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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작작하라, 심신이 건강하려면

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 “덤비면 매사 그르치기 십상 … 욕심내면 화 불러”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여유작작하라, 심신이 건강하려면

여유작작하라, 심신이 건강하려면
‘여유작작(餘裕綽綽)’이라…. 글쎄, 의구심이 든다. 복잡다단하고 스피디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 어찌 어울릴 만한 조합인가!

하지만 권이혁(84) 성균관대 이사장에겐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이 사자성어가 평생을 관통해온 모토(motto)다. 지난해 10월 그가 낸 에세이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유작작한 삶. 대관절 무엇이 여유작작인가?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며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거지. 나만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서두를 때가 종종 있어. 그럴 때마다 ‘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 의식적으로 여유작작을 마음속에 떠올리지. 그러면 실제로 마음이 편안해져.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랄까.”

권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학장과 서울대 총장을 거쳐 문교부 장관, 보사부 장관, 환경처 장관 등 정부 3개 부처의 수장(首長)을 지낸 국내 의학계의 원로다. 1923년 기해(己亥)생. 돼지띠다. 올해가 ‘황금돼지해’라고 떠들썩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실상은 기해년이 황금돼지해에 더 가깝다고 한다.

올해 만 84세 고령 왕성한 사회활동



권 이사장은 아직까지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장과 학술원 회원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밑바탕이 돼준 건강도 여유작작에서 비롯됐다고 여긴다.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유작작은 정신적 건강과 맥을 같이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겐 정신적 여유가 생기는 법이지.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남에게 기쁨과 도움을 줄 수 있고. 사랑? 인간 사이에 가장 기본이 된다는 사랑도 정신적 건강, 곧 여유작작의 산물이야. 여유작작하면 건강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어.”

권 이사장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가운데 정신적 건강을 으뜸으로 친다. 1955년 미국 미네소타 보건대학원 유학 시절,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현지 장애인학교에서 양팔이 없는 한 10대 소년을 보게 됐다. 소년은 무척 명랑했고 구김살이 없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소년이 발가락으로 타이핑하는 모습. 그 흔치 않은 광경에 ‘학생 권이혁’은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소년의 신체적 건강은 이미 손상됐다. 그럼에도 정신적 건강은 만점에 가까웠다. 그 정신적 건강이 지탱해주는 소년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랬다. 정신적 건강의 소중함! 권 이사장에겐 어느 교수의 강의보다도 값진 기억으로 각인됐다.

“요즘 웰빙이니 참살이니 하잖아. 그런데 그게 다 194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채택한 ‘건강의 정의’에 나오는 거야. WHO는 건강의 개념을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에 한정하지 않고,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봤거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사회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어? 이게 내가 정신적 건강에 가장 무게를 두는 이유야.”

여유작작하라, 심신이 건강하려면

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인생 모토인 ‘여유작작’을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냈다.

정신적 여유. 좋은 느낌의 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구조적으로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물론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 하지만 믿음을 가져야 해. 삶에서 그것이 소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 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종교라는 것도 그래. 믿음과 동떨어진 종교라는 게 있기나 할까?”

권 이사장은 지금까지 1300여 회나 이어온 결혼식 주례사에서 여유작작이란 말을 빼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여유작작이란 말을 근거 없고 설득력이 약한 무조건적 낙관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 세상에서 큰일을 해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유작작한 인물들이다. 숨가쁘게 기업을 일구다 보니 여유와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박식하고 한번 결심한 일에는 무서우리만치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기질은 의외로 여유작작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것. 반면 국민들에게 쓰라린 경험을 남긴 황우석 교수 파문은 여유작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서두르는 건 과학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 이사장은 한 조직의 리더라면 여유작작해야 제대로 된 리더십을 구사할 수 있고 좋은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낼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 바람인데, 노 대통령이 모든 일에 좀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 한 나라를 경영하는 책무를 맡고 있는 만큼 마땅히 여러 의견을 경청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 끼 챙기지만 과식하지 않아

문득 궁금증이 인다.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해야 정신적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걸까. 권 이사장이 제시하는 답은 ‘자신과 사회에 걸맞지 않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사색과 독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 감정을 뒤흔들 만큼 슬픈 콘텐츠는 삼가는 게 좋다. 그래서일까. 권 이사장은 올해 자신의 화두를 ‘지기수기(知己修己)’로 정했다. ‘나를 알고 나 자신을 갈고닦는다’는 뜻. 이는 곧 극기(克己)와도 통한다.

권 이사장의 ‘신체적 건강’은 고령임을 감안할 때 매우 좋은 편이다. 172cm에 73kg. 척추관협착증이 있어 가끔 정강이가 저린 것을 빼면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다. 하지만 운동은 즐기지 않는다. 워낙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다만 수영장 물속에서 20분간 걷기를 일주일에 서너 번쯤 한다. 살아오면서 특별히 아픈 적도 없었다.

특이한 생활습관 한 가지는 나이에 비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것. 보통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7시에 눈을 뜬다. 장관 시절 밤 12시 마감뉴스를 체크하던 버릇이 몸에 밴 때문이다. 아침에 헤드라인만 훑은 신문도 밤엔 꼼꼼히 살핀다. 아침 9시30분이면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 자리한 개인 사무실로 ‘출근’한 뒤 하루 평균 1~2건 있는 각종 모임과 행사에 참석한다.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오지만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피하고 좋아하는 작업인 글쓰기에 몰입하려 애쓴다. 휴일엔 고향인 경기도 김포를 가끔씩 찾는다.

식사는 세 끼를 다 챙기지만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 아침은 빵 한 조각과 우유, 과일. 점심과 저녁은 대개 모임 자리에서 해결한다.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는 1970년대 중반에 일찌감치 끊었고, 술은 예순이 지난 뒤부터 거의 마시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음주가 체력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금연과 절주, 체중감량을 작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 이사장의 전공은 예방의학. 그는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까.

“그 세 가지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운동, 균형 잡힌 식사와 수면도 필수적이지. 모두 들어본 내용이라고? 맞아. 이런 건 이미 1970년대에 다 나왔던 얘기야. 여유작작만 빼면….”

권 이사장은 1월18일 10여 년간 재직해온 성균관대 이사장직에서 퇴임한다. 이후엔 집필활동에 전념하면서 뇌출혈로 쓰러져 8년째 누워 지내는 부인(77)과 많은 시간을 가질까 한다. 그의 ‘여유’는 더욱 ‘작작’해질 터이지만, 고작 그의 나이 절반도 채우지 못한 기자는 마감 생각에 조바심부터 났다. 여유작작. 아직 멀었다 싶었다.



주간동아 2007.01.16 569호 (p64~65)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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