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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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거리, 욕망의 뒷모습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08-28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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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네거리, 욕망의 뒷모습

    박영균, ‘노란 건물이 보이는 풍경’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이대범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안의 아르코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열리는 ‘친숙해서 낯선 풍경’에서 19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현재의 세대 감각과 그들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택한 작가는 김보민, 김영은, 권순관, 노순택, 박영균, 이제, 정재호, 조습, 그리고 최은경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조명한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불)협화음을 낸다. 그 풍경은 마치 거리투쟁이 한창이었던 때 시위대의 진로처럼, 광화문에서 시작해 주변의 다른 거리로 흩어졌다가 개인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모든 진로는 다시 광화문으로 수렴된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풍경이 재현되어 우리 앞에 등장하자, 전시의 제목처럼 낯선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것은 그 이상의 무엇을 가져다준다. 아직도 현재인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짧은 몇십 년을 한 곳에 담아보려는 무수한 시도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지를 발견한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광화문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곳에서는 정치와 경제와 언론이 하나로 만나고, 애국과 열정이 꽃피며, 시시때때로 태극기가 휘날린다. 그리고 민중이건, 대중이건, 백골단이건 그곳을 휩쓸고 지나가면 항상 쓰레기만 수북하게 남는다.

    광화문에 남겨진 것들은 우리가 그곳에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의 흔적이다. 우리는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광장과 밀실, 일상과 기억, 근대화의 잔재들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시스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및 모순을 들춰내고자 했다. 이러한 반성은 우리 사회의 허점과 틈새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발견을 하고야 말았다. 유의미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 빈 곳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떠돈다. 애국이라는 상표와 개인이라는 생산기계의 역학, 혹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억지로 재구성하는 망상과도 같은 기억. 이렇듯 아직도 광화문 네거리에는 교차하는 욕망들이 무수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심지어 폐허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곳을 채우려는 강박보다는 비어 있음 그 자체를 향유하려는 새로운 욕망일지도 모른다. 8월27일까지, 아르코미술관 소갤러리, 02-76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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