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성장통 사춘기 소녀 아주 섬세한 시간여행

  • 입력2007-05-29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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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통 사춘기 소녀 아주 섬세한 시간여행
    ‘백 투 더 퓨처’ ‘클릭’ ‘타임머신’ ‘12 몽키즈’…. 시간여행을 모티프로 한 공상과학(SF) 영화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때 그곳에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과거의 시간을 마법의 지우개로 지우고, 미래로 건너가 현재를 통째로 바꾸고 싶은 인간의 욕망. 불가능해 보이는 이 욕망을 가장 생생하게 실현할 수 있는 매체가 영화이기에 영화는 시간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새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역시 시간여행을 소재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과거와 현재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여고생 마코토는 어느 날 화학실험실에서 넘어진 덕에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타임 리프’라고 하는 이 능력을 사용해 과거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성적도 좋아지고, 지각도 안 하고, 가라오케방에서 10시간 동안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예전에 마코토처럼 타임 리프를 할 줄 알았던 이모에게서 ‘네가 덕을 보는 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길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뒤 만사가 꼬이기 시작한다. 매일 야구를 같이 하던 친구 치아키에게서 쑥스러운 애정 고백을 듣고, 자기 대신 실수를 저지르게 했던 남학생은 친구들에게서 ‘왕따’를 당한다. 마코토는 결정적으로 시간을 수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여행 횟수가 다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소한 장치와 의미로 채운 애니메이션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왜 감독은 할리우드풍의 타임머신이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시간여행을 택했을까. 마코토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언덕배기를 구르고 몸을 부딪히며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라 시간높이뛰기 선수가 된 것처럼 시간을 건넌다. ‘백 투 더 퓨처’의 자동차나 ‘클릭’의 리모컨은 모두 시간을 조작하는 외부의 도구다. 그런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소녀의 몸 자체를 사용해 시간의 강을 건넌다.

    감독은 영화에서 시간을 시계의 산물로, 과학의 산물로, 아껴야 하는 자본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자꾸 반복되는 어떤 것으로 형상화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오는 순환론적인 시간, 동양적인 시간개념이 영화에 드러나 흥미롭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 스타일도 할리우드의 장대한 스펙터클 옷을 입은 타임머신에 저장된 시간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 비껴가는 시간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마코토가 타임 리프 능력을 깨달은 뒤 하는 일은 고작 동생이 먹는 푸딩의 맛을 보고, 친한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주고, 한 시간 요금으로 노래방을 10시간 사용하는 것 등이다. 즉, 똑같은 시간여행도 메이드 인 재팬의 상표가 붙으면 소녀풍의 일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감독 호소다 마모루는 신화적 볼거리를 창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머리 앤’을 만들던 다카하타 이사오 편에 서 있는 듯하다.

    성장통 사춘기 소녀 아주 섬세한 시간여행
    그래서 이 섬세한 애니메이션은 세부를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장치와 의미로 속을 채운다. 일상에 상징을 배치해두고 그것이 다시 복선이 되어 곁가지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예를 들면 마코토와 야구를 같이 했던 친구 치아키가 자전거를 타고 가며 “나랑 사귀지 않을래”라고 고백하자, 당황한 소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소년이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사랑 고백을 원천봉쇄한다.

    그런데 이 순간 길가의 표지판은 양갈래 길 사인이 붙어 있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한 소년의 사랑 고백이 사실은 소녀의 인생에 양갈래 길을 만들 만큼 중요하다는 은근한 복선이라 하겠다.

    또한 털털하고 마음씨 좋은 소녀는 야구를 할 때마다 상대편 친구가 던져주는 공을 놓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일련의 성장통을 거쳐 부쩍 마음이 커지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 소녀는 이제 상대방의 캐치볼을 정확히 받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시간 그 자체의 의미, 즉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의미는 바로 마코토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에 이미 봉인돼 있다. 마코토의 자전거 브레이크가 망가졌다는 사실은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고장났음을 뜻한다.

    늘 무엇인가가 얼굴에 떨어지거나 넘어지고 부딪히는 마코토의 시간여행 제스처는 말 그대로 예측할 수 없는 사춘기 소녀의 정체성 혼란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제목에 혹은 캐릭터에 담긴 의미인 ‘질주의 적극성’은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가게 하는 순정의 힘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다.

    쓰쓰이 야스타카가 1965년 발표 … 주인공 이야기 슬쩍 바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이미 1965년 발표돼 전 일본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와 영화로 여섯 번이나 만들어졌던 쓰쓰이 야스타카의 원작은,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도 이야기도 달리해 새로운 시간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원작과의 연계성을 슬며시 보여주기 위해 원작의 주인공 요시야마 가즈코가 새 주인공 마코토의 이모로 나온다. 미술품을 복원하는 일을 하게 된 가즈코는 과거 사춘기의 시간여행 대신, 말 그대로 과거의 시간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마코토의 멘토이며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성성을 지닌 그녀를 좌충우돌하는 시간높이뛰기 선수, 마코토의 양성성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난히 소녀풍의 자질구레함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심성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 영화는 지브리의 대대적 지원을 등에 업은 ‘게드전기’(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했다)와 대결을 벌여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대상과 시체스 국제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우리의 마코토는 시간을 달렸을 뿐 아니라 비평적 흥행가도도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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