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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 신권 값이 4000만원? “웬일이니”

일련번호 101번, 1000원권은 2100만원 …‘돈 되는 돈’ 재미도 최고, 화폐수집 열풍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1만원 신권 값이 4000만원? “웬일이니”

1만원 신권 값이 4000만원? “웬일이니”
화폐수집 초보자 이모 씨는 3월30일 인터넷쇼핑몰 G마켓에서 마감한 새 지폐 경매 결과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만원짜리 신권지폐 한 장이 4000만원, 1000원권 한 장이 2100만원에 낙찰됐기 때문. 이들의 발행번호는 각각 ‘AA0000101A’다.

“4000만원이면 지방 소도시에서는 소형 아파트 한 채 값입니다. 발행번호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그 같은 가치가 생길 수 있는 건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화폐수집 세계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고 흥미롭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일 같아요.”

3월 초부터 시작된 이번 경매에서는 101~1만번대까지의 신권이 나왔다. 이보다 앞선 번호인 1~ 100번대까지는 모두 화폐금융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수집가들을 한껏 달뜨게 했던 경매는 한국조폐공사가 주최했고, 수익금 전액은 사회복지공동모금에 기부한다.

조금만 관심 기울이면 횡재도

이번 경매가 입증하듯 요즘 화폐수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흔히 화폐수집은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고, 재미도 최고’이기 때문에 ‘취미의 황제’라고 불렸다. 그런 ‘고급 취미’가 거리로 내려와 대중적인 바람을 타는 것은 지난해 1월 5000원권 지폐가, 올해는 1월 1000원, 1만원권이 새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기 때문.



수집인구도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화폐수집 인구를 5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수천 명씩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다음의 ‘동전수집-동전과 나’는 회원이 1만2000명, ‘화폐수집-동전과 지폐’는 1만1000여 명, 네이버의 ‘수집본색’은 1만3000여 명에 이른다.

화폐수집은 일단 시작하면 그 자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만큼 매력이 크다고 한다. 화폐수집에 3000만원 정도 들였다는 김모 변호사는 “화폐수집이 혼을 쏙 빼놓는다”고 표현했고, ‘동전수집’ 카페 운영자인 서완석(인테리어 디자이너) 씨는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옛 동전들을 바라보면 선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화폐수집은 경우에 따라 투자가치가 크다. 희귀 화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액에 거래되기도 한다. 광무 10년(1906년)에 제조된 5원, 10원, 20원 3종 금화세트는 4억원대 가치가 있고, 지난해 5월 국내 최대 화폐상인 화동양행의 경매에서 1906년 만들어진 20원짜리 금화는 1억25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주변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큰 횡재를 할 수 있는 것도 화폐수집의 매력이다. 예컨대 1998년 제조된 500원짜리 주화는 희귀한 가치를 갖고 있다. 당시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은행으로 수거된 주화가 많아져 한국은행은 추가로 찍어낼 필요가 없었고, 해외증정용 민트(조폐국) 세트 8000개만 발행했다. 이것이 국내 경매시장에 종종 등장하는데 ‘미사용(uncirculated)’ 주화세트는 6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수집의 기쁨을 만끽하려면 기본 지식을 알아야 한다. 먼저 누구나 공감하는 특이번호나 수집가치가 높은 화폐는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가장 인기 높은 지폐는 1111111처럼 같은 숫자로만 이뤄진 ‘솔리드 노트’나 1234567처럼 숫자가 차례대로 연결되는 ‘스트레이트 노트’다. 또 5303035처럼 가운데 수를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는 ‘레이더 노트’, 2323232처럼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리피터 노트’, 1000000처럼 일련번호가 100만 단위인 ‘밀리언 노트’, 0123456처럼 오름차순으로 정렬되는 ‘어센딩 노트’, 그 반대인 ‘디센딩 노트’ 등도 수집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좋은 번호의 지폐를 차지하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합니다.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보존상태가 좋은 것을 구하려면 은행에서 환전하거나 경매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구합니다.”(서완석 씨)

주화에도 품위 등급이 있다. 처음부터 기념품용으로 만들어진 프루프(proof) 주화는 특수 가공처리를 해 글자나 도안이 완전하게 보존된 것을 말하는데 그만큼 가치가 높다. ‘미사용’ UNC(Uncirculated) 주화는 유통을 목적으로 제조되지만 이후 잘 보관돼 변색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 하위 등급으로 ‘준UNC’, 극미품(Extra Fine), 미품(Very Fine), 보통품(Fine) 등이 있다.

특이번호나 에러 주화 높은 가격

“제조할 때 의도하지 않은 에러가 생겨 찌그러진 주화 등도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주화에 ‘견본’이라는 글자가 박히거나 지폐에 ‘specimen’이라는 글자가 박힌 것들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지요. 이런 화폐들은 조폐공사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들이기 때문에 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집니다.”(화폐상 최모 씨)

수집가들은 대개 국내외 화폐를 동시에 모은다. 해외 화폐는 국내 화폐보다 형태나 내용에 더 세심하게 신경 쓴 것들이 많다. 우리 화폐에는 기본 정보를 알려주는 문구밖에 없지만, 미국 지폐에는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 영국 1파운드화 테두리에는 스코틀랜드 왕국 문장에 사용됐던 ‘NEMO ME IMPUNE LACESSIT(나를 화나게 하면 누구든 무사하지 못하다)’가 적혀 있다.

수집 초기에 흔히 겪는 시행착오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서울 충무로1가 회현지하상가에서 만난 이모 씨는 “수집 초기에 1988년 올림픽 기념주화 세트를 12만원에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바가지를 쓴 것이었다. 지금은 가격이 떨어져 5만원대에 그친다”고 아쉬워했다.

수집가들은 ‘의미 있고 희귀한’ 화폐 앞에서는 늘 고뇌하는 파우스트요, 느닷없이 ‘지름신’이 강림하는 불치병에 시달린다. 걸핏하면 화폐구입에 월급을 다 털어넣어 한 달을 허덕거리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화폐수집을 금전적인 가치로만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환금성만 따지면 아무리 훌륭한 화폐가 손에 들어와도 돈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욕심을 줄이고 관심 있는 화폐의 유래, 그것이 담고 있는 정보 등에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해요.”(화폐상 김단 씨)

눈만 뜨면 화폐 수집에 여념 없는 ‘초보’ 이씨는 은행을 지나다닐 때마다 습관적으로 화폐를 교환한다. 혹시 좋은 번호의 지폐를 만나지 않을까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은행원에게서 “결혼식 부조에 쓰려고 교환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지만 그는 돈다발 안에서 ‘솔리드 노트’라도 발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주간동아 2007.04.17 581호 (p44~45)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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