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한 명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1.3으로 떨어진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다. 이처럼 장기간 초저출산 현상을 겪은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정도다. 이웃 나라 일본도 2000년대 초 잠시 초저출산 현상을 겪었지만 2013년 기준 합계출산율 1.43을 기록해 우리로서는 그마저도 부러운 수치다.
합계출산율 1.3은 생각보다 여파가 심각하다. 인구학의 안정인구모형에서 합계출산율 1.3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인구 규모는 매년 1.6%씩 줄어들고, 44년 후 태어나는 출생아 수 및 전체 인구는 절반으로 감소한다. 일본은 이미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203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추계가 발표된 지 오래다.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리란 뉴스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가능인구(15~64세) 감소 및 고령인구 증가로 사회연금보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으며, 그럴 경우 각 이해 당사자의 처지를 조율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다가올 위험을 관리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초저출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전 저출산 관련 전문가 19명을 대상으로 저출산 전망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여기서 전문가 다수가 가임인구의 경제적 불안정을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필자 주변을 둘러봐도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소득은 결혼시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요소를 갖춘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도 빨리 낳는다. 첫아이 출산 시기가 빠르면 둘째, 셋째를 낳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합계출산율도 올라간다. 반면 외환위기 시절 대학에 다니고 구조조정 여파가 항구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취업 경력을 쌓아야 하던 세대에게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는 마흔 살이 넘어서도 요원한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반출산적 기업 문화와 사회 환경에 관한 얘기 또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상담 중 만난 한 여성은 임신 초기라는 사실을 알고도 욕설을 퍼부은 상사 때문에 결국 태아를 잃었다. 가고 싶어 하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는데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없던 일이 돼버렸다는 얘기, 출산 휴가 후 진급에서 누락됐다는 얘기 등 다양한 사례가 출산과 직업 경력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했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저출산 정책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출산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육아 서비스도 공급자 위주로 이뤄지고 소비자인 부모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예비 부모가 자신의 능력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이를 맡아 키워준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보육기관의 아동 학대 뉴스가 적잖은 현실에서 무조건 자녀를 낳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정부의 큰 딜레마는 안정과 혁신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다. 합계출산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 요소는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경제적 안정과 미래에 대한 낙관인데,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밀어붙이는 정부 기조와 상반된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시간당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며,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고, 노동 관련 복지를 제한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문화는 결코 친(親)출산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와 같은 핵심 문제를 외면한 채 출산장려금과 난임치료 같은 대증적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급 출산 휴가를 들 수 있다. 물론 법은 어떤 경우라도 산모가 자유롭게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정해놨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직장 상사나 동료의 비난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정규직은 아예 유급 휴가를 쓸 권리조차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2014년 자료를 들여다보면 62% 넘는 임금노동자가 직장에서 출산 휴가를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물론 정부 노력만으로 저출산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초저출산 문제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공감, 배려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신부 배려 좌석은 비워두는 시민의식, 임신 초기인 부하 직원에게 호통 대신 격려와 배려의 손길을 내미는 상사,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바쁘더라도 퇴근 후 임신한 아내를 위해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남편 등이 대화와 교육으로 하루빨리 정착돼야 할 저출산 극복의 단초들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초저출산 현상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혹은 사회생활 중 임산부의 생리학적 변화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니 출산 및 육아에 따른 일-가정 양립의 고통은 더더욱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사회 인식 변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합계출산율 1.3은 생각보다 여파가 심각하다. 인구학의 안정인구모형에서 합계출산율 1.3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인구 규모는 매년 1.6%씩 줄어들고, 44년 후 태어나는 출생아 수 및 전체 인구는 절반으로 감소한다. 일본은 이미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203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추계가 발표된 지 오래다.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리란 뉴스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가능인구(15~64세) 감소 및 고령인구 증가로 사회연금보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으며, 그럴 경우 각 이해 당사자의 처지를 조율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다가올 위험을 관리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초저출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전 저출산 관련 전문가 19명을 대상으로 저출산 전망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여기서 전문가 다수가 가임인구의 경제적 불안정을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필자 주변을 둘러봐도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소득은 결혼시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요소를 갖춘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도 빨리 낳는다. 첫아이 출산 시기가 빠르면 둘째, 셋째를 낳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합계출산율도 올라간다. 반면 외환위기 시절 대학에 다니고 구조조정 여파가 항구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취업 경력을 쌓아야 하던 세대에게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는 마흔 살이 넘어서도 요원한 일이다.
반출산적 기업 문화에 두 번 울다
저출산 현상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다 보면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사회 환경, 직장에서 겪는 고충을 토로한다. 평일 늦은 밤에 퇴근하는 남편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주말에는 게임에 빠져 있기 일쑤다. 남편이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당사자인 남편만 빼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은 산모는 대부분 몸조리와 육아 관련 가사노동을 부모에게 의지한다.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 상당한 비용을 지급하고도 마음이 늘 불안한 양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조차 여의치 않을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결국 ‘더는 낳지 말아야지’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반출산적 기업 문화와 사회 환경에 관한 얘기 또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상담 중 만난 한 여성은 임신 초기라는 사실을 알고도 욕설을 퍼부은 상사 때문에 결국 태아를 잃었다. 가고 싶어 하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는데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없던 일이 돼버렸다는 얘기, 출산 휴가 후 진급에서 누락됐다는 얘기 등 다양한 사례가 출산과 직업 경력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했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저출산 정책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출산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육아 서비스도 공급자 위주로 이뤄지고 소비자인 부모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예비 부모가 자신의 능력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이를 맡아 키워준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보육기관의 아동 학대 뉴스가 적잖은 현실에서 무조건 자녀를 낳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정부의 큰 딜레마는 안정과 혁신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다. 합계출산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 요소는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경제적 안정과 미래에 대한 낙관인데,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밀어붙이는 정부 기조와 상반된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시간당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며,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고, 노동 관련 복지를 제한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문화는 결코 친(親)출산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와 같은 핵심 문제를 외면한 채 출산장려금과 난임치료 같은 대증적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경제적 안정과 미래에 대한 낙관 심어줘야
한 가지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산전·후 휴가와 육아 휴직 등 관련 법안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실효성이 기대되는 법안들도 있기에 현재 공포된 법이라도 제대로 시행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대표적으로 유급 출산 휴가를 들 수 있다. 물론 법은 어떤 경우라도 산모가 자유롭게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정해놨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직장 상사나 동료의 비난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정규직은 아예 유급 휴가를 쓸 권리조차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2014년 자료를 들여다보면 62% 넘는 임금노동자가 직장에서 출산 휴가를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물론 정부 노력만으로 저출산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초저출산 문제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공감, 배려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신부 배려 좌석은 비워두는 시민의식, 임신 초기인 부하 직원에게 호통 대신 격려와 배려의 손길을 내미는 상사,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바쁘더라도 퇴근 후 임신한 아내를 위해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남편 등이 대화와 교육으로 하루빨리 정착돼야 할 저출산 극복의 단초들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초저출산 현상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혹은 사회생활 중 임산부의 생리학적 변화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니 출산 및 육아에 따른 일-가정 양립의 고통은 더더욱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사회 인식 변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