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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독도 지킴이 김성도·김신열 부부

“바다는 여긴데 서울서 바다이야기를 하데요”

  • 독도=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바다는 여긴데 서울서 바다이야기를 하데요”

“바다는 여긴데 서울서 바다이야기를 하데요”

8월25일 김성도 씨가 김관용 경북지사, 부인 김신열 씨와 함께 문패를 들고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20-2번지. 독도인 김성도(66), 김신열(68) 부부의 주소다. 이 평범한 주소는 8월25일 김 씨 부부가 자신의 거주지에 문패를 달던 날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다.

“태어나 처음 다는 문패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40여 년을 독도에서 살아온 김 씨는 이 문패를 통해 자신과 독도가 온전히 하나가 됐음을 재확인한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때로 뭍과 울릉도를 오갔지만 김 씨 부부는 독도 지킴이다. 겨울 독도와 여름 독도의 변화를 그들만큼 민감하게 감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찬바람이 언제 부는지, 그 바람 뒤로 몰려올 눈과 비의 양이 얼마일지 김 씨 부부는 보지 않아도 안다. 2, 3개월만 독도를 떠나도 어느새 독도행 뱃머리에 걸터앉는 김 씨 부부는 천생 독도 지킴이다.

김 씨는 항상 오전 6시 전에 일어난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김 씨는 그 이른 새벽에 후딱 아침밥을 먹는다. 그런 탓에 부인 김 씨가 고생이다.



“붉은 해가 볼 만해. 기회 있으면 한번 봐.”

수평선을 박차고 붉은 해가 떠오르면 김 씨는 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독도호(1.3t급)가 그의 일터. 국민성금으로 건조된 이 배는 김 씨 부부의 재산 1호다.

독도 인근 해역에서 명태·꽁치·오징어 등 회유성 어종이 많이 잡히는, 물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그러나 이제 황금어장은 옛말이다. 8월31일 오후 5시, 고기잡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김 씨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며 푸념이다.

“왜 그런지 몰라. 통발에도 고기가 없고….”

독도 생활 40여 년 … 두세 달 떠나 있으면 ‘눈에 어른’

부인 김 씨가 2월 몸을 다쳐 ‘물질’을 못하는 것도 애가 탄다.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 등을 따 팔아 거둔 돈줄이 뚝 끊긴 것이다.

김 씨의 3층 숙소는 방이 네 칸이다. 부인 김 씨는 이 방들과 주방, 정수시설 등을 늘 깨끗하게 유지하느라 바쁘다. 남편 김 씨가 가끔 가사를 돕지만 손 큰 경상도 남자의 도움이란 게 애초 거기서 거기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서도는 ‘외길’만이 존재한다. 어업인 숙소 뒤쪽 가파른 바위를 따라 난 작은 계단이 그 길이다. 높이 170m의 정상은 998개의 계단을 밟아야 올라갈 수 있다. 가파른 바윗길은 나이 든 김 씨 부부가 오르기에 부담스럽다. 그러나 운동을 겸해 수시로 오른다. 독도에 지칠 때쯤 부인 김 씨는 이 바윗길을 오르는 버릇이 있다.

“바다는 여긴데 서울서 바다이야기를 하데요”

'독도호'를 탄 김성도 씨 부부.

“속이 상하면 꼭대기에 올라가. 만사해결이야. 세상천지가 보여. 가슴이 탁 트여.”

그렇게 가슴속 응어리를 풀고 나면 한두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 정상은 괭이갈매기들의 천국이다. 찬거리를 만들어놓으면 남편 김 씨보다 먼저 달려드는 괭이갈매기가 얄밉지만 부인 김 씨는 그들과의 공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 씨 부부가 독도에 둥지를 튼 것은 40여 년 전이다. 남편 김 씨의 고집이 섬 생활의 발단이었다.

“젊었을 때 한 번 왔는데 끌리더라고. 무작정 들어와 산 거지 뭐. 편해.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필’이 꽂힌 셈이다. 그런 남편의 고집 때문에 김 씨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들을 키워야 하는 어머니로서 섬 생활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뭍으로 가자고, 울릉도로 가자고 여러 차례 떼를 썼다. 그러나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섬 생활은 너무 힘들어.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아. 이불도 한 번 덮으면 빨 수가 없어 버려야 해. 옷도 그렇고. 애들이 여기서 어떻게 사나….”

남편 김 씨의 고집을 꺾지 못한 부인은 결국 혼자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며 사는 타협안을 찾았다.

“헤어질 수도 없고… 그래서 살았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몰라. 그때 헤어져도 됐는네….”

멋쩍은 웃음으로 말끝을 흐린다. 남쪽 끝 제주가 고향인 부인 김 씨는 해녀 팔자를 타고난 것일까.

평생 독도를 맴돌며 살아온 남편 김 씨도 독도가 싫어 탈출을 감행한 적이 있다. 젊을 때 찾아온 열병이 원인이었다.

“독도가 좋아 들어왔지만 두어 달 지나면 불현듯 뭍이 생각나. 그럴 때면 걷잡을 수 없어. 보따리를 쌀 수밖에.”

김 씨는 젊었을 때 여러 차례 열병을 앓았다. 두어 달 울릉도로, 뭍으로 돌며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며 독도를 버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열병은 신기하게 나았다. 잊었던 독도가, 바다가 다시 그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것도 이때쯤이다.

“두세 달만 지내면 독도가 그냥 눈에 들어와. 짠해.”

자식들 집을 찾아 도회지 생활도 해봤다. 그러나 한 달을 견디지 못했다.

“서울? 말도 마. 살라고 해도 못 살아. 가면 어지러워. 머리가 아파.”

요즘 독도는 엄청난 속도로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인다. 5월부터 TV가 김 씨 부부와 세상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기름값이 아까워 양초를 켜는 밤이 많지만, TV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부인 김 씨는 뉴스를 꼭 봐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안다. 그 뉴스가 요즘 연일 토해내는 ‘바다이야기’를 김 씨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남편 김 씨도 마찬가지.

“허허, 바다는 여기 있는데, 서울에서 무슨 ‘바다이야기를 하능교. 그거 도박 아이가.”

얼마 전 개통된 전화를 붙잡고 손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예전에 없던 재미다. 요즘은 김관용 경북지사가 주고 간 김치냉장고가 부부의 관심사다. 전기 문제 등으로 ‘울릉도 사위 집에 놓고 김치를 가져다 먹자’는 안과 ‘독도에 놓고 싱싱한 김치를 먹자’는 안을 놓고 부부가 접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최근 TV·전화 개통됐지만 빨래·식수는 여전히 불편

TV와 전화기가 있어서 예전보다 한결 나아졌지만 독도 생활은 여전히 불편하다. 동도 경비대에서 식수를 가져다 먹는 김 씨 부부는 목욕이나 빨래는 꿈도 못 꾼다.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서 쓰는 것이 고작이다. 몸이 아플 때는 뭍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특히 요즘이 그렇다.

“귀가 많이 아파. 물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어부가 물에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통증이 심해진 모양이다. 부인 김 씨는 여름감기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다. 김 씨 부부는 조만간 울릉도 사위 집으로 가 병원을 찾을 계획이다.

독도의 밤은 적막하다. 바람이 거세다. 김 씨는 독도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긴 버릇이다. 그러나 길 없이 떠난 상념은 정처 없이 겉돌다 괭이갈매기의 날 선 울음소리에 산산이 부서진다. 그런 날 김 씨는 술잔을 들이켠다. “혼자 먹는 술을 얼마나 먹겠느냐”고 하지만 반주는 떼놓을 수 없는 김 씨의 일상처럼 보인다.

김 씨는 앞으로가 훨씬 힘든 삶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독도를 떠날 생각은 없다. 김 씨는 8월25일 김관용 지사에게 그의 꿈을 피력했다.

“평생 여기서 고기를 잡으며 살 수 있게 해달라.”

귀한 손님인 김 지사에게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김 지사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억겁의 세월 동안 속살을 드러내지 않은 독도는 김 씨의 이런 애정을 알고 있는 것일까.



주간동아 552호 (p72~73)

독도=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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