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얌체 시민권자’에 속썩는 캐나다

해외 체류 제한 없어 상당수 모국에서 생활 … 납세·국방 의무 회피, 권리만 챙겨 ‘눈총’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입력2006-09-06 18: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이 전화에 휩싸였던 7월 말, 레바논에는 3만8000여 명의 캐나다인이 있었다. 현지 캐나다 대사관은 이 많은 사람들을 터키 등 안전지대로 대피시키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3000만 명이 조금 넘는 전체 캐나다 국민 중 4만 명 가까이나 레바논에 나가 있었다니? 늘 전운이 감도는 이 중동의 나라에 캐나다인들이 떼지어 관광을 간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레바논 태생으로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뒤 모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다. 특히 1980년대 중동 정세가 악화됐을 때 대거 캐나다로 이민했거나, 난민 자격으로 캐나다에 들어와 시민권을 얻은 후 모국의 정세가 안정되자 되돌아간 사람들이 많았다.

    캐나다 시민권은 노후보험증서?

    이번 레바논 사태 초기에 캐나다 주류 언론의 논조는 캐나다 정부가 현지의 ‘자국인’을 왜 더 신속하게 소개(疏開)시키지 못하느냐는 비판 일색이었다. 배 빌리는 삯 등으로 나간 수백만 달러의 나랏돈과 수많은 인력 투입에 대해 시비 거는 미디어들은 없었다. 그러나 몇 주일이 지나고 레바논 정세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면서 미디어들의 논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살기를 사실상 포기한 사람들에게 캐나다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해야 하느냐 하는, 해묵은 논란이 재연된 것이다.

    캐나다는 자국민의 이중 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 국적 이외의 국적을 갖고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또 오래 외국(주로 모국)에 나가 산다고 해서 캐나다 시민권(즉, 국적)이 취소되지도 않는다. 영주권자가 장기간 해외에 체류할 경우 캐나다 정부가 영주권을 취소할 수 있지만, 시민권자가 되면 해외 체류 제한에서 완전히 풀려난다. 문제는 이들이 캐나다 국민으로서 납세, 근로, 국방 등의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권리는 빠짐없이 챙긴다는 점이다.



    ‘냉혹한 칼’ 휘두를 수 없어 고민

    캐나다는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이 무료이고, 거의 공립인 대학들도 정부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학비가 매우 싸다. 또한 전 국민에게 자기 부담이 전혀 없는 의료 서비스가 보장되며, 실업보험과 노령연금 등 사회보장 장치도 튼튼한 편이다. 모국으로 돌아가 사는 캐나다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를 이 나라에서 교육받게 한다. 또 수가가 비싼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는 일시적으로 캐나다로 돌아온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뒤로는 다시 이 나라에 살며 연금을 챙긴다.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세금은 그곳에서만 내면 된다.

    이들에게 캐나다 시민권은 일종의 ‘노후보험증서’이며, 캐나다 정부가 발급한 여권은 비상시의 ‘호신용구’다. 캐나다 서부의 유력신문인 ‘밴쿠버 선’은 최근 이런 문제점을 사설을 통해 제기하며 “국민이 기꺼이 의무를 떠맡지 않는 한 자유국가로 번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민을 와서 캐나다 국민이 된 뒤 모국으로 귀환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전 장래 전망에 불안을 느낀 홍콩인들이 대거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자녀를 캐나다에 남기고 홍콩으로 되돌아간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 같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뾰족한 대책이나 획기적인 정책 변화는 없었다. 이는 자칫 이민자들의 삶의 방식과 시민권을 새로 받은 사람의 권리를 규제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은 캐나다의 현실 때문이다.

    캐나다는 이민의 나라다.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수의 이민을 받았고, 최근 10여 년간은 매년 20만 명 안팎의 신규 이민이 캐나다로 유입되고 있다. 미국은 매년 캐나다보다 3배쯤 많은 신규 이민을 받고 있지만 미국 인구가 캐나다의 8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캐나다의 이민 문호가 미국보다 오히려 넓은 셈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모두 19세기 말부터 이민 영입을 통해 인구 면에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나라의 몸집을 키워왔다. 이민 영입을 하나의 비즈니스로 본다면 캐나다는 그 경쟁력이 역사적으로 늘 미국에 뒤졌다. 새 삶을 찾아 북미로 꼭 가겠다는 사람이라면 보통 캐나다보다는 더 ‘큰물’인 미국행을 택했기 때문.

    이 때문에 캐나다는 미국보다 대체로 느슨한 이민 선발 기준을 적용해왔다. 미국에서 내몰린 모르몬교도, 유럽에서 박해받고 미국에서도 문전박대당한 메노나이트 등 소수종파의 기독교도들이 캐나다에 발붙였다. 게다가 캐나다 연방정부는 겨울 추위가 미국보다 혹독해 캐나다행을 망설이는 유럽의 농업인들에게 “날씨가 춥기 때문에 농작물 병충해가 미국보다 덜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끌어모은’ 사람들의 손자·증손자 등이 오늘날 캐나다인의 다수를 이루고 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근년에 다문화주의(multi culturalism)로 정리돼 캐나다의 ‘브랜드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해외에 소개돼 있다. 반드시 이런 이미지를 지키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구정책 면에서도 캐나다는 많은 이민을 받을 필요가 있다. 캐나다인의 출산율이 워낙 낮아 만약 이민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면 인구의 자연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175년 후에 최후의 캐나다인이 숨을 거둘 것이라는 인구 예측이 나온 적도 있다.

    반대로 이민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불평과 ‘이민자의 캐나다인화(化)’를 더 강력히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도 정치권(주로 우파 쪽) 및 제도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냉혹한 칼’만으로 집행하기 어려운 것이 캐나다의 이민정책이다. 캐나다 거주를 포기하고 사실상 모국으로 영구 귀환한 이민자들 중에 당초부터 ‘노후보험증서’와 ‘호신용구’만 챙기려는 기회주의적 입장에서 이민을 신청한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사람은 이 나라에 발붙이려 노력했지만 갖가지 장벽을 체감한 뒤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넓은 문을 통해 이 나라에 오더라도 이곳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뿌리내리기는 어렵다는 교훈을 이번 레바논의 캐나다 ‘교민’ 소개 일화가 던져주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