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0

2006.08.29

에세이 Correction Service의 함정

  • 케빈 리 미주교육신문 발행인

    입력2006-08-28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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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Correction Service의 함정
    미국에서는 2005년 가을 이후부터 ‘에세이 커렉션 서비스(Correction Service)’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대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 지원 시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학생이 쓴 에세이를 고쳐주는 서비스에 의존하는 학생과 부모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부모들은 ‘일생에 한 번 있는 대학 입시인데…’라는 이유로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에세이 커렉션 서비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포괄적인 것은 에세이 주제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고객의 마음에 들 때까지’ 교정 및 교열을 보는 토털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 ‘거듭난’ 에세이를 읽은 한인 부모들은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이제는 ‘고쳐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대신 써주는 서비스’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경계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받은 학생과 학부모 중에는 ‘어차피 타이핑해서 제출하는데 누가 알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나 봅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쉽게 통하진 않습니다.

    학생 인격 보고 싶어하는 대학 의도 먼저 따져봐야

    최근 미국 대학에서는 대학입학 사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와 SATI의 작문시험에 포함돼 있는 에세이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는 보통 타이핑한 상태로 제출됩니다. 따라서 사실 누가 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SATI의 작문시험에 포함돼 있는 에세이는 시험감독관이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본인 필체로 작성한 것입니다. 만약 두 에세이가 지나치게 수준 차이가 난다면, 이는 대학 당국이 ‘에세이 작성 과정에 오해’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문제는 미국의 대학 당국은 불합격 처분을 내릴 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러한 ‘오해’를 받아 불합격 처분을 받은 학생은 왜 그런 처분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에세이를 멋있게 보이려고 돈까지 썼지만, 이것이 오히려 불합격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유명 사립 보딩스쿨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의 경우 일부 사립 보딩스쿨에서 입학 지원서를 마감한 뒤 색다른 요구를 했습니다. 지난 학기 영어시간에 제출한 에세이를 선생님 서명을 받아 제출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의도는 뻔합니다. 학생들이 입학 과정에서 제출한 에세이가 실제 자기 실력에 기초한 것인지 확인하려는 뜻입니다.

    남이 쓴 에세이를 몰래 베껴 제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을 했던 한 분은, 에세이 내용이 어디서 본 듯해서 서가를 뒤지다가 마침내 ‘원본’을 찾아내고는 해당 학생을 불합격시켰다고 강연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는 이런 부정을 사후에 찾아내더라도 바로 퇴학시켜버립니다. 결코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미국 대학에서 에세이를 요구하는 것은 그 에세이를 통해 드러난 Personality(인격)를 보고 싶은 의도에서입니다. 이를 가장 잘 준비하는 방법은 학창 시절 내내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을 배우고, 글쓰기의 포맷에 대한 공부를 거쳐 좋을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을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 1, 2학년이 되어 에세이 쓸 때 소재가 많이 떠오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정식’은 ‘부정한 방법’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은 이것이 드러날까 늘 전전긍긍해야 하고, 또 본인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 대학생활에 필요한 리포트 작성이나 사회생활에서의 각종 문건 작성 때마다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배운 에세이 실력은 평생 남습니다. 훨씬 이익이 남는 투자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각종 해괴한 커닝 방법을 소개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고막 바로 옆에서 작동하는 스피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느낌은,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커닝을 하느니 차라리 그 노력을 평소 실력 쌓는 데 쓰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세이를 둘러싼 갖가지 뒷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애써 부정한 에세이를 만드느니, 평소에 에세이 실력을 조금씩 길러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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