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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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자세, 눈부신 장식 … 女神이 맞나?

  • < 노성두/ 미술사가·서울대 미학과 강사 > nohshin@kornet.net

    입력2004-11-15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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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스런 자세, 눈부신 장식 … 女神이 맞나?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를 고전기라고 부른다. 예술과 문예의 황금시대다. 이 고전기 최고의 예술가를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일까? 후대 사람들은 주저 없이 피디아스를 떠올렸다. 물론 붓의 신기를 이룬 화가 아펠레스나 파르테논 신전을 지은 건축가 익티노스도 둘째가라면 서럽겠지만, 조각가 피디아스는 장님 시인 호메로스의 옆자리가 아깝지 않은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피디아스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아크로폴리스 재건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집안 대대로 아테네 토박이에다 실력자 페리클레스와 친구인 덕분에 중책을 맡았다. 재건안의 골자는 아티카 동맹의 맹주로 부상한 아테네가 동맹 기금을 끌어모아 도시 미관을 꾸미는 것이었다. 페르시아와 오랜 전쟁을 마치고 고대하던 평화의 도래를 선언한다는 의미도 있고 저마다 생각과 잇속이 다른 여러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범그리스적, 종교적 상징물을 짓는다는 명분도 따라붙었다.

    약관 서른에 불과했지만 피디아스는 뚝심과 추진력이 대단했다. 일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금세 아크로폴리스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 불과 십수년 동안 뚝딱 지어낸 신전 하나가 고전 미술의 간판이 되었다. 그리스는 그 후 2500년 동안 이 신전으로 관광수입을 착실히 챙기고 있다.

    촌스런 자세, 눈부신 장식 … 女神이 맞나?
    피디아스는 전체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파르테논 신전에 모실 아테나 여신상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테나는 다들 아는 대로 아테네의 수호신이다. 아테네시의 발주 조건은 황금과 상아를 마음껏 사용해 그리스 본토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크기로 신상을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주문 시점은 448년. 신상의 전시 장소는 파르테논 신전의 내부 감실.

    마음껏 사용하라는 황금은 과연 얼마나 쓰였을까? 아테나 파르테노스 신상에 들어간 황금은 모두 400달란트. 대략 1톤쯤 되는 분량으로, 아티카 동맹 기금으로 확보한 황금 총 보유량의 10% 정도였다. 이처럼 황금을 무지막지하게 쓴 이유는 유사시에 뜯어내 현금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피디아스는 아테나 신상을 완성한다. 파르테논 신전 완공보다 6년 먼저였다. 총감독 일 보랴, 92점이나 되는 신전 외벽 판부조와 160m짜리 감실 바깥 띠부조 작업을 병행하면서 전대미문의 신상 조각까지 만들어내다니, 훗날 르네상스 미술을 풍미했던 미켈란젤로가 보았더라면 ‘형님’ 하면서 한수 배우려 들지 않았을까?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지은 파르테논 신전은 전면 기둥 8개에다 측면 기둥 17개의 장대한 규모다.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이 신전을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그뿐일까? 신전의 감실 문을 들어서면 아테나 여신이 시야를 압도한다. 머리가 신전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신상의 키는 무려 12m. 얼굴과 두 팔은 상아를 큼직하게 잘라 붙이고, 옷과 투구와 방패는 황금을 녹여 발랐으니 희미한 올리브 등잔 아래서 보면 휘황하면서도 으스스했을 것이다.

    피디아스가 만든 아테나 여신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행히 문헌 기록도 풍부하고 로마 시대 모각도 여러 점 남아 있어 원모습을 복원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자료가 넘쳐 이게 맞네 틀리네 다툴 정도니 고고학자들로서는 무척 운이 좋은 경우다.

    먼저 기원후 1세기 플리니우스의 기록이다(박물지 36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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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가 24큐빗에 상아와 황금으로 지은 아테네의 아테나 여신상이 얼마나 거대한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아테나 여신상의 방패에서 바깥쪽 불룩한 가장자리에 부조로 새긴 아마존족과의 싸움, 오목한 부분에 새긴 신들과 거인족의 싸움, 그리고 여신의 샌들에 새긴 라피타이와 켄타우로스족의 싸움만 보아도 충분하다. 어느 한 부분에서도 조각가의 예술적 기예가 소홀함 없이 발휘되었다. 신상 받침부에는 판도라의 탄생을 새겼다. 탄생 장면에 얼굴을 내민 신들은 스물을 헤아린다. 니케 신상에서도 피디아스의 빼어난 솜씨를 볼 수 있다. 안목 있는 사람들은 뱀의 형상과 창 끝 아래 보이는 청동 스핑크스도 볼 만하다고 말한다.

    말이 난 김에 몇 마디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로써 지금껏 제 역량에 비해 충분한 찬사를 받지 못한 피디아스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피디아스의 예술적 재능이 작은 일감에서도 모자람 없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또 기원후 2세기 파우사니아스는 이렇게 썼다(여행기 1권 24, 5와 7).

    “신상 자체는 황금과 상아로 만들었다. 아테나 여신이 쓰고 있는 투구 한복판에는 스핑크스가 올라앉았다. 스핑크스에 얽힌 이야기는 뒤에 보이오티아를 다루는 대목에서 기록할 작정이다. 투구 양편에는 그리핀이 자리잡았다. 그리핀은 사자처럼 생긴 짐승인데 날개가 돋고 독수리의 부리를 가졌다고 한다….

    촌스런 자세, 눈부신 장식 … 女神이 맞나?
    아테나 여신의 신상은 반듯하게 서서 페플로스를 걸쳤는데 옷자락이 발 아래까지 흘러내린다. 여신의 가슴에는 상아로 만든 메두사의 머리가 붙어 있다. 여신은 또 높이 4큐빗의 니케 신상과 창을 들고 있다. 아테나 여신의 발치에는 방패가 하나 서 있고, 창 옆으로는 뱀이 한 마리 있는데 아마 에릭토니오스를 표현한 듯싶다. 여신의 입상 받침부의 작품은 판도라의 탄생을 보여준다.”

    이 문헌 기록들은 그 후 발굴된 복제조각 가운데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가려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한편 복제조각 연구을 통해 문헌 기록에 누락된 새로운 도상적 특징들이 확인되면서 피디아스 조각의 많은 부분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테나 신상에는 몇 가지 이상한 특징이 보인다. 우선 자세가 경직되어 있는 데다 정면을 보고 서 있어 최고 거장의 솜씨치고는 너무 투박하다. 물론 원작이었다면 느낌이 좀 달랐겠지만, 그래도 자세가 너무 무표정하다. 또 장식이 너무 많은 것도 눈에 거슬린다. 창, 방패, 투구, 메두사의 머리를 매단 흉갑 정도는 봐준다 쳐도 오른손에 든 니케 신상과 바닥에서 꿈틀대는 큰 뱀, 방패 안팎의 부조에 좌대와 샌들 바깥 테두리까지 빈틈없이 둘러친 부조를 일일이 들여다보려면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거기에다 팔찌와 귀고리까지 챙긴 걸 보면 정말 아테나 여신이 맞나 싶다.

    다시 말해 촌스런 자세와 눈부신 장식이 결합된 셈인데 이건 조각가로서 최악의 선택이다. 차라리 안 어울리는 장식들을 떼놓고 여신의 자세와 표정에 생기를 불어넣었더라면 과연 피디아스답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상을 왜 꼭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먼저 대리석 조각과 다르게 다양한 재료로 부분을 만들어 붙이는 덧셈식 작업방식이 문제였을 수 있다. 그러나 신상을 착수하기에 앞서 모델을 여러 차례 만들어 준비과정을 거쳤을 테고, 이전에도 혼합재료를 가지고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신상을 만든 적이 있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재건 프로젝트는 델로스 동맹이 와해된 뒤 아테네가 새로이 아티카 동맹을 주도하면서 벌인 사업이었다. 동맹국들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아테네의 정치적 독주가 마뜩찮은 판에 기껏 조성한 세금으로 자기네 안방 꾸미는 데 쓴다니 눈꼴이 시었을 것이다. 실제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페리클레스편을 보면 아크로폴리스 재건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 여론과 비난이 무척 거셌다고 한다.

    파우사니아스의 기록대로 아테나 신상 곳곳에 새긴 아마존족과의 싸움, 거인족과의 싸움, 켄타우로스족과의 싸움은 모두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빗댄 전형적인 신화 소재들이다. 강대한 제국을 상대로 전략적 동맹을 형성했던 그리스인들의 정서를 종교적으로 전략화한 것이다. 신상은 하나인데 이렇듯 많은 사연을 담으려니 자연히 부조 장식이 덕지덕지 붙고 여신의 자세도 경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테나 신상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투구의 생김새다. 머리 위부터 어깨 뒤까지 솔기가 길게 흘러내린 전형적인 코린토스 투구인데, 솔기 아래 스핑크스나 그리핀이 웅크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핀은 아폴론을 시중드는 괴수다. 더구나 방패를 쥐고 니케를 한 손에 든 아테나 여신의 자세도 델로스의 아폴론 신전에 모셨던 아폴론 신상과 똑같았다. 아마 억지 춘향으로 아티카 동맹 기금을 냈던 주변국 시민들은 피디아스의 아테나 신상을 보고 과거 델로스 동맹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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