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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수호천사냐 현실과 타협이냐

인권위 출범 5년 엇갈린 평가 … 갈등과 시행착오 딛고 한국사회 변화 촉매제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인권의 수호천사냐 현실과 타협이냐

인권의 수호천사냐 현실과 타협이냐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인권에 대한 생각을 적은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채정 국회의장,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안경환 인권위원장.

설립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안경환 위원장·이하 인권위)에 들어간 민간기업 출신 A씨는 처음 접한 공무원들의 모습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직급에 따라 앉는 의자까지도 달라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A씨의 이야기다.

“5급, 6급 등 급수에 따라 앉는 위치뿐 아니라 의자도 달라야 한다면서 형식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공무원이 간혹 있었다. 급수가 높은 만큼 대우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공무원끼리도 그런 것을 따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마찰이 있었다.”

반대로 각 부처에서 인권위로 자리를 옮긴 공무원 출신들의 눈에는 민간기업과 시민단체 등 민간인 출신들의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다. 국민의 혈세를 쓰면서 서류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것이 너무도 무책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공무원 출신과 민간인 출신 간의 시각차이는 무척 컸다. 공무원과 민간인 출신이 뒤섞여 2001년 11월25일 출범한 인권위는 시작할 때부터 이처럼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민·관 뒤섞인 조직 처음엔 실패의 연속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인권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지금 인권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고, 어떤 평가를 받을까.

현재 인권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11명의 위원(상임 4명, 비상임 7명)과 사무처로 구성돼 있다. 사무처 직원은 191명으로 이들의 출신 현황을 보면 전·현직 공무원이 91명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인권시민단체 33명, 교육연구기관 11명, 민간기업 9명 등의 순이다(표1 참조).

인권의 수호천사냐 현실과 타협이냐

2001년 11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 현판식.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이다.

설립 때의 출신별 분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무원과 다양한 직업군의 민간인이 이처럼 뒤섞인 정부 조직은 전례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실험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권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출범 초기 공무원이나 민간인 출신 양쪽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났다. 먼저 공무원들의 경우 인권위에 지원한 배경의 순수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일부 공무원들이 신설 부처인 인권위가 다른 부처에 비해 승진연한이 빠르다는 점을 ‘악용’, 필요한 근무연한만 채운 뒤 본래 부처로 되돌아간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일부 지방직 공무원들은 인권위를 중앙부처로 전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상명하복식 업무처리, 철저히 주어진 일만 하고 형식주의에 매몰된 공무원들의 문화와 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른 부처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인권위라는 조직의 특수성과는 맞지 않았던 것.

과거 권위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던 공무원들의 소양과 인권문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도 문제였다. 이런 공무원들이 인권업무를 맡으면서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인권위 직원들은 상하 간에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평소 자신을 낮추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특히 민과 관이 충돌했을 때 민의 처지를 충분히 감안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은 대부분 그런 부분이 약했다”는 것이 민간기업 출신 한 인권위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간인 출신들도 공직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를 되풀이했다. 민간인 출신 중에는 관료제의 장점과 폐해를 혼동하거나, 심지어 모든 관료제와 형식주의를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그렇다고 이들이 공무원 사회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거나 문서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심지어 예산 회계항목에 엉뚱한 것을 적는 바람에 내부감사에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불만이 쌓인 건 당연한 귀결.

시민단체 출신의 한 인권위 관계자는 초기 공무원 출신과 민간인 출신의 갈등을 이렇게 분석했다.

격의 없는 소통 독특한 조직문화

“공무원 출신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뛰어나다. 그 책임감 속에서 업무를 기획하거나 집행하려다 보면 온건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민간인 출신은 능동적 기획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지나치게 파격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면 현실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측면이 있는 상황에서 서로 나쁜 점끼리 충돌하면 그 조직은 풍비박산이 나지만, 좋은 점끼리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두 가지 측면이 다 있었던 것 같다.”

출신별 직원 현황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현직 공무원 전직 공무원 인권시민단체 교육연구기관 민간기업 변호사 공기업 언론 전문직 기타
191 76 15 33 11 9 8 4 3 3 29
(100%) (40) (8) (17) (6) (5) (3) (2) (2) (2) (15)


▼ 진정사건 현황 (2001년 11월 26일 ~ 2006년 9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
    사건종결    
구분 접수(B) 소계(B) 수사의뢰 합의권고 조정 권고 고발 징계권고 법률구조요청 긴급구제 합의종결 각하 이송 기각 조사중지 조사진행(A-B) 처리율(B/A)
계(%) 21,128 19720 11 5 10 570 26 27 6 5 201 13,580 505 4,649 125 1,408 93,3
100.0 0.1 - 0.1 2.9 0.1 0.1 - - 1.0 68.9 2.6 23.6 0.6
차별행위 2,545 2,226 0 0 10 168 0 0 0 0 30 1,592 13 406 7 319 87.5
인권침해 16,892 15808 11 5 0 381 26 27 6 5 166 10,419 483 4,164 115 1,084 93,9
기타 1,691 1,686 0 0 0 21 0 0 0 0 5 1,569 9 79 3 5 99,7


인권침해사건 유형별 현황 (2001년 11월26일 ~ 2006년 9월 30일)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구분 접수 종결 수사의뢰 합의권고 권고 고발 징계권고 법률구조요청 긴급구제 합의종결 각하 이송 기각 조사중지 조사 중 처리율
합계

(%)
16,892 15,808 11 5 381 26 27 6 5 166 10,419 483 4,164 115 1,084 93,6

(%)
100.0 0.1 0.0 2.4 0.2 0.2 0.0 0.0 1.1 65.9 3.1 26.3 0.7
검찰 936 885 2 0 20 1 0 0 2 2 649 11 190 8 51 95
경찰 3,677 3,352 6 0 97 4 20 1 2 110 2,034 64 984 30 325 91
구금시설 7,579 7,203 1 1 118 1 2 5 0 15 4,418 386 2,197 59 376 95
보호시설 592 486 0 0 42 16 1 0 0 7 221 5 184 10 106 82
군대 349 329 2 1 8 1 0 0 0 3 271 1 40 0 20 94
기타 국가기관 3,637 3,433 0 3 91 0 4 0 1 27 2,759 14 530 4 204 94


인권의 수호천사냐 현실과 타협이냐

2005년 8월 보수성향의 대학생단체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인권실태를 외면하는 국가인권위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좌).
2005년 7월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 사용하는 수갑과 안면보호구 등 계구를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국가인권위는 구금시설의 인권 향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우).

이 관계자는 두 가지 측면 가운데 활동 경험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이해 부족, 그리고 이로 인한 지체 현상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봤다.

그 예로 인권위가 ‘사형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해 권고 여부를 결정할 때 나타나는 극명한 시각차이를 들 수 있다. 공무원 출신들은 관성적으로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판단해 절차가 적법적이라면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던 반면, 민간인 출신들은 법 자체가 국제규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인권침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양측의 합의로 인권위의 입장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위원회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것으로, 사회 갈등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권위는 그 속에서 여느 부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요즘 인권위에서는 언뜻 보면 5급 사무관이나 7급 주사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직원 간에 대하는 태도가 직급을 떠나 평등해진 까닭이다. 호칭부터 다른 부처와 다르다. 팀장급 이상의 간부가 아니면 대체적으로 ‘선생님’으로 통일돼 있다. 이런 조직 내 분위기는 최하급 기능직 직원이라도 공식 또는 비공식석상에서 기관장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민간인 출신 모두 다른 어떤 부처와도 차별화되는 독특한 인권위의 조직원화가 된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인권위다운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인권위는 설립 초기부터 사무처와 인권위원 간의 대립, 갈등이 만만치 않았다. 자문기구인 대통령직속 위원회와 달리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독특한 형태의 위원회여서 운영과정에서 인권위원들과 사무처 직원들 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던 것.

근본적으로 인권위의 존립근거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등장하는 ‘위원회’라는 명칭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컸다. 인권위원들은 위원회가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무처의 모든 일을 전원위원회에서 최종 결정,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무처는 위원회라는 말을 사무처까지 모두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업무 처리를 위해 사무처 중심으로 기관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원위원회는 일반적인 행정업무에 대해서는 사후보고를 받고, 주요 안건을 결정하는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인권위원들과 사무처 직원들은 서로의 역량을 놓고도 비난의 화살을 주고받았다. 위원들은 “사무처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조사관들의 조사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사무처 직원들은 “사무처 조사관들이 수개월에 걸쳐 조사한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안목과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위원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권고 내용, 크고 작은 사회적 논란

그렇다면 과연 인권위라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 게 합리적일까. 인권위 1기 김창국 위원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사무처 중심으로 위원회를 운영했다. 김 위원장은 철저하게 인권위원들을 배척해 그들에게서 강한 반발과 비난을 샀다.

인권위 2기 최영도 위원장에 이어 조영황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인권위의 운영 방향이 크게 수정됐다. 위원회의 역할에 무게가 실린 것. 조 위원장은 아예 상임위원회를 매주 한 차례씩 정례화했다. 하지만 인권위원들의 목소리가 너무 강해지자 위원장이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사무처 관계자들과 인권위원들은 “위원회가 사무처 운영에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이 적당한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이상적인지는 여전히 연구하고 보완해야 할 숙제”라며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공무원 출신과 민간인 출신 간, 또 사무처와 위원들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돼온 인권위의 외형적 활동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인권위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5년 동안 무려 2만1598건의 진정서를 접수, 법령 및 정책과 관련해 국가기관에 128건을 권고해 74건을 해결했다. 또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437건을 권고해 이 중 267건을 구제했고, 110건의 차별행위를 시정했다(표1, 2 참조).

이와 관련해 인권위 측은 “인권침해 권고 건수 437건 중 해당기관에서 완전 수용한 267건과 일부 수용 18건 등 권고수용률이 98%에 육박하고 있으며, 차별행위와 관련된 권고수용률도 90%에 이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이호중 한국외대(법학과) 교수는 얼마 전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새사회연대 공동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인권위의 진정사건 각하 및 기각률을 문제삼았다. 실제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사건 중 각하 68.9%, 기각 23.6% 등 무려 92.5%가 각하 또는 기각으로 종결된 것. 인권위가 권고를 한 경우는 지난 5년간 570건으로 단 2.9%에 불과했다.

이 교수는 인권위가 내세운 권고수용률에 대해서도 “그리 믿을 만한 통계가 아니다. 해당 부처가 형식적으로는 규정개정 등으로 수용한 것으로 통보하는데, 실제로는 인권위의 권고사항이 규정개정에 반영되지 않거나 극히 일부분만 반영한 경우가 무척 많다”고 지적했다.

김도현 동국대(법학과) 교수는 법치국가의 핵심권력인 사법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인권위를 비판했다. 토론회에서 김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권위가 진정사건과 무관하게 사법부의 정책 및 관행에 권고의견을 낸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에 대한 개정권고’가 바로 그것. 소재불명인 피고인에게 귀책 여부를 불문하고 획일적으로 불출석 재판을 인정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적법절차에 위배되므로 개정해야 한다는 권고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지난 수년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시민들의 권리 보장과 증진을 위한 사법제도 개혁을 논의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퇴색해 기성 법조계의 기득권 수호에 경도됐다”면서 “그럼에도 인권위는 이런 모습을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개정권고 하나만 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진정에 의한 사법부의 정책 및 관행에 권고의견을 낸 것도 두 건에 그쳤다. 사법부 재판에 대한 인권위의 권고도 진정에 의한 경우와 진정에 의하지 않은 경우 각 한 건씩에 불과했다.

물론 인권위가 지난 5년간 내놓은 권고내용 중 크고 작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적지 않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인권위가 발표한 전국 법학교수 17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국가인권위원회 진단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수들은 인권위가 가장 잘한 일로 ‘사형폐지 권고’, ‘국보법폐지 권고’,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의 순으로 답했다. 교수들은 반면 가장 잘못한 일로 ‘이라크파병반대 권고’, ‘국보법폐지 권고’,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의 순으로 꼽았다. 국보법폐지 권고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이 양쪽 모두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그만큼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다는 점을 의미한다.

김인재 인권정책본부장은 인권위 5주년 기념토론회에서 “인권위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정책과 법령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권고 또는 의견 표명을 했다”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에 관한 논의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국가적 차원의 인권 의식 제고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권위가 김 본부장의 주장처럼 적극적으로 권고하거나 의견 표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것.

갈등 해법 제시로 탈바꿈 필요

임지봉 서강대(법학과) 교수는 인권위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권고에 대해서 “이와 관련된 사건이 헌법재판소 등에서 지속적으로 재판이 이뤄졌지만 인권위는 그때는 별다른 의견 개진을 하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사회적 이슈가 되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일부 하급심의 무죄판결이 나오자 그때서야 병무청을 상대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권위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이) 헌재의 결정과 일치하지 않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인권위의 지난 5년에 대한 평가는 안팎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인권위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인권위 내부적으로도 그동안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정됐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인권위는 건국 이래 가장 독특한 국가기관이다. 한쪽 다리는 시민사회에, 한쪽 다리는 정부기관에 걸치고 있다. 또 한쪽으로는 국제협약을 따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국내법 적용을 받고 있는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고, 외부의 오해를 받은 경우도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연착륙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인권위가 그동안 문제제기 집단으로 비춰진 측면이 강한데, 앞으로는 해법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면서 “해법은 다양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인권기구로서의 역할을 국민에게서 요구받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본궤도에 오를 시기라는 매우 희망적인 평가와 전망이다.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의 이야기다.

“인권위는 설립 초기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운영, 인권단체와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어설픈 관료 행정 등으로 국민적 지지를 확고히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기득권층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경향을 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비인권적인 관행이나 특정 권력기관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해 애써 눈감고 있다.”

김도현 교수는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현재까지의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사법부라는 막강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존립 위협이 아니라, 인권위 설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기층 시민사회로부터의 지지기반이 붕괴됨으로써 인권위원회의 존립 토대가 위협받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임지봉 교수는 “인권위가 국민의 인권 신장과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하고 싶다”면서 “지난 5년간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정부 내에서 인권위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시민사회단체와는 긴장적 협력관계와 비판적 공조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7.01.16 569호 (p16~19)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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