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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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 통영 무대에 오른다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2-27 1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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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필  통영 무대에 오른다

    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한 지휘자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위).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에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아래)이 참가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경남 통영에 온다? 믿어지지 않지만 분명 사실이다.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은 ‘빈 필하모닉과 지휘자 주빈 메타가 2003년 4월2일 통영을 방문해 폐막연주회에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연주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자는 사라 장(장영주)으로 정해졌다.

    공연 예술의 메카인 런던이나 뉴욕에서도 빈 필의 공연은 대단한 뉴스거리다. 물론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어떤 지방에서도 아직 빈 필을 초청한 역사가 없다. 반면, 통영국제음악제는 이제 겨우 2회째인 새내기 페스티벌이다. 국내 행사였던 통영음악제의 역사까지 합하더라도 4회에 불과하다.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 김승근 국장은 “원래 빈 필은 2004년경에 초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침 비슷한 기간에 빈 필의 서울공연이 이뤄졌고 폐막연주회는 어느 정도 비중 있는 단체와 지휘자가 와야 한다고 생각해 좀 무리를 했다”고 밝혔다. 빈 필의 음악제 참가를 위해 사무국측은 당초 2003년 3월21일부터 27일까지로 잡았던 음악제 기간을 3월25일부터 4월2일까지로 조정했다. 빈 필 외에도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독일의 후고 볼프 4중주단,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인 앙상블 모데른 등이 2003 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4월2일 장영주와 협연도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 행사다. 윤이상이 타계하던 1995년까지만 해도 윤이상의 음악은 한국에서 거의 연주되지 못했다. 윤이상이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동백림 사건’ 이후 독일로 망명한 윤이상은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타계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해빙 무드가 이루어져 마침내 2002년에 윤이상을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고향 통영에서 탄생한 것이다. 윤이상이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여고 교사 등을 지냈던 탓에 지금도 통영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는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를 부른다.



    윤이상을 기념하는 국제음악제를 통영에서 연다고 했을 때 대다수 음악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음악 위주의 페스티벌은 독일의 다름슈타트, 도나우에싱엔 등 한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가 경남의 외진 구석인 통영까지 관객들이 찾아갈지도 의문이었기 때문. 그러나 3월3일부터 16일까지 열렸던 2002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시의 전폭적 지지와 정명훈, 임동혁 등 유명 음악인들의 참가로 3만명 정도의 관객이 몰려오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빈 필의 참가가 성사됨에 따라 통영국제음악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페스티벌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빈 필  통영 무대에 오른다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서 빈 필을 지휘할 지휘자 주빈 메타. 메타, 빈 필의 참가로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시아 최고의 현대음악 페스티벌’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2003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산은 15억원 수준. 여타 지방 축제에 비해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 예산은 통영시 한 해 예산의 1%에 달한다. 보통 지자체의 1년 문화예술 예산이 전체 예산의 0.8% 정도인 점을 감안해볼 때, 통영시의 지원은 파격적인 셈. 통영시 이용남 문화예술계장은 “통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통영다운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국제음악제라고 생각한다”며 “시민들도 음악제가 음악뿐만 아니라 통영의 관광자원을 함께 선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고무되어 있다”고 전했다.

    공연기획자인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는 “통영은 아름다운 풍광과 바다, 그리고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겹쳐 페스티벌을 열기에는 아주 이상적인 장소”라며 통영국제음악제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현대음악 페스티벌보다는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는 페스티벌이 관객 동원에 더 유리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 점은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측도 인정하고 있다. 빈 필이 베토벤, 브람스를 연주하는 것이나 축제 기간중 페스티벌 하우스에서 프린지 공연을 병행하는 것 등이 모두 고전음악 애호가들을 폭넓게 끌어안기 위한 방편이다.

    최상의 파트너들을 만났다는 점도 통영국제음악제의 흔치 않은 행운이다. 김승근 사무국장의 열의와 의지는 음악계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윤이상과 몇 번 만났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몇 년째 통영국제음악제에 매달리고 있다.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으로 위촉된 것이나 통영시의 전폭적 협조, 또 페스티벌 하우스의 건립 등은 모두 김 사무국장의 열의로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통영 바닷가에 윤이상 음악홀을 지을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통영국제음악제의 일등공신은 통영 시민들이다. 그들에게 이제 윤이상과 통영국제음악제는 긍지와 자랑의 이름이다. 11월27, 28일 통영국제음악제 100일 전야 콘서트의 일환으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회는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고기잡이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갔던 어민이 ‘음악회 가야 한다’며 일찍 항구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시민문화회관으로 왔다. 그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음악제 한 관계자의 말이다.

    생전의 윤이상은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어귀까지 와 먼 발치에서 고향 땅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냉전시대의 이념은 한 음악가의 애달픈 사연을 끝내 외면했지만 그 가슴 아픈 비원은 이제 고향 땅에서 ‘통영국제음악제’라는 꽃으로 활짝 피어나고 있다.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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