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LCD 상생협력 고난도 방정식

삼성-LG 협회 설립 의미 있는 악수 … 수직계열화 타파, 표준화 등 ‘산 넘어 산’

  • 박상현 디지털타임스 정경과학부 기자

    입력2007-05-29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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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CD 상생협력 고난도 방정식

    5월14일 한국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창립 총회에 참석한 인사들. 삼성전자 LCD총괄 이상완 사장,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전영수 LG필립스LCD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세계 LCD(액정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처절한 1등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이하 LPL)가 손을 잡았다. 5월14일 삼성과 LG의 전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이하 협회)를 설립하고 서로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것.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를 두고 ‘현대판 도원결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의 최대 라이벌인 삼성과 LG가 손을 부여잡았으니, 이런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협회 설립은 일본의 기술력과 브랜드, 대만의 생산 능력이 결합하는 ‘일-만(日-灣) 밀월’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여기에 대-대기업, 대-중소기업 간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천하패권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한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삼성과 LG의 상생협력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계가 안고 있는 복잡한 함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장비·부품 국산화율 30~40% 고작

    그동안 전 세계 패널 시장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LCD와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등 핵심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이미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패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규모의 설비와 부품소재의 해외 의존도를 감안한다면 ‘디스플레이 강국’은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비 및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은 각각 50%, 66%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핵심 장비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실제 국산화율은 30~40%에 그친다는 것이 업계 판단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세계 10대 장비업체 현황이다. 일본과 미국 업체가 각각 7개, 2개인 데 비해 국내 업체는 전무하다. 디스플레이 산업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산업으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지만, 생산을 위한 장비소재 부문의 국산화는 저조하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상생협력 핵심 과제 가운데 ‘수직계열화 타파’가 250여 개 삼성, LG 협력업체들의 숙원이었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수직계열화’는 한마디로, 삼성과 LG에 장비나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철저하게 한쪽과만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에 납품하던 업체가 LG에 납품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이 업체는 괘씸죄로 찍혀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몰린다. 현재 250여 개 장비재료 업체 중 삼성과 LG에 동시 납품하는 회사는 20여 개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이번 상생협력에서는 수직계열화의 근거로 작용하던 ‘JDP(Joint Develop-ment Project)’ 규정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규정엔 ‘대기업-중소기업이 공동 개발한 장비재료는 통상 3년간 타 대기업에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장비업계는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장비업체 사장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설립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반도체 부문에서 신성이엔지, 피에스케이, 국제엘렉트릭 등 일부 기업들이 교차공급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직계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핵심 현안인 패널 크기의 표준화 문제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의견차가 드러나고 있다. 권영수 LPL 사장은 “8세대에서 표준화가 안 되면 상생협력의 깊이가 낮아질 것”이라며 표준화의 ‘민감성’을 건드렸다. 그러나 초대 협회장인 삼성전자LCD총괄 이상완 사장은 “(표준화는) 시장이 판단할 문제” “표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경쟁 환경에서 차별화도 중요하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양사가 만든 패널을 상호 구매한다는 것도 여전히 오매불망(寤寐不忘)이다. 권 사장은 4월 기자간담회에서 속담을 패러디해 “고래 싸움에 새우만 살찐다”면서 “삼성과 LG의 과당경쟁으로 대만 LCD업체들만 어부지리 상태다”라고 주장했다. 상호 구매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그러나 이상완 사장은 “패널 규격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두 회사는 나름의 영업 전략을 갖고 있다”며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TV 완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DM총괄은 현재 대만의 AUO로부터 37인치 TV용 LCD 패널을 상당량 구입하고 있다. AUO는 세계 LCD시장에서 삼성과 LPL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 삼성전자는 37인치 패널은 생산하지 않지만, LPL은 가장 큰 비중으로 생산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협회 설립과 관련해 “TV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상대방 계열사의 패널을 구매하지 않던 관행을 버리고 ‘패널 상호 구매’에 합의함으로써, TV 생산업체는 물류비를 절감하고 패널업체는 시장수요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과는 괴리가 너무 커 보인다. LPL의 한 임원은 “37인치 패널을 팔 곳이 없어 삼성에게 구매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상생협력의 상징적인 의미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삼성의 생각이 협회 출범 전과 달라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LCD 상생협력 고난도 방정식

    LG필립스LCD 파주단지(왼쪽)와 삼성전자 탕정 LCD 공장 전경.

    패널 상호 구매도 회의적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협회 출범에서 삼성SDI와 LG전자 등 PDP 진영은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PDP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CD에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PDP가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지적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배홍규 삼성SDI 상무는 “LCD 하나로만 한국이 디스플레이 강국의 위상을 지킬 수는 없다. 양 바퀴로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마쓰시타는 이미 올해 초 2800억엔을 추가로 투자해 PDP 신규 라인을 건설하기로 하는 등 한국 업체에 빼앗긴 PDP 왕좌 자리를 되찾기 위한 ‘굳히기 작업’에 돌입했다.

    이상완 사장은 “디스플레이 종주국인 일본은 공격적인 투자와 핵심 원천기술로 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대만과 중국 등 후발업체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원가경쟁력으로 우리를 무섭게 추격한다”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런 점에서 상생협력을 위한 협회 출범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4개 업체간의 얽히고설킨 함수관계를 풀어내지 못하면 상생협력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경쟁, 협력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업계의 지혜와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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