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일본 도쿄가 서울보다 덥지 않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매해 8월이면 도쿄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폭염과 습기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휴가철 여행을 서울보다 높은 불쾌지수를 자랑하는 곳으로 갔던 이유는 하나다. ‘서머소닉 페스티벌’(서머소닉)이 열렸기 때문이다.
서머소닉은 200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3대 록페스티벌 가운데 하나다. 매해 토요일, 일요일 양일에 걸쳐 열리고 참가팀은 하루 차이로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면서 공연한다. 도쿄는 지바현 QVC 마린필드에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며, 인근 마쿠하리 메세(서울 강남 코엑스를 생각하면 된다)에 파티션을 치고 무대 몇 개를 더 설치한다.
이 시대 가장 실험적인 밴드
서머소닉에 네 번 가서 참 많은 팀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콜드플레이, 섹스 피스톨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소닉 유스 등등 한국에선 만나기 어려운 밴드들이었다. 2011년 이후 8월에 더는 도쿄에 가지 않은 건 나이가 들면서 도쿄의 폭염과 습기를 견딜 체력이 없어졌다는 게 첫 번째 변명이다. 그리고 한국의 내한공연 시장이 커지고 페스티벌 역사가 쌓인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웬만한 팀은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서머소닉 라인업이 발표되는 매년 봄이 되면 ‘음, 다 본 팀이네’ 하면서 넘겨왔던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3월부터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서머소닉 두 번째 날 헤드라이너가 바로 라디오헤드였으니까. 5월 발표한 9번째 정규 앨범 ‘A Moon Shaped Pool’로 다시 한 번 이 시대 가장 실험적이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임을 증명한 그들은 예전처럼 공연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일본에 오는 김에 한국에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일본행 티켓을 끊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렬해진 건 라디오헤드가 새 앨범 발매 후 가진 공연에서 가끔 ‘Creep’를 연주하는 걸 확인한 후였다.
라디오헤드의 최고 앨범으로 보통 3집 ‘OK Computer’나 4집 ‘Kid A’가 거론된다. 각각 1990년대 최고 앨범이요, 21세기로 가는 관문을 열어젖힌 명작이다. 이들 앨범의 가치만큼이나 이론 여지가 없는 또 하나의 사실, 오늘날의 라디오헤드를 만들어준 곡이자 현재까지도 그들의 음원 수입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곡이 ‘Creep’라는 것이다. 이 밴드의 최대 히트곡이자 1990년대 송가 가운데 하나인 이 노래를, 그러나 라디오헤드는 공연 때 좀처럼 부르지 않았다. 이 노래로 밴드 이미지가 굳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관객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라디오헤드가 ‘Creep’를 부르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상식이 됐다. 그런 그들이 실로 오랜만에 이 노래를 연주한 무대가 바로 2003년 서머소닉이었다. 이 페스티벌이 만들어질 무렵 기획자가 ‘라디오헤드를 섭외하는 게 목표’라고 밝힌 바 있고, 밴드는 페스티벌 개최 4년 만에 초대에 응했으니 일종의 팬서비스였을지도 모른다. 이 소식은 금세 한국에도 전해졌고, 팬들은 술렁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또 잠잠. 내가 처음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본 2009년 일본에서도, 그들의 첫 내한이던 2012년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도 ‘Creep’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사실 그때는 기대도 안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이 노래를 연주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 그러니 어찌 8월 중순의 도쿄라는, 열사의 도시에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8월 20일 늦은 오후, 신주쿠에서 JR를 타고 지바현 카이힌마쿠하리역으로 향했다. 공연은 오전부터 시작됐지만 일부러 늦게 갔다. ‘Hostess Club All-Nighter’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밤샘 공연 섹션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이 공연엔 한국에 온 적 없거나, 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영미권 인디 뮤지션들이 등장한다. 1990년대 개리지 밴드였던 다이노서 주니어는 ‘아, 맞다. 이게 1990년대 사운드였지!’라는 감탄이 들 만큼 지난 세기말 세상을 지배하던 투박하고 거친 에너지를 뿜어냈다. 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가졌던 차르의 보컬 존 그랜트는 앨범에서 만날 수 있던 그 서정적인 중저음을 들려줬으며, 최근 평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 펑크 밴드 새비지스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로 미래의 빛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섹션의 헤드라이너였던 애니멀 컬렉티브는 드럼 세션과 멤버 2명만으로 2010년대 사이키델릭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입증했다. 새벽 3시 반부터 2시간 동안 펼쳐진 그들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피곤하기는커녕 음악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운 탓에 8월 21일 두 번째 날 공연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날 헤드라이너인 라디오헤드를 위해 체력과 집중력을 아껴두기로 한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없는 잭슨 형제들의 잭슨스 정도를 맛본 후 오후 5시쯤 마쿠하리 메세를 떠나 QVC 마린필드로 향했다. 지바의 태양은 서울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졌다. 6시 무렵 어둑해지더니 라디오헤드의 공연이 시작되는 7시는 이미 밤이었다. 무대가 세팅되는 동안 흐르던 음악이 7시 10분쯤 꺼졌다. 무대 조명도 꺼졌다. 멤버들이 하나 둘 무대로 올라오고 붉은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켜졌다. 5만 명이 들어찬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함께 라디오헤드는 ‘A Moon Shaped Pool’의 수록곡을 순서대로 들려줬다. 몽환적이고 나른하며 꿈꾸는 듯한 시간, 피로가 극에 달한지라 순간순간 닥치는 졸음은 어쩔 수 없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처럼 몸을 비틀어가며 잠을 쫓았다.
열광하라, 라디오헤드가 왔다
잠이 스르륵 달아난 건 2003년 앨범 ‘Hail To The Thief’에 담긴 ‘2+2=5’가 연주될 때부터였다. 이 곡을 시작으로 명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라이브에서 꼭 듣고 싶던 ‘Airbag’을 시작으로 ‘Reckoner’ ‘No Surprises’ 등등. 처음 보는 공연도 아닌데, 볼 때마다 라디오헤드는 섬세하고 변칙적이며 길몽과 악몽을 오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줬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이 오직 음악의 힘과 그 음악에 걸맞은 분위기만으로.
본 공연이 끝났다. 꽤 긴 앙코르가 시작됐다. ‘Nude’를 마친 후 보컬 톰 요크는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조니 그린우드가 사운드를 체크하려는지 ‘솔’ 음을 쳤다. 그 순간, 촉이 왔다. 혹시? 그 짧은 순간의 기타 톤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백 번은 들었을 기타 아르페지오가 흘렀다. ‘Creep’였다.
그동안 일본에서 적잖은 공연을 봤다. 일본 관객은 대부분 조용하다. 박수와 함성, ‘떼창’ 등에서 한국 관객에 비해 차분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Creep’의 아르페지오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요크가 노래하기 시작한 순간, 절정부로 가기 전 그린우드가 후려치는 기타 디스토션이 스치는 순간 나는 한국에 와 있는 듯했다. 일본 관객의 그런 환호와 떼창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명곡을 라이브로 듣는다는 기분 이상의 반응이었다. 아프리카 평원에 자주 가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희귀동물을 마주한 여행자의 심정과도 같았을 거다. 라디오헤드의 열혈 팬일지라도, 그래서 그들의 공연을 보려고 비행기를 타는 여유와 열정이 있을지라도 ‘가호’가 없으면 체험할 수 없는 영광의 순간에 서 있다는 기쁨의 본능적 폭발이었을 거다.
총 스물세 곡을 연주한 후 모든 공연이 끝났다. 17번째 행사의 성공을 자축하는 불꽃이 터졌다. 5만 인파에 휩쓸려 지하철을 타러 가는 동안, 전날 오후 2시부터 30시간 가까이 못 자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렸다. 라디오헤드의 축복을 받았다는 희열만이 온 혈관을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