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왼쪽), 미카엘 에시앙(가나).
토티, 부상·중징계 등 시련의 연속
토티, 기억이 새롭다. 많은 국내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선수다. 토티가 이끌던 이탈리아는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과 만났다. 비에리의 선제골로 1대 0으로 앞서던 이탈리아는 경기 종료를 눈앞에 두고 동점골을 내주며 연장전에 들어갔다. 팽팽한 긴장감이 돌던 연장 전반 13분, 토티는 수비를 하던 송종국 앞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다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퇴장당했다. 수적 열세에 놓인 이탈리아는 결국 한국에 2대 1로 패했다. 이 이야기는 최근 국내 모 빙과회사의 CF로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에겐 환희였지만 토티에겐 통한의 장면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이탈리아가 결승 진출은커녕 8강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책임이 온전히 토티에게 돌아간 만큼 그가 느낀 좌절감은 매우 컸다. 더군다나 토티는 2002년 여름이 월드컵 첫 경험이었다.
토티, 사실 그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희망이자 영웅이다. 이탈리아 대표팀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등번호 10번의 계승자가 바로 그다. 전통적으로 유벤투스 10번에게 주어지던 대표팀 10번을, 타 클럽(AS 로마) 소속으로 거머쥔 축구사적 인물인 것이다. 창조적인 경기 운영과 허점을 찌르는 어시스트, 파괴력 넘치는 슈팅 등 그의 플레이는 쉽게 넘보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는 극찬을 듣고 있다.
하지만 토티는 지난 월드컵 이후 연이은 좌절에 시름하고 있다. 설욕을 다짐했던 유로2004 덴마크전에서 상대 선수에게 침을 뱉는 행위로 3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아 이탈리아의 조예선 탈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2월19일 자국 리그 엠폴리전에서는 왼쪽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2개월여 동안 필드에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그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월드컵 우승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도 2006년 월드컵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E조의 상대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과연 토티의 부활은 가능할 것인가.
네드베드·에시앙 월드컵 첫 무대
네드베드, 그는 토티보다 나으면 나았지 빠지는 선수가 아니다. 체코가 낳은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축구의 땅 유럽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칭송받는 슈퍼스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의 역할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90분 동안 쉴 새 없이 필드를 누비는 강철 체력, 스트라이커에게 완벽한 기회를 엮어주는 킬러패스, 좌우 양발을 가리지 않는 파워 넘치면서도 정교한 드리블링과 슈팅, 게다가 헌신적이기까지 한 수비 가담 등 현대축구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한 미드필더다. 체코축구협회가 1998년, 2000년, 2003년 그리고 2004년 네 차례에 걸쳐 그에게 최우수선수상을 안긴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네드베드는 월드컵과 같은 국제무대와는 유독 연을 맺지 못했다. 라치오, 유벤투스를 거치며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숱한 우승을 일궈냈으나 월드컵, 유럽선수권, 챔피언스리그 등 국제적 대항전에서는 매번 뜻하지 않은 변수로 눈물을 곱씹고 말았다.
초년 시절은 순조로웠다. 24세의 네드베드가 이끌던 체코는 유로96에서 준우승에 올랐다. 하지만 불운은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부터 시작됐다.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체코는 유로2000에서 설욕을 다짐했으나 프랑스, 네덜란드와 한 조에 편성되며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02년 월드컵에 다시금 도전장을 던졌으나 벨기에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밀리며 본선행이 좌절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네드베드는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가 비운의 스타라고 불려온 이유다.
불운의 결정판은 2002~2003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2004다. 이탈리아 라이벌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네드베드는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치른 4강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 유로2004 4강 그리스전에서도 네드베드의 모습은 잠시뿐이었다. 경기 도중 무릎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중도에 교체되고 말았다. 네드베드가 없었던 2경기 모두 팀은 패했고, 고대하던 네드베드의 국제대회 우승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네드베드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두 경기는 체코에서 ‘네드베드의 눈물’이라고도 불린다. 네드베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인가.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홀딩 미드필더를 뽑는다면 주인공은 누구일까. 선호에 따라 여러 선수가 호명되겠지만 빠질 수 없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가나의 에시앙이다. 홀딩 미드필더는 상대 공격수의 발을 묶는 수비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를 말한다(김남일을 떠올려보시라). 에시앙은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물리적인 강함을 겸비해 공격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최전방과 후방을 번개처럼 넘나드는 발군의 체력과 폭 넓은 활동 반경은 그의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강점이다. 이런 에시앙에게도 이번이 첫 월드컵 나들이다. 그동안 가나의 실력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가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본선 무대를 밟는다.
美 도너번 월드컵 삼세번 도전
도너번에게 독일은 남다른 곳이다. 1997년과 99년 세계청소년선수권을 통해 50m를 5.8초에 달리는 스피드와 천부적인 골 감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도너번은 17세이던 99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에르 레버쿠젠에 입단한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발현, 10대의 나이에 유럽챔피언스리그, 유럽축구연맹(UEFA)컵 등을 경험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향수병으로 2001년 자국 리그로 컴백했다. 미국프로축구 산호세 소속으로 출전한 2002년 월드컵에서 5경기 2골이라는 활약을 펼치며 미국을 8강으로 끌어올린 뒤 2004년 다시금 레버쿠젠을 노크했지만 또다시 적응에 실패한 채 지난해 여름 LA갤럭시로 돌아왔다. 도너번에게 이번 독일행은 세 번째 도전인 셈이다. 삼세번의 원칙은 미국 사람에게도 통할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