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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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열 패밀리’ 비상과 추락 사이

노 대통령 처남 권기문 씨 우리은행서 승진 가도 … 지원 씨 등 조카 3명 비슷한 시기에 퇴사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9-06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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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열 패밀리’ 비상과 추락 사이

    2003년 2월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결혼식. 정연 씨 뒤로 노지원 씨의 모습이 보인다.

    희정(25) 씨는 평범한 학생이다. 다른 학생과 차이가 있다면 6월에 결혼한 신부라는 점이다. 희정 씨의 남편 박모 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한다.

    희정 씨는 외출할 때 항상 마을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탄다. 남편이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밥도 먹는다. 친구들은 이런 희정 씨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희정 씨는 가끔 아버지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그의 아버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 씨다.

    정치권이 그린 권력지도로 본다면 희정 씨는 로열패밀리의 한 사람이다. 특히 건평 씨는 다른 어떤 친인척보다 특수한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희정 씨도 어렵지 않게 그런 아버지를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는 참여정부의 성골그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희정 씨는 권력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 청와대 대통령민정실에서 자신의 활동상을 주기적으로 체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그는 “삼촌인 노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학생이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희정 씨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 몇 차례 청와대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나 참석자가 누군지, 삼촌이 무슨 말을 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대통령 선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희정 씨는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로열패밀리가 모두 희정 씨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사 물의를 일으킨 친인척 때문에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기도 했고,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에 진상조사를 한 경우도 있다. 로비스트들은 수시로 대통령 친인척에게 접근, 검은 거래를 부추겼다. 청와대는 로비스트와 친인척을 떼어놓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정권 초기 건평 씨 주변에 로비스트 몰려

    참여정부 초기의 일이다. 노 대통령의 형 건평 씨의 인사 개입설을 둘러싸고 나라가 시끄러웠다. 건평 씨에게 접근하려는 로비스트가 느는 것을 우려하는 사정기관의 보고서가 잇따라 청와대로 전달됐다. 노 대통령은 “철저하게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盧열 패밀리’ 비상과 추락 사이

    2005년 3월12일 부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노건평 씨 외아들 상욱 씨 결혼식에 참석한 문재인 민정수석(오른쪽)이 건평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더’를 받은 사정당국 관계자는 직접 김해 진영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건평 씨 앞에 나설 수 없던 이 관계자는 건평 씨가 자주 찾던 집 앞 낚시터 뒷산에서 ‘뻗치기’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건평 씨를 찾아오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암행감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건평 씨는 “숨도 쉬지 말란 말이냐”며 엄중히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은 정권 출범 때부터 친인척 문제에 민감했다. 청와대 민정실은 900명 안팎의 친인척을 상대로 2권 분량의 친인척 지도를 작성, 체계적인 관리에 나섰다. 그러나 한두 명의 직원이 900여 명에 이르는 친인척을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 틈을 타고 친인척들은 각자의 삶을 풀어나갔다.

    건평 씨의 큰딸 지연(33) 씨는 2001년부터 벤처기업 케이알비즈를 경영해온 기업가다. 이 회사에는 그의 동생 상욱 씨도 몸담았다. 동아대를 졸업한 지연 씨는 최근까지 회사를 무난하게 경영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7월11일 지연 씨가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퇴했다. 동생 상욱 씨도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주변 한 인사는 “그들이 왜 회사를 그만뒀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동반 사퇴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지연 씨와 상욱 씨가 사퇴하기 일주일쯤 전인 7월5일, 그들과 사촌 간인 지원 씨 역시 우전시스텍에 사표를 낸 사실이 확인된 것. 지원 씨의 사퇴에는 청와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연 씨와 상욱 씨의 사퇴 배경에도 지원 씨의 경우처럼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의 친인척, 그 가운데 3명의 조카가 비슷한 시기에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 물러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연철호 씨도 관심을 끄는 로열패밀리다.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그는 현재 한국M·A주식회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출신인 그가 여신전문금융회사 KTB네트워크(사장 권성문)의 관련사인 한국M·A에 들어간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는 다른 대통령의 아들들과 달리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잡음이 거의 없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5월 “건호 씨가 로열패밀리의 모범을 보인다”며 극찬했다. 그렇지만 구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혜 아니면 역차별의 ‘딜레마’

    2002년 12월25일 결혼식을 올린 건호 씨는 “5000만원의 은행대출금으로 전세아파트를 마련했다”며 서민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가 시끄럽던 2004년 3월, 그는 여의도에 위치한 50평형대의 고급아파트로 이사함으로써 서민 이미지와 작별을 고했다.

    그 배경에는 그의 장인 배병렬 씨가 있었다. ‘농협CA투자신탁운용주식회사’의 상임감사로 재직 중인 배 씨가 회사로부터 배정 받은 숙소에 사위와 딸을 불러 함께 생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는 장인 배 씨의 낙하산 인사설과 호화아파트 특혜 제공 의혹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사돈인 배 씨는 2006년 2월 음주측정 거부 및 뺑소니 의혹 등으로 다시 한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건호 씨는 조만간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로열패밀리 가운데 미국 유학길에 나선 사람은 많다. 노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씨가 현재 뉴욕대 로스쿨(L.L.M)에 유학 중이고, 부인 정연 씨도 현지에 머물고 있다. 건평 씨의 둘째 딸 현지 씨는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음대에 다니고 있다.

    우리은행은 인사철만 되면 노 대통령의 처남 권기문 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권 씨 인사는 알 만한 사람들의 관심사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은 물론 감사원까지 인사 내용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니 은행으로서는 인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튀는 인사를 하면 “대통령의 처남에게 특혜를 줬다”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단장 직급으로 승진시킨 이번 인사가 그 경우. 반대로 뒤로 밀리는 인사도 뒤통수가 가렵다. “감히 대통령 처남을…”이란 비난과 괘씸죄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구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참여정부 친인척의 움직임은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 정(靜)적인 느낌을 준다. 활동 공간이 그만큼 좁다는 의미다. 여권 한 관계자는 “친인척 관리 문제만큼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철저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언론에 거론되는 친인척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간다. 단순히 집권 4년차 증후군으로 보기에는 개운하지 않다. 로열패밀리를 둘러싼 ‘비밀의 문’은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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