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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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時를 얻었으니 지혜를 보태소서”

  • 우찬규 / 학고재 대표

    입력2002-12-27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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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時를 얻었으니 지혜를 보태소서”
    이번 대선만큼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춘 드라마는 일찍이 없었다. 막판에 터진 변수, 그리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전개는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러나 극이 끝나면 조명은 꺼지게 마련. 극장의 어둠 속에서 싹튼 감동은 거리의 햇살 아래에서 흔히 허전함으로 바랜다. 허전함은 그 감동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란 아쉬움에서 온다. 감동을 지속시키고,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사람들은 기억을 복기(復碁)한다.

    대선 과정을 복기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전율을 맛본다. 감동에 휩싸여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시(人時)의 교훈’이었다. 인시를 얻는 자가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후세에게 그렇게 웅변하고 있다. 인시는 ‘사람’과 ‘때’다. 그리고 ‘사람의 때’이기도 하다. 봄에 밭을 갈고,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에 거두며, 겨울에 저장한다. 일은 때에 맞춰야 하고, 때는 해야 할 일을 정한다. 봄에 사람이 밭을 가는 것을 두고 ‘인시에 맞다’고 말한다.

    ‘세대혁명’의 흐름 파악이 당락 갈랐다

    노무현 당선자는 인시를 간파했다. 이회창 후보는 인시를 간과했다. 당락의 조건이 인시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다 밝혀졌다시피 이번 대선을 가른 물결은 20, 30대 젊은층이 몰고 왔다. 그들의 60% 이상이 노당선자에게 표를 던졌다. 오늘을 움직이는 인시가 그들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젊은층은 시대를 바꾸는 사람이다. 젊은 의식은 지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기성의 체제를 거부하는 그들의 추동력은 오로지 변화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다.

    20, 30대는 장강(長江)에 흘러든 물이다. 장강의 앞 물은 밀려나게 마련이다. 낡은 시간은 흐르는 물에 자취를 남길 수 없다. 또한 앞서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사람과 때의 가차없음이 대저 이와 같다. 노당선자는 ‘세대혁명’의 기미를 읽은 것이다. 그 물결이 방죽 넘어 마당을 휩쓰는데도 이후보는 안방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기성세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사리가 젊은 세대에 비해 분명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는 힘은 커오는 세대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침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기필코 행위하는 자의 몫이다. 앎과 함이 다르다는 얘기다. 옛날 제나라 환공의 일화가 그것을 말한다. 환공이 곽나라에 찾아가 백성에게 그 나라가 망한 이유를 물었다. 한 노인이 대답했다. “곽나라의 임금은 착한 자를 옳게 여기고 악한 자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환공은 “그런 어진 군주를 둔 나라가 왜 멸망했느냐”며 의아해했다. 노인이 다시 답했다. “착한 자를 옳게 여겼으나 등용하지 못했고, 악한 자를 미워했으나 버리지 못한 것이 이유입니다.”

    이것이 곧 앎과 함의 차이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젊은 세대는 이해할 수가 없다. 노당선자가 치켜든 개혁의 깃발 아래 젊은이가 모여든 이유를 나는 누가 이를 행할 것이냐를 따져본 그들의 실용주의로 풀이하고 싶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은 곽나라 노인의 대답에 토를 단다. 즉 ‘쓰고, 버리는 것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임금의 허물’이라고 했다. 그는 착한 자를 옳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면 꺼리는 폐단만 조성되고, 악한 자를 미워하면서 멀리 보내지 못하면 원망만 더할 뿐이라고도 했다.

    망설임과 꾸물거림을 미워하는 신진세대의 결단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하다. 긴 사색과 오랜 경험을 축적해온 세대는 그러나 세상의 변화가 말만큼 녹록지 않음을 잘 안다. 장강은 앞뒤 물이 섞여서 흐른다. 뒤에서 밀어닥친 물이 아무리 급하게 흘러도 앞질러갈 수는 없다. 인심은 변하고 세상은 요동친다. 그러니 삶의 지혜는 균형에 달려 있다. 나는 조선 초의 문신인 권근의 문집에서 균형의 중요성을 배운다.

    거기에 뱃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가랑잎 같은 조각배를 타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안전한 뭍으로 올라오라고 권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물결과 같고, 인심은 바람과 같다. 내 몸은 그 물결과 바람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이다. 내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나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쪽도 무겁지도 않게 가볍지도 않게 중심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평형을 이루면 거센 바람과 물결을 만나도 내 배는 전복되지 않는다. 늘 경계하는 나는 그대들의 안락이 도리어 우습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제 사람과 때를 얻었다. 물결과 바람도 그의 편이다. 순항의 지혜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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