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가 본격적으로 홈런을 쏟아내기 시작한 때는 35세이던 1999년부터. 98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대결에 자극받은 것이었을까. 99시즌에 나선 본즈의 모습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왜소하던 체격이 갑자기 커졌고 홈런도 이전보다 두 배가량 더 쳤다. 86년부터 99년까지 시즌 평균 31.8개의 홈런을 쳤던 본즈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평균 51.6개의 홈런을 치는 괴력을 보였다. 이 가운데에는 2001년 73개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포함돼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약물 혐의’만 없으면 본즈는 정말 위대한 타자다. 그는 일곱 차례나 시즌 MVP에 올랐는데, 지금까지 본즈를 제외하고 세 차례 이상 MVP를 거머쥔 선수는 없었다. 또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루스의 장타율 기록을 넘어섰고 홈런 신기록도 세웠다. 게다가 파워 못지않게 빠른 발을 가진 본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700홈런-500도루 클럽의 유일한 멤버다.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은 고작 4명만이 300-300클럽에 가입했고 400-400클럽 멤버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타격도 정교해서 2004시즌엔 삼진아웃 수(41개)가 홈런 수(45개)보다 적었고, 고의사구는 무려 120개를 기록해 단일 팀의 한 시즌 기록보다 더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위대한’ 기록들이 약물복용 혐의로 인해 색이 바래고 있다.
약물복용설 때문일까, 인종차별 때문일까
그런데 본즈의 약물 관련 보도를 접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그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언론과 팬들한테서 ‘융탄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을까 하는 점이다. 흑인인 본즈가 백인인 루스의 기록을 깨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사실 미국에서 기자나 스포츠캐스터 등 스포츠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전히 백인이다. 2002년 자료를 살펴보면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라디오 및 방송사 캐스터, 기자 등의 83%가 백인이었다. 이에 비해 흑인은 고작 4%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성 보도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즉, 이번 본즈 경우를 볼 때도 백인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흑인의 기록 행진이 그다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본즈를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약물복용이 사실이라면 팬들을 속인 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더 큰 불이익과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이라면, 그건 오늘날까지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고질적 인종차별의 문제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