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0

2008.06.17

중국, 李 대통령에게 경고 메시지 날린 까닭은

박근혜 전 대표 환대와 큰 차이 일본보다 나중 방문에 불쾌 등 7가지 이유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6-09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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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후상(先情後商).’ 중국은 동양문화가 그러하듯 정(情) 쌓는 걸 소중히 여긴다. 비즈니스(商)는 정을 쌓은 뒤 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자원에 ‘CHINA’라는 ‘깃발’을 꽂을 때도 중국은 통 큰 외교를 지향하면서 선정후상의 길을 밟았다.

    중국은 1월1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환대했다. “잘 모셔야 한다”면서 박 전 대표 측에 “어떻게 모실까요”라고 의전도 물었는데, 박 전 대표는 “이번엔 대통령의 심부름꾼으로 왔으니 대사관과 상의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06년 11월 방중한 박 전 대표를 ‘놀라울 만큼’ 극진히 대접한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국빈급에게만 내주는 12m 길이의 링컨콘티넨털 리무진을 탔다. 올 1월 방중 때는 이 리무진을 박 전 대표가 사양해 한국대사관 1호차로 이동했다.

    2005년과 2006년 방중 때 중국 인사들은 박 전 대표에게 “아버지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되시라”고 덕담했다. ‘사사여의(事事如意·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라는 뜻이 담긴 조각을 전하면서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언급한 사람(왕자루이·王家瑞·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있었다.

    “중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성공한 ‘경제 지도자’로 높이 평가한다. 박 전 대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에 진정성을 보였다.”(한나라당 구상찬 의원)



    중국 지도자들이 박 전 대표를 예우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지시로 2006년 10월부터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본뜬 ‘신농촌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情보다 商 앞세운 실용외교에 거부감 느낀 듯

    박 전 대표도 중국 인사들과 정을 쌓고자 노력했다. 새마을운동 관련 서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듣고 직접 세 상자 분량의 책을 골라 가져간 적도 있다. 2006년 방중 때는 정계에서 은퇴한 중국의 친한(親韓)인사들에게 선물도 줬는데, 노정객의 몸치수를 알아내 직접 옷을 고르기도 했다.

    11박12일간의 호주 방문 중에 중국 지진 참사를 전해들은 박 전 대표는 구두로 후 주석에게 조전을 보낸 뒤, 5월23일 서울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중국대사관은 박 전 대표의 귀국 일정에 맞춰 5월22일로 문을 닫으려던 빈소를 하루 더 열었다.

    중국은 접빈객(接賓客)의 범절을 중요시한다. 박 전 대표를 ‘놀라울 만큼’ 환대한 것도 중국의 손님맞이 전통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5월27~30일 후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홀대’로 여겨질 수 있는 대접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1. 신뢰

    중국은 이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월14일 후 주석의 특사로 이 대통령을 찾은 왕이(王毅·53) 외교부 부부장은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당선인의 취임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리라 보는 시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당선인의 생각은 어떤가?”

    ‘제팡르바오(解放日報)’는 5월26일자 평론에서 “이 대통령이 냉전적 사고로 미-일과의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면, 어떻게 최고경영자적 마인드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경제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비꽜다.

    이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의구심’은 ‘불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관측이다.

    2. 원칙

    중국은 정(情)을 먼저 쌓고 상(商)을 논하는 원칙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실용외교’라는 명목으로 ‘장사’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즉, 선상후정(先商後情)의 접근이 중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李 대통령에게 경고 메시지 날린 까닭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5월23일 주한 중국대사관을 방문, 중국 대지진 참사 희생자에 대해 묵념한 후 방명록에 위로의 글을 남기고 있다.

    3. 격(格)

    중국 공산당 사정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이 대통령이 한중관계의 격을 깨뜨렸다고 본다. 한국에 무시당했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미국→일본→중국이 아닌, 미국→중국→일본 순서로 이뤄지는 게 격에 맞는다고 여겼으며, 신정승 전 뉴질랜드 대사의 중국 대사 임명도 “격이 맞지 않는다”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중국은 신 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미루다 한중 정상회담일인 5월27일에야 제정했다.

    4. 실리

    중국과 일본은 ‘신밀월’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관계가 호전됐다. 베이징은 도쿄를 통해 얻을 실리가 적지 않다. 두 나라는 특히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태세다. 신경전을 벌여왔던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에 대한 의견도 수렴돼가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일본의 신(新)성장전략으로 ‘아시아경제·환경공동체구상’을 제창하면서 중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존재 가치’를 중국에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권부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서울과 거래하지 않아도 손해볼 일이 크게 없다.”

    5. 북한

    지금 중국은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 처지다. 남북관계가 엇도는 가운데서도 북한과 미국이 눈에 띄게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정지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의도된 결례’라고도 불리는 이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대접엔 북한 변수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6월17일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을 북한에 보내 북-중 관계를 다질 예정이다.

    6. 군사

    “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산물이다. 시대가 변하고 동북아 각국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냉전시기의 이른바 군사동맹으로는 역내에 닥친 안보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방중 첫날 이같이 말했다. 손님의 뒤통수를 친 격인 이 발언으로 외교 결례 논란이 벌어지자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신(新)안보관”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중국은 한미동맹 복원에 외교의 곁점을 찍은 이 대통령이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MD(미사일 방어)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국 처지에서 한국의 MD 가입은 군사적으로 한국이 ‘적(敵)’ 대열에 섰음을 의미한다.

    7. 경고

    중국의 ‘의도된 결례’는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뜻을 가진 한국을 향한 ‘엄중한 경고’였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의 경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박 전 대표의 접근법에 어떤 교훈이 있지 않을까. 후 주석은 5월 중국 지도자로서는 10년 만에 일본을 찾으면서 ‘난춘지려(暖春之旅·따뜻한 봄날의 여행)’라고 표현했다. 중국 언론은 지난해 4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일을 ‘융빙지려(融氷之旅·얼음을 녹이는 여행)’라 했다. 상대국을 자극할 수도 있는 ‘실용외교’ ‘자원외교’라는 수사(修辭)엔 왠지 향기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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