 등 각종 부담은 자녀수에 반비례해 대폭 낮춘 것이 특징이다. 만번법 제3조에 규정된 대학 입시 관련 내용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는 물론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서울시내 주요 대학과 지방 국립대는 자녀별 정원 할당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외자녀는 대학 입학 정원의 10% 이상 선발할 수 없으며 두 자녀 가구의 자녀는 20%, 세 자녀 가구의 자녀는 30%, 네 자녀 가구의 자녀는 40% 이상을 의무 선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만번법을 ‘4.3.2.1 입학룰’이라고도 부른다.

    대학 등록금은 정반대다. 자녀가 많을수록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금 비율이 높아지고 자녀가 적을수록 지원 폭이 대폭 줄어든다. 예를 들어 네 자녀 이상을 둔 다자녀 가구의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의 90%를 정부가 내주고 세 자녀 가구의 자녀는 60%, 두 자녀 가구의 자녀는 30%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외자녀는 대학 입학 시 입학 성적과 상관없이 등록금 100%를 모두 자비로 납부해야 한다. 만번법을 ‘0.3.6.9 지원법’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2017년 이후 지금까지 만번법 위반으로 대학 신입생 선발권이 박탈되거나 정원 축소 등 불이익을 받은 사례는 10건이 넘는다. 법 시행 초기 법 위반 사례가 일부 있었지만, 2020년 서울 W대가 단 두 번의 만번법 위반으로 폐쇄 조치된 이후 더는 법 위반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번법 시행 이후 출산율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2.0을 돌파한 이후 일부 대학에서 자녀 할당 입학 비율을 어기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다출산지원부 관계자는 “일부 대학에서 지난해 외자녀를 10% 이상 부정입학시켰다는 첩보가 입수돼 가족관계등록부와 대학 신입생 전체 명부를 대조하고 있다”며 “만약 부정입학 사례가 확인되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는 동시에 해당 대학에는 다음 학년도 신입생 선발 때 외자녀 10% 선발권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번법은 대한민국 만년대계를 위한 것으로 어느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05년 1.08까지 추락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7년 만번법 제정 이후 서서히 늘기 시작해 2020년 1.3으로 올라선 데 이어 2025년 1.5를 돌파했고, 2030년 1.9로 늘었다. 지난해(2036) 처음으로 2.0을 넘어서, 인구 감소세가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판 향소·부곡

    김비혼 씨가 위헌 청구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구 감소세가 증가세로 돌아선 만큼 만번법을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 김씨는 “만번법 제2조 1항은 비혼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다자녀 가구에 혜택을 주려고 비혼자에게 형벌적 거주비를 부과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주거 이전의 자유까지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현대판 향소·부곡(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집단거주지)을 만들고 있는 만번법 제2조 1항은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다자녀 가구 우선 거주권’ 원칙을 규정한 만번법 제2조는 제3조 대학 입시 관련 내용과 마찬가지로 네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은 전국 어디든 거주를 희망하는 지역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거주비의 90%를 정부가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세 자녀를 둔 가정은 주거비의 60%를, 두 자녀를 둔 가정은 30%를 각각 지원받는다. 그러나 외자녀, 또는 자녀를 두지 않는 무자녀 가정과 비혼자에게는 거주비가 일절 지급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만번법 시행 이후 비혼자와 무자녀, 외자녀 가정은 높은 주거비용을 감당키 어려워 주거비가 저렴한 수도권 외곽과 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만번법 시행 전인 2016년 비혼자와 무자녀, 외자녀 가정의 서울 강남 3구 거주 비율은 60% 가까이 됐다. 그러나 2020년 30%대로 급격히 하락했고, 2030년에는 10% 이하로 떨어졌다.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40년이면 강남 등에서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를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에 비해 만번법 시행 전까지 인구수가 적었던 도심 외곽지역은 비혼자와 무자녀 부부의 집단거주지로 변모하고 있다. 비혼자와 무자녀 부부 사이에 ‘현대판 향소·부곡에 산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만번법 제5조를 이유로 김씨의 위헌 주장은 이유 없다고 각하했다. 만번법 제5조는 결혼 의사를 가진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남녀에게는 5000만 원 한도의 결혼 및 신혼여행 비용을 일체 지급하고, 신혼부부 전용 주거지역에 5년간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결혼 후 5년 동안 출산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모두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대한민국이 만년 동안 번영할 수 있는 기초는 결혼과 출산에 있다”며 “합계출산율이 평균 3.0에 근접할 때까지 만번법 시행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번법 시행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살아서 천국을 맛보려면 결혼해 자녀를 많이 낳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 돼가고 있다. ‘결혼천국, 비혼지옥’이요, ‘무자식 개고생, 유자식 상팔자’인 셈이다.

    이 글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극단적 상황을 상정해 작성한 픽션입니다. 비혼, 무자녀, 외자녀 가정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며, 자녀 출산 여부 역시 부부 자율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 없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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