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한 판에 30만원씩, 순식간에 1000만원 날려

장안동 카지노바 잠입 르포 … 저녁부터 자리 빽빽, 주부서 회사원까지 베팅에 눈먼 밤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6-09-06 15: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 판에 30만원씩, 순식간에 1000만원 날려
    “바다이야기’ 파문이 시작된 이후 성인오락실, 성인 PC방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우리 관내에는 일명 ‘카지노바’라고 불리는 불법 도박장이 하나도 없다. 특히 장안동 지역의 경우 올해 초부터 집중 단속을 벌여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서울의 대표적인 환락가 중 한 곳인 장안동 지역을 담당하는 서울 동대문경찰서 생활질서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장담했다.

    사실일까? 8월29일 화요일 밤, 기자는 네온사인으로 흥청거리는 장안동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가 “절대 없다”고 한 불법 ‘카지노바’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따금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장안동 사거리에서 장한평역에 이르는 2km 정도의 속칭 장안동 ‘안마골목’은 술렁대고 있었다. 200여 개가 족히 넘는 퇴폐 안마시술소와 20~30개의 성인오락실들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곳, ‘서울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는 이곳에는 여전히 카지노바들이 성업 중이었다.

    “2년 영업하고 300억원 벌었다”

    4~5개의 카지노바가 장안동 지역에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장안동에서 카지노바를 운영하는 업주 K 씨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간판 없이 운영 중인 업소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문을 닫은 성인오락실 ‘황금성’이 있는 건물 2층에서 버젓이 운영되는 업소도 있었다.



    처음 찾아간 카지노바는 장안동 한복판 대로변의 한 건물 5층에 위치해 있었다. 간판은 ‘쫛쫛성형외과’.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카지노바 측의 삼엄한 신원조회(?)와 경찰 단속에 대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 단골손님이기도 한 인근 카지노바 업주와 동행했음에도 경비를 맡고 있는 남자는 기자에게 “누구냐?” “어떻게 왔냐?” “처음 보는 사람이다”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10여 분간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게임장 입장을 허가했다.

    저녁 8시경. 그다지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50여 평의 카지노바 내부는 40~50명의 갬블러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동행한 K 씨는 “이 업소가 현재 강북에서 가장 잘나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게임장 내에는 총 7대의 게임기가 있었고, 그중 4대가 운영 중이었는데 모두 ‘바카라’(두 장의 카드를 합한 수가 ‘9’에 가까울수록 이기는 게임)였다. 평균 7, 8명이 하는 이 게임의 베팅 상한액은 50만원, 하한액은 3만원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갬블러들은 매 게임마다 20만~30만원 안팎의 돈을 베팅했다.

    도박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누굴까. 한 번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씩 도박에 탕진하는 사람들. 겉으로 보이는 갬블러들의 성별과 연령은 다양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양복을 차려입은 회사원도 있었고, 40·50대 중년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K 씨는 “여자들은 주로 주부이거나 자영업자들이 많고,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술집 마담이다. 회사원도 많이 오고, 돈 많은 대학생들도 가끔 보인다”고 말했다.

    게임장 내에는 10명 정도의 관계자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대부분 조직폭력배와 관련 있는 듯했다. 모든 식음료가 공짜로 제공됐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과 휴식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갬블러는 “일주일에 4일 정도 이곳에 온다”며 “많게는 1000만원 정도를 가지고 온다. 오늘은 돈이 없어서 200만원밖에 못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인 또 다른 갬블러는 “지난 일주일간 6000만원이 깨졌다”고 했다.

    잘나가는 카지노바의 경우 하루 평균 3억~5억원 정도가 환전된다. 업소 한 군데서만 한 달이면 100억원이 넘는 돈이 도박자금으로 쓰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K 씨는 “이 카지노바는 2년 정도 한자리에서 운영됐는데, 그동안 300억원 가까운 돈을 벌었다”고 귀띔했다.

    통상적으로 카지노바는 두 가지 방법으로 돈을 번다. 손님과 게임을 해서 돈을 따는 것이 규모가 제일 크고, 칩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과정에서 받는 환전수수료를 통해서도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환전수수료는 5%. 손님은 이중으로 돈을 잃고, 업소는 이중으로 돈을 버는 셈이다. 환전은 모두 게임장 내에서 이뤄진다.

    인터뷰 카지노바에 빠진 30대 여성

    “일주일에 3~4일 게임 … 지금까지 4억~5억원 탕진”


    한 판에 30만원씩, 순식간에 1000만원 날려

    불 꺼진 ‘황금성’ 성인오락실. 그러나 같은 건물 2층에선 ‘카지노바’가 성업 중이다.

    8월30일 새벽 3시경. 카지노바 인근 식당에서 만난 이해연(가명·여·33) 씨는 도박을 하느라 이틀간 잠은커녕 식사도 전혀 못했다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500만원으로 800만원 땄어요. 10번 정도 하면 2~3번은 따죠.” 대구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올라왔다는 그녀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2800만원 주고 산 중형차를 이틀 만에 1400만원에 팔아서 도박으로 날린 적도 있다는 이 씨. 그녀는 대화 도중 “절대 도박을 시작하면 안 돼요. 시작하면 절대 못 빠져나와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이 씨와의 일문일답.

    - 언제 도박을 시작했나.

    “4년 전쯤 친구가 ‘좋은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곳이 강원랜드였다. 그렇게 도박을 배워 강원랜드에서만 2년 넘게 도박을 했다”

    - 카지노바에 처음 온 것은?

    “1년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 가족들이 강원랜드까지 찾아와 나를 출입금지자 명단에 올려놓는 바람에 도박을 못했다. 그러다가 카지노바라는 데가 있다고 해서 와본 뒤로 일주일에 3~4일씩 게임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울에 온다. 한 번 오면 2박3일 정도 있다가 간다. 내일(수요일) 내려갔다가 금요일쯤 또 올라올 생각이다. 잠은 근처 모텔에서 잔다. 내일 (도박) 해보고 잘되면 더 있다가 갈 수도 있고.”(웃음)

    - 하는 일은?

    “대구에서 중소업체를 운영 중이다. 장사는 잘된다. 20대 후반에 사업을 시작해서 10억원 정도 벌었는데 도박으로 다 잃었다. 도박에 빠져 아직 시집도 못 갔다.”

    - 지금까지 도박으로 얼마나 잃었나.

    “한 4억~5억원 정도? 차만 4대를 날렸다. 그것만 해도 1억원이 넘는다.”

    -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은 안 하나.

    “그런 재미없는 게임을 왜 하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돈 주면서 하라고 해도 그런 건 안 한다. 하루에 수천만원, 수억원도 딸 수 있는데 ‘바다이야기’를 왜 하겠나.”


    고리로 도박자금 빌려주는 ‘꽁지’ 활개

    카지노바가 손님을 상대로 직접 돈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카지노바에는 도박비용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일명 ‘꽁지’들이 업소마다 5~6명씩 있다. ‘꽁지’들이 빌려주는 돈의 규모는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한다. ‘꽁짓돈’ 장사를 한다는 한 갬블러는 “한 달에 평균 20~30명이 돈을 빌려간다. 한 번에 수천만원 이상을 빌려가는 단골도 많다”고 말했다.

    ‘꽁지’들이 빌려주는 도박자금의 이율은 무조건 10%다. 1억원을 빌려가면 1억1000만원을 갚아야 하는 식. 빌려줄 때 선이자를 떼는 경우도 많다. 기간은 짧게는 하루에서 길어야 일주일. 거래 실적과 금액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꽁지’들은 대부분 업주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꽁짓돈’을 빌린 사람은 다시 도박을 하지 않을 각오라면 모를까 돈을 떼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한 업소 관계자는 “지난주 한 여성 자영업자가 ‘꽁짓돈’ 5000만원을 해먹었는데, 결국 운영하던 가게가 박살났다”고 전했다.

    취재 중이던 저녁 9시30분경. 이 업소에 단속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게임장 안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카지노바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업소 관계자, 보안요원(조직폭력배로 추정되는)들과 1~2분 정도 대화를 나눈 그들은 순찰차를 타고 돌아갔다. 업소 관계자들과 경찰은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게임장 내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게임장으로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K 씨는 “이 업소는 경찰들에게 화끈하게 돈을 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알려줬다. 카지노바가 있는 이 건물은 총 2개의 엘리베이터 중 하나가 다른 층에는 서지 않고 카지노바가 있는 5층에만 서도록 조작돼 있었다.

    인근의 또 다른 카지노바로 자리를 옮긴 시간은 밤 11시경. 이 업소에선 10여 명이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실제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4~5명에 불과했다. 이곳에 기자와 함께 들어선 K 씨는 게임장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과 안면이 있는 듯했다. 딜러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경력은 3년차라고 했다. 딜러들의 일당은 15만원에서 70만원까지 다양하다. 업소 관계자는 “경력이 많을수록, 호텔카지노나 강원랜드 딜러 경력이 있을수록 일당이 높다”고 말했다.

    게임을 즐기는 4~5명의 손님들이 가지고 있는 칩은 1000만원 정도였다. 한 사람이 평균 200만~300만원을 가지고 게임을 즐기는 셈. 베팅 금액은 평균 30만~50만원 정도로 이전 업소와 비슷했다. 이 업소도 베팅 상한액이 50만원 정도로 정해져 있었지만,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12시가 넘어가자 이 업소에도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늘어난 갬블러들로 인해 1대만 사용되던 게임대가 2대로 늘어났다.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3~4명, 대기업 배지를 단 50대 회사원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갬블러 L(남·38) 씨는 “오늘은 사람이 적은 편이다. 비가 와서 많이 안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이 한창이던 새벽 2시경. 게임을 즐기던 세 명의 휴대전화로 동일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압구정에 새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많이 오세요.’ 업주와 손님들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 문자를 받은 한 여성 갬블러는 “김 사장이 압구정동에 가게를 냈네. 한번 가봐야겠어”라고 옆자리의 중년 여성에게 말했다. 이 여성에 따르면, 김 사장은 최근까지 선릉역 주변에서 카지노바를 운영하다가 단속에 걸려 문을 닫은 지 한 달도 채 안 됐다고 한다.

    조폭에 일정 지분 … 단속 걸리면 옮겨서 또 개업

    모든 게임장은 적게는 4~5명, 많게는 10여 명이 공동투자해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배당은 투자금액에 따라 배분되는 형태. 여기에 카지노 운영과 보안을 맡은 건달(조직폭력배)들이 일정 지분을 갖고 들어온다. 장안동과 강남 등 3~4곳의 카지노바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김모(46) 씨는 “조폭을 끼지 않고는 장사가 안 되니 일정한 지분, 고용관계를 맺고 공동 운영하는 형태를 취한다. 통상 10~20%의 지분을 조폭들에게 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업주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올해 초만 해도 이 지역에는 현재 영업 중인 업소의 두 배가 넘는 10여 개의 카지노바가 운영됐다. 강북 지역 내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한 업주는 “현재 장안동에서 영업 중인 업소들은 모두 지난 1~2년간 ‘단 한 번도’ 단속에 걸린 적이 없는 게임장들”이라며 “안전한 곳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랑했다.

    현재 카지노바는 서울에만 150여 개(강남 100여 개, 강북 50여 개)가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연간 2조원이 넘는 돈이 도박비용으로 쓰인다. 서울경찰청 생활질서계의 한 관계자는 “2004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수백 개에 달하던 카지노바가 지금은 많이 줄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고 본다. 워낙 빨리 차리고 또 빠져나가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게임장 어디로 사라졌나

    단속 피해 주택가로 급속 침투


    한 판에 30만원씩, 순식간에 1000만원 날려

    사행성 성인오락 ‘바다이야기’.

    “한 집 건너 하나”라는 말까지 나왔던 ‘바다이야기’ 등 릴 게임장의 불이 꺼지고 있다. ‘바다이야기’ 파문의 여파다. 게임장에서 이용되던 상품권 시장도 파문이 시작된 지 불과 10여 일 만에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상품권 보증기관인 서울보증보험에 따르면, ‘바다이야기’ 파문이 불거지기 전인 7월31일 경품용 상품권의 유통량은 4298억원에 달했으나, 8월29일에는 2144억원으로 한 달 사이에 절반 이상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도박공화국’은 여전히 음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행성 도박’에 대한 정부 단속으로 문을 닫은 업소들이 주택가 등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것. 실제로 경찰청 등에는 서울 용산, 방배동 인근 주택과 상가에 불법 성인오락실 및 성인 PC방이 영업 중이라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8월26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다세대주택에 살면서 무허가 성인 PC방을 차려놓고 영업을 한 업주를 구속했고, 광주와 부산에서도 원룸과 일반 주택에 컴퓨터와 게임기를 설치해 성인 PC방 영업을 하던 업주가 구속됐다.

    용산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게임장들이 겉으로는 문을 닫았지만 음지로 들어가 영업을 하는 등 불법 도박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