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사건이 지구촌에 던진 정치적 지각변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달러(아프간 내부의 반탈레반 전선을 짜는데 든 공작금) 위력과 엄청난 공습에 탈레반은 무너졌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 맞서온 이라크 후세인 정권도 이번만큼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역사에 가설은 소용없다지만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탈레반 편을 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마도 미국과의 갈등 속에 친미 쿠데타로 물러났거나 암살됐을 것이다. 아니면 미국의 공세로 파키스탄은 엄청난 국가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처럼 신화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샤라프는 실리를 선택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지원해 온 탈레반에게서 고개를 돌린 것은 “파키스탄의 국익을 위한 선택”(파키스탄 영자 일간지 ‘새벽’의 편집국장 M. 지아우딘)이었다. 파키스탄이 살기 위해선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야 했다.
무샤라프는 “만일 파키스탄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주요 이슬람교 국가들과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게임의 반대편에 섰다면 파키스탄은 국가적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카슈미르 문제에서도 파키스탄은 인도에 맞서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었을 것이다. 뒤집어보면 “탈레반을 버렸기에 카슈미르도 보전할 수 있다”는 게 무샤라프의 논리다.
무샤라프는 현실주의자다. 9ㆍ11 테러사건 발생 전 그는 파키스탄 정보부(ISI)를 통해 탈레반에 재정지원을 해줬다. 파키스탄 서쪽에 친(親)파키스탄 정권을 만들어두는 것은 동쪽의 오랜 앙숙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포석이었다. 아프간을 지배하는 탈레반을 돕는 것은 당시로선 파키스탄의 국익으로 판단됐다. 군부가 지배하는 ISI는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이 아프간 접경지대의 알 카에다 기지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재정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훈련을 받은 파키스탄 무장세력들이 카슈미르 통제선(인도-파키스탄 접경선)을 몰래 넘어 인도군을 상대로 테러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었다. 인도가 유혈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ISI의 비호를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9ㆍ11 테러사건으로 탈레반의 효용가치는 떨어졌다. 미국에 맞서는 탈레반을 지원한다는 것은 현실주의자 무샤라프로선 바보짓이었다. 그럴 경우 파키스탄은 ‘불량국가’(rogue country)의 멍에를 뒤집어쓸 뿐 아니라 카슈미르를 접점으로 한 인도와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없음이 분명했다. 탈레반과 빈 라덴 간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그들과 연결된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을 버려야 하는 것을 뜻했다. 이 과정에서 무샤라프는 내부 반발을 막아냈다. 1999년 쿠테타의 주역 3인방 가운데 1등 공신인 마흐무드 아흐메드 중장(전 라발핀디 주둔 군단장, 쿠데타 성공 뒤 ISI 총책)을 해임, 군 내부의 친탈레반 세력이 꾀할지 모를 쿠데타의 싹을 잘라냈다.
정치권은 유권자를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군부실력자 무샤라프는 다르다. 그는 문민정치인들처럼 표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을 단속하고 과격단체 사무실 문을 닫는 것도 무샤라프니까 가능한 일”(쿠아이드 아잠대 국방전략연구과 리파트 후사인 교수)이다.
무샤라프는 인도에 대해 단호하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굳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충분한 군사력과 힘으로 파키스탄을 지킬 것”이라 말한다. 카슈미르의 과격집단과 인도 양측 모두에 단호한 무샤라프. 파키스탄 지식층과 중산층은 그런 무샤라프에 지지를 보낸다. 무샤라프의 생존게임은 적어도 단기적으론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남아시아의 휘발성을 떠올린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사에 가설은 소용없다지만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탈레반 편을 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마도 미국과의 갈등 속에 친미 쿠데타로 물러났거나 암살됐을 것이다. 아니면 미국의 공세로 파키스탄은 엄청난 국가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처럼 신화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샤라프는 실리를 선택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지원해 온 탈레반에게서 고개를 돌린 것은 “파키스탄의 국익을 위한 선택”(파키스탄 영자 일간지 ‘새벽’의 편집국장 M. 지아우딘)이었다. 파키스탄이 살기 위해선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야 했다.
무샤라프는 “만일 파키스탄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주요 이슬람교 국가들과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게임의 반대편에 섰다면 파키스탄은 국가적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카슈미르 문제에서도 파키스탄은 인도에 맞서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었을 것이다. 뒤집어보면 “탈레반을 버렸기에 카슈미르도 보전할 수 있다”는 게 무샤라프의 논리다.
무샤라프는 현실주의자다. 9ㆍ11 테러사건 발생 전 그는 파키스탄 정보부(ISI)를 통해 탈레반에 재정지원을 해줬다. 파키스탄 서쪽에 친(親)파키스탄 정권을 만들어두는 것은 동쪽의 오랜 앙숙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포석이었다. 아프간을 지배하는 탈레반을 돕는 것은 당시로선 파키스탄의 국익으로 판단됐다. 군부가 지배하는 ISI는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이 아프간 접경지대의 알 카에다 기지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재정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훈련을 받은 파키스탄 무장세력들이 카슈미르 통제선(인도-파키스탄 접경선)을 몰래 넘어 인도군을 상대로 테러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었다. 인도가 유혈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ISI의 비호를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9ㆍ11 테러사건으로 탈레반의 효용가치는 떨어졌다. 미국에 맞서는 탈레반을 지원한다는 것은 현실주의자 무샤라프로선 바보짓이었다. 그럴 경우 파키스탄은 ‘불량국가’(rogue country)의 멍에를 뒤집어쓸 뿐 아니라 카슈미르를 접점으로 한 인도와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없음이 분명했다. 탈레반과 빈 라덴 간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그들과 연결된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을 버려야 하는 것을 뜻했다. 이 과정에서 무샤라프는 내부 반발을 막아냈다. 1999년 쿠테타의 주역 3인방 가운데 1등 공신인 마흐무드 아흐메드 중장(전 라발핀디 주둔 군단장, 쿠데타 성공 뒤 ISI 총책)을 해임, 군 내부의 친탈레반 세력이 꾀할지 모를 쿠데타의 싹을 잘라냈다.
정치권은 유권자를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군부실력자 무샤라프는 다르다. 그는 문민정치인들처럼 표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카슈미르 자유전사들을 단속하고 과격단체 사무실 문을 닫는 것도 무샤라프니까 가능한 일”(쿠아이드 아잠대 국방전략연구과 리파트 후사인 교수)이다.
무샤라프는 인도에 대해 단호하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굳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충분한 군사력과 힘으로 파키스탄을 지킬 것”이라 말한다. 카슈미르의 과격집단과 인도 양측 모두에 단호한 무샤라프. 파키스탄 지식층과 중산층은 그런 무샤라프에 지지를 보낸다. 무샤라프의 생존게임은 적어도 단기적으론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남아시아의 휘발성을 떠올린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