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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6년 설움 빅리그 한 달 만에 훌훌

추신수 클리블랜드 이적 후 주전 찜 타격·주루·수비 맹활약 ‘스타 탄생’ 예고

  •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

마이너 6년 설움 빅리그 한 달 만에 훌훌

마이너 6년 설움 빅리그 한 달 만에 훌훌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물이 나왔을까. 한국인으로 두 번째 메이저리그 타자가 된 추신수(24·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뜨고 있다.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후 줄곧 마이너리그 유망주에 머물던 그가 빅리그에 진입하자마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것.

그의 소식이 미국에서 바람이라면 한국에서는 태풍이다. 그가 7월 말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뒤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하자,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런 소식을 기다리던 야구팬들이 오전에는 추신수의 성적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스타 탄생이다.

시애틀서 이치로 그늘에 가려 빛 못 봐

시애틀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던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에서 주전 우익수를 꿰찬 분위기다. 3할 타율에 이따금 터지는 홈런만으로는 그의 기량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한 주루 플레이, 강한 어깨와 포구 능력,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보여준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물건’을 건졌다며 추신수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부산고 3학년이던 2000년. 추신수는 시애틀 스카우터에게 테스트를 받았다. 스카우터는 초시계를 들고 추신수에게 홈플레이트부터 1루까지 뛰게 했다. 몇 차례나 이 과정이 반복되더니 며칠 뒤 추신수가 시애틀과 사이닝보너스 135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톱클래스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계약조건 때문이 아니었다. 추신수가 미국에 갈 것이라는 얘기는 야구계에 심심찮게 들렸지만, 투수가 아닌 타자로 계약했기에 그랬다.



추신수는 당시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18세 여린 어깨로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뿜어내며 1999년, 2000년 연속 대통령배 MVP와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청소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물론 타석에도 섰지만 여느 특출한 투수가 아마추어 팀의 4번타자로 나서는 것 이상으로 보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시애틀은 추신수의 투수로서의 능력보다 잠재된 타자로서의 재능을 더 높이 샀다. 예사롭지 않은 방망이 솜씨, 빠른 발, 강한 어깨 등 야구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춘 추신수를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이다.

2002년 여름. 시애틀 마이너리그 클럽하우스에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추신수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백인 동료 한 명을 손봐주고 있었다. 요란스럽지도 않게, 그저 오른손으로 상대의 손을 꽉 눌렀을 뿐이다. 이후 추신수를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백인 동료는 없었다. 추신수의 손목 힘을 알 수 있는 일화다.

키 180cm로 메이저리거치고는 작은 편인 추신수가 파워 넘치는 타격을 선보이는 원인도 손목에 있다. 두껍지도 가늘지도 않은 그의 손목은 순간 악력이 대단하다. 추신수가 “시속 160km가 넘는 공도 쳐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강속구를 밀어치는 손목 힘 덕분이다.

추신수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때 아버지 추영민 씨에게서 복싱선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추 씨는 마당에 철봉대를 설치하고 밑에 이불을 두껍게 깔았다. 그리고 매일 초시계로 시간을 재며 아들이 철봉에 매달려 있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파워 손목’은 이때 탄생했다.

추신수가 투수로 활약하던 시절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던 비결도 손목에 있다. 추신수는 피칭 훈련을 그만둔 지 6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150km의 스피드에 육박하는 송구를 한다. 마이너리그 투수 코치들은 틈만 나면 추신수에게 투수 전환을 권유하기도 했다. 숱한 유혹을 견뎌낸 추신수는 지금 손목 힘을 타격에서 쏟아내고 있다.

고교시절 강속구 투수 … 손목 힘 뛰어나

마쓰자카 다이스케(26). 신세대 괴동으로 불리는 일본 프로야구 대표 투수다. 이승엽과 천적관계로 잘 알려진 그는 현재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마쓰자카는 고교 시절부터 외국인 트레이너의 관리 아래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추신수는 1998년 요코하마로 연수를 갔을 때 우연한 기회에 마쓰자카, 그의 트레이너와 인연을 맺었다. 트레이너는 추신수의 근육을 체크하더니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똑같은 시간, 똑같은 강도로 해도 근육이 크게 붙는 스타일”이라며 놀라워했다.

당시 고교 3학년이던 마쓰자카는 바다 건너 야구를 배우러 온 고교 1학년생에게 인심을 쓴다는 기분으로 함께 훈련했을 것이다. 지금은 추신수가 먼저 미국으로 건너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이면 메이저리그 신인 마쓰자카와 2년생 추신수가 투타 한-일 맞대결을 벌일 수도 있다.

마쓰자카가 인연이라면 이치로는 악연이다. 추신수는 무려 6년간 이치로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2001년 시애틀에 입단한 이치로는 그해 타격왕과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단숨에 메이저리그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마이너리그에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던 추신수에게 이치로는 너무나 거대한 벽이었다.

이치로의 포지션은 우익수. 추신수와 정확히 겹친다. 이치로는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은 채 추신수에게 늘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시애틀은 최근 몇 년간 다른 외야 포지션도 정상급 선수로 꾸렸기 때문에 추신수에게는 더더욱 출장 기회가 없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팀은 그를 빅리그로 불렀지만 이내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결국 시애틀은 유망주로만 머물던 추신수를 풀어줬다. 이치로의 그늘을 걷어낸 추신수는 감춰뒀던 날개를 폈다. 그의 비행은 이제 시작됐다. 언젠간 장벽 같았던 이치로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꿈꾸면서 말이다.



주간동아 2006.08.29 550호 (p64~65)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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