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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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메이커 ‘노사모’ 어디로?

“해체할 때 vs 개혁 더 많은 역할” 조심스런 논의 … 향후 행보 정치 지형에 커다란 영향 끼칠 듯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2-12-2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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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화, 정보화 등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의 선택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3김 시대의 퇴장을 동반한다.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20, 30대가 신파워그룹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력히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노무현 시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킹 메이커 ‘노사모’ 어디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19일 밤, 노사모 회원들이 선거 포스터를 흔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오른쪽). 노사모의 인터넷 홈페이지(왼쪽).

    12월19일 밤 9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건너편 ‘광장’은 노란 물결로 뒤덮였다. 박빙을 거듭하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사이의 득표율 접전에서 노후보가 우위를 점하는 순간이었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3000여명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은 얼싸안은 채 ‘오~ 필승 노무현!’을 외쳤고, 일부 지지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승리’의 일등공신이 노사모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선거전 내내 돈, 조직, 분위기에서 모두 열세였던 노후보를 끝까지 지켜내고, 결국 당선시킨 원동력은 바로 이들이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국 8만여명의 회원을 통한 노사모의 선거운동은 16대 대선의 실질적 ‘킹 메이커’였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결국 노무현의 당선은 정치인 노무현의 승리인 동시에 정치 집단 노사모의 승리인 셈이다.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가 출범한 것은 2000년 6월. 그해 4·13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을 지지하는 네티즌 300여명의 동호회 형태였다.

    홈페이지를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팬클럽’ 회원이던 이들이 ‘한국 정치의 핵’으로 떠오른 계기는 올 초 벌어진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노사모는 이때부터 전국 각지의 경선 현장을 노란 물결로 물들이며 ‘이인제 대세론’을 꺾은 ‘노풍’의 진원지로 화제를 모았다. 그 후에도 이들은 노후보가 당 안팎의 공격으로 흔들릴 때면 당사 앞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대선자금 마련을 위한 ‘희망돼지’ 분양과 온라인 성금 모금에 앞장서는 등 노후보의 친위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회원 8만여명’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킹 메이커 ‘노사모’ 어디로?

    노사모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국민운동참여본부, 희망돼지 분양 등에 적극 참여하며 노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한 정치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자발적 활동은 우리 현대 정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노사모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보여준 ‘재미있는 정치’ ‘생활정치’의 모습은 정치는 ‘소모적이고 현실과 무관한 것’이라는 기존 인식을 뒤엎으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노사모 조직의 특징은 무정형성과 자발성. 온라인에서 출발한 모임답게 한계가 분명하지 않고, 일사불란한 활동지침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움은 역설적으로 노사모가 ‘폭발력’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됐다.

    18일 밤 10시30분 투표일을 불과 1시간 30분 앞두고 터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공조 파기’ 선언은 노사모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TV를 통해 이 ‘악재’를 전해 들은 노사모 회원들은 즉시 인터넷과 전화 앞에 모였고, 이들의 토론으로 다음 홈페이지 대선 게시판과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의 홈페이지가 순간 ‘다운’될 정도로 접속이 폭주했다. 같은 시간대 전화 사용량도 30% 이상 늘었다.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한 것이다.

    19일 오후, ‘투표율 저조로 노무현의 당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다시 움직인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투표를 독려했다. 출구조사 결과 오후 2~3시까지 이회창 후보에게 뒤지던 노무현 후보는 이후 역전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자발적 헌신은 과거와 같은 조직선거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에 사는 회사원 이치헌씨는 “투표일 오후 가까운 이들에게 모두 문자 메시지를 보내 투표에 참여하라고 했다”며 “노사모 회원은 아니지만 노사모 홈페이지에서 ‘노짱의 당선이 위험하다’는 글을 본 순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회원 가입 절차를 밟지 않았고, 누구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없지만 그 순간 이씨는 노사모 회원이었던 것이다.

    킹 메이커 ‘노사모’ 어디로?

    노사모를 이끈 명계남, 문성근

    노사모는 결국 자신들의 ‘스타’ 노무현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집단으로 성장한 이들의 진로는 어떻게 될까. 노사모의 행보가 어떤 형태로는 향후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노사모의 다음 ‘목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승리의 흥분에 들떠 있는 노사모 홈페이지에서도 ‘노짱(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부르는 애칭) 당선 후의 전망’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있다. 논의의 출발점이 된 것은 일부 회원들이 제기하고 있는 ‘노사모 해체’ 주장이다.

    노사모 회원인 구민호씨(33·회사원)는 “노무현의 당선으로 우리의 목표는 달성된 것 아니냐”며 “노사모가 유지될 경우 거대한 압력단체로 변해 당선자에게 부담만 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노사모가 정치 집단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빨리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구씨의 의견이다.

    노사모에 글을 올린 또 다른 네티즌도 “월드컵 후의 붉은악마의 아름다운 퇴장을 보라”며 “노사모도 지금 활동을 멈춰야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사모의 목표는 노무현 개인의 당선이 아니라 그로 상징됐던 ‘희망의 정치’ ‘원칙 있는 정치’의 완성이라는 반론들이다.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의 최민희씨는 “노무현의 당선으로 노사모는 목표의 절반을 이뤘을 뿐”이라며 “철새 정치인 청산 등 정치문화 개혁을 위해 노사모가 해야 할 역할은 아직도 많다”고 주장했다.

    19일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광화문에서 열린 노사모 회원들의 당선 축하 파티에서 문성근씨도 “이제 노사모는 보수언론 바로 세우기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금과 같은 ‘노무현 팬클럽’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노사모 회원은 “노사모 회원들의 공통점은 ‘정치인 노무현을 좋아한다’는 것뿐”이라며 “이를 배제하고는 어떤 것도 성립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짱의 득표율이 50%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그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노사모의 변함없는 사랑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회원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노짱’을 찍으라고 설득한 건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노사모는 이 정치의 실현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정치 참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사모 지역조직을 역시 노무현 지원 세력이었던 개혁적국민정당의 지구당으로 재편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들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노사모 집행부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노사모 차상호 회장은 “다음주 초쯤 운영진 회의를 통해 노사모의 장래에 대한 안건을 정한 후 회원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론 내릴 것”이라며 “자유로움과 적극적 참여가 노사모의 특징인 만큼 앞으로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논의가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치 활동 영역을 개척한 노사모가 ‘아름다운 퇴장’의 기록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아니면 노무현 정권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까. 향후 노사모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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