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현재 한국이 처한 저출산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인구학적으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수·출산율)이 1.3 미만으로 3년 이상 지속될 경우 ‘초저출산’ 사회라 보는데, 우리나라는 2001년 출산율 1.3을 기록한 이래 15년 동안 한 번도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1.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그래프 참조).
2015년 전체 출생수는 43만8420명으로 5년 전과 비교해 6.75%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00년 67만 명을 기록한 출생수가 2년 만인 2002년 49만 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한 세대(30년)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 출생수는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출생수가 가장 많았던 1971년생(102만 명)에 비하면 그 자식뻘인 2002년생은 49만 명에 불과한 것. 그만큼 우리나라 출산율은 급강하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출생수가 30만 명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출산율이 (2013년 수준인) 1.19로 지속될 경우 2750년 무렵 인구가 소멸된다는 섬뜩한 전망도 나왔다.
더욱 답답한 것은 그동안 정부가 실시해온 저출산 극복 대책에도 저출산 문제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5년 단위로 내놓고 있지만 1차 기본계획이 나온 직후인 2007년 출산율(1.25)과 지난해 출산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올해 1~6월 누적 출생수(18만2300명)는 2000년 이후 최저치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최근 ‘저출산 보완대책’을 급히 들고 나왔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만 키울 뿐 근본적인 해결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낳기보다 더 힘든 양육
8월 2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저출산 보완대책’은 지난해 말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2020년까지 출산율 1.5를 달성하기 위해 내년에는 최소 2만 명 이상 추가 출생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출생아 2만 명+α 대책’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보완대책은 아이를 낳고 싶으나 어려움을 겪는 계층의 출산율을 먼저 높이는 데 초점을 뒀으며, 일-가정 양립 실천 지원, 자녀수에 따라 차별화된 출산 지원책을 모색했다”고 밝혔다.이번 보완대책의 주요 골자는 난임시술 지원비 강화, 아빠 육아휴직수당 인상, 다자녀 가구 지원 확대 등이다. 먼저 난임시술 의료비 지원은 당초 내년 10월부터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으나, 올해 9월부터 지원이 필요한 모든 계층으로 전면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부부 합산 소득 월 316만 원(도시근로자 평균 소득 100%) 이하 계층의 체외시술 지원금을 190만 원에서 240만 원으로 인상하고, 시술 횟수도 3회에서 4회로 늘렸다. ‘아빠의 달’(같은 자녀에 대해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다 아빠가 이어받아 사용할 경우 아빠의 첫 3개월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까지 지원하는 제도) 급여는 2017년 7월부터 태어나는 둘째 자녀부터 현행 1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50만 원 인상되고 적용 기간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어난다.
또한 다자녀 가구 혜택으로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과 영유아(0~6세) 두 자녀 가구의 우선 입소 확대 추진, 맞벌이 3자녀 가구에 국공립 등 어린이집 입소 최우선권 부여, 다자녀 가구에 주택 특별공급 기회 확대, 국민임대주택 공급 시 넓은 면적(50㎡ 이상) 주택을 3자녀 이상 가구에 우선 배정 등의 방침이 채택됐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보완대책’ 발표 이후 민심은 더욱 들끓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근본 원인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비난이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예산 151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제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극처방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를 낳아 키울 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양육비인 만큼 아이 인당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지급하는 방안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각종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저출산 원인이 ‘양육비 부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과 출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여성 직장인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출산율 부진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미혼자가 자녀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 및 양육비 부담’(44.3%)이며, 그 뒤가 ‘전반적인 경제 및 고용 상황 불안’(30.43%)이었다. 경제적 부담에 대한 토로가 괜한 엄살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2012년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사회연구원의 ‘결혼 및 출산동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아이 한 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는 데까지 드는 비용은 3억896만 원이다. 초등학교 6년간 7596만 원, 중고교 6년간 8831만 원, 대학 4년간 7709만 원 정도가 드는 것. 그나마 여기에는 대입 재수 시 드는 학비, 해외 어학연수 등 이른바 스펙 쌓기용 비용이 빠져 있고, 심지어 현재 물가상승률까지 따지면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당시 보건사회연구원이 제시한 이 금액은 미국 중산층이 아이 한 명을 낳아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맞먹는 규모다. 2013년 미국 농림부가 발표한, 아이를 한 명 낳아 대학 4학년까지 가르치는 데 드는 양육비는 3억5000만 원이었다.
문제는 ‘양육비 부담’이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부가 양육비를 책임져주는 것이다. 인터넷 육아 포털사이트 ‘맘스홀릭’이 7월 18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저출산 정책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주부 대부분은 저출산 극복 방안으로 실질적인 경제 지원을 꼽았다. ‘저출산이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5%가 경제적인 이유를 꼽았고, ‘저출산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예산이 가장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보육비 지원이 28%, 임신·출산 의료비 지원이 17%, 주거비용 지원이 16%를 차지했다.
10년 넘게 전국 가정을 상대로 출산 장려 강의를 펼쳐온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은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아이 인당 양육비 50만 원 지급”을 주장한다. 비뇨기과 전문의이기도 한 이 소장은 “그동안 정관수술을 하려고 병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수술 전 ‘한 명 더 낳으라’고 권유해왔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이 ‘자식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무서워 못 낳는다’ ‘노후를 생각하면 아이는 한 명으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는 돈 드는 게 무서워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줘야 하고, 그 용기는 양육비 지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월 50만 원씩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급하되 자녀 소득공제를 없애는 방법을 동시에 제안한다. 자녀 출산에 따른 세액공제 폭을 늘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세금은 똑같이 내고 자녀 몫으로 일정 금액을 돌려받는 게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양육비 사용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일절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의 양육 지원 프로그램을 보면 너무 복잡해요. 대표적으로 어린이집 비용을 ‘아이사랑카드’로 결제하게끔 돼 있는데,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부모에게 직접 돈을 주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든 말든 그건 엄마의 재량이에요. 어린이집 이용 경비는 나라에서 받은 양육비로 지급하면 됩니다. 저출산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허투루 쓰는 돈이 너무 많아요. 대책 회의 한 번 할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겠어요. 애먼 데 돈 쓰지 말고, 부모에게 양육비를 주는 것이 출산율 상승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전업주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특히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의 경우 아이를 맡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큰 부담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양육비 지원이 출산 의욕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지난해 셋째를 출산한 30대 후반 곽모 씨는 “당장 다음 달 복직을 앞두고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하는데, 둘째 때와 비교해 베이비시터 비용이 50% 이상 올랐다. 누가 이 비용만 지원해준다면 육아 걱정은 반 이상 줄어들 것 같다. 주변을 보면 ‘돈만 있으면 둘째, 셋째를 낳고 싶다’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양육비만 해결되면 둘째, 셋째도 낳겠다”
양육비 지원과 더불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보완돼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맞벌이 가정 자녀를 우선으로 초등학교 1~2학년에 한해 돌봄교실을 운영 중이지만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학부모 만족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 3~6학년은 방과후 연계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지만, 운영 여부는 학교장 재량에 달려 있어 고학년 대상의 돌봄교실이 없는 학교가 허다하다. 결국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는 하교 후 혼자 집을 지키거나 학원 순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방학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직장맘 김모 씨는 “지난해까지는 2학년이라 방학 때도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3학년이 되니 자격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여름방학 내내 아이 혼자 집에 있었다. 아침마다 식탁 위에 점심을 차려놓고 출근했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이 혼자 밥을 먹을 걸 생각하면 안쓰러워 눈물이 나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경제적인 면만 생각하면 둘째를 포기한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지만, 늘 마음 한쪽에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있다. 돈 걱정 없이 둘째, 셋째까지 낳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1993년 출산율 1.65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저출산 1위를 기록한 프랑스가 2012년 드디어 출산율 2.02를 넘어서며 저출산 극복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파격적인 경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출산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
아동수당 지원 정책, 이제 시작할 때 됐다
먼저 기본적인 아동수당으로 ‘가족수당’이 있는데, 이는 가정의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2명 이상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가정에 지급되며 자녀가 3명 이상인 경우 가족보충수당이 추가로 지급된다. 또한 3세 이하 아동의 양육을 지원하는 ‘아동양육수당’이 있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부모 가운데 한쪽만 아동을 양육할 경우 기본급의 200%에 달하는 ‘편친수당’을 지급하고, 부모가 근로 등 이유로 직접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울 때는 ‘재택아동보육수당’을 통해 3세 미만 아동이 부모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자신의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육 서비스 지원 또한 풍부하다. 프랑스 아이의 90% 이상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에 다니며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받는다. 또한 초중교를 포함한 16세 이하(고2) 아이에게는 의무무상교육이 제공되고, 18세 이하 아동의 학교 진학을 지원하는 ‘학교진학수당’, 저소득층 가정의 18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신학기수당’,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아동교육수당’ 등이 있다. 현재 프랑스 정부가 출산 장려를 위해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재정은 전체 연간 883억 유로(약 15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4.7%나 차지한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이 100만 가구를 넘어 22.3%에 달하고, 자녀가 2명인 가구도 47.4%를 기록 중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해마다 출산 장려를 위해 예산을 늘리지만 여전히 GDP의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 2.55%(2011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미국, 터키, 멕시코 등을 제외한 OECD 회원국 대부분은 각각의 기준에 맞는 아동수당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아동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몇 차례 나왔지만 크게 이슈화되지 못하다 최근 ‘저출산 보완대책’ 발표 이후 아동수당 지급에 조금씩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광수 의원이 “인당 10만 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학교 입학 전인 6세까지 계산하면 연간 3조2000억 원, 초등학교 6학년까지로 확대하면 8조 원 정도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그동안 쏟아부은 저출산 예산에 비하면 결코 큰 액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는가인데,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특별한 항목의 목적세를 거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기존 방위세나 교육세처럼 사회적 합의하에 ‘인구투자세’를 거둬들이면 된다. 초저출산에 따른 국가적 위기가 심각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