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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길 위의 ‘자유와 스릴’ 만났다

출퇴근용 모터사이클로 전국 일주 … 6일간 1662km 주행, 가보지 못한 길에는 아쉬움

  •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여름, 길 위의 ‘자유와 스릴’ 만났다

여름, 길 위의 ‘자유와 스릴’ 만났다
엔진으로 바퀴를 돌리는 모터사이클(오토바이)은 자전거와 자동차의 중간에 있다. 나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육체적 힘을 이용해 달리는 자전거가 가장 좋다. 지난해 12월 이동수단으로서 모터사이클을 선택한 것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타협의 결과다.

서울은 자동차 친화적인 도시가 아니다. 도로 정체는 일상사이고, 주차는 매번 전쟁이며, 곳곳에서 카메라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 더구나 기름 값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서울이 자전거 친화적인 것도 아니다. 자전거도로는 부족하고 도로 곳곳에 터널과 언덕이 있는 데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춥다. 자전거는 도난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BMW 배기량 652cc 단기통 엔진

7개월가량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습 도로정체와 고유가, 그리고 주차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됐다. 그리하여 모터사이클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 돌리게 됐는데, 그게 바로 장거리 여행이다.

두 달 전 BMW의 배기량 652cc 단기통 엔진의 F650GS 기종을 중고로 구입했을 때, 내 평생 첫 전국일주 여행의 실현 가능성이 함께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듀로 바이크(비포장도로 등 혹독한 환경에 적합한 바이크)’로 분류하는 이 기종은 최고 시속 170km에 아무리 경사가 가파른 언덕도 힘차게 오르는 파워, 그리고 휘발유 1ℓ당 30km 가까이 달리는 경제성을 동시에 갖췄다.



여행 첫날인 월요일(8월7일) 오전 9시, 나는 텐트와 침낭 등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 좌석 뒤쪽에 잘 동여 묶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집을 출발했다.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동해안에 이른 뒤, U자 형태가 되게 한반도를 돌아본다는 계획이다. 일주일간 계획대로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 나는 모터사이클로 하루 200km 이상 달려본 적이 없고, 중간에 타이어 펑크 등 사소한 고장에도 전혀 무방비인 반쪽 라이더였기 때문이다.

오전 9시는 사실 출발 시간으론 다소 늦다. 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폭염은 아침 햇살조차 뜨겁게 달궈놓았다. 보호 패드가 들어 있어 묵직한 BMW의 투어용 재킷을 입고 무릎보호대까지 착용하자 벌써 등에 땀이 흥건했다. 이럴 때는 달리는 것이 상책이다.

23번 지방도를 타고 성남까지 간 뒤, 3번 국도로 갈아타고 이천시와 장호원읍을 거쳐 내처 충주시까지 달렸다. 오후 2시 무렵 나는 동해안의 울진까지 곧장 이어지는 36번 국도 위를 평균 시속 70km로 달리고 있었다. 땀을 씻겨줄 정도의 바람, 기분 좋은 단기통 엔진의 적당한 진동과 통통거리는 경쾌한 엔진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단, 도로 위의 무법자만 아니라면 말이다.

시내 주행에서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택시다. 언제 손님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텅텅 비다시피 해 속도를 꽤 낼 수 있는 국도에선 건설 자재 운반용 덤프트럭이 최고의 적이다. 이들은 시커먼 배기가스를 쏘아댈 뿐 아니라 뭔가를 조금씩 흘리고 다닌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달릴 때, 공중의 모래 한 톨도 시속 100km의 속도로 라이더를 향해 날아든다. 헬멧 실드에 부딪히면 ‘떵’ 하며 큰 소리를 낼 정도의 충격이 있다. 그러니 덤프트럭을 만나면 머리를 모터사이클의 방풍막 뒤로 숨기고 재빨리 추월하는 것이 상책이다.

여름, 길 위의 ‘자유와 스릴’ 만났다
36번 국도에서 오후 4시쯤 여행의 동반자를 만났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헤드라이트를 쏘아대며 뒤를 쫓아왔다. 얼마 뒤 서로의 차량을 세우고 통성명했다. 충북 영동군의 소방대원인 김덕기(37) 씨. 그는 바이크 마니아들 사이에서 ‘알원’으로 통하는 야마하의 배기량 998cc짜리 YZF R1 기종을 타고 연애 시절 추억의 장소들을 2박3일 일정으로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특수부대 출신에 119 구조대원 경력 7년의 노총각인 그는 화려한(?) 경력답지 않게 부드럽고 앳된 얼굴의 소유자다. 울진까지 동행했고, 바닷가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한 뒤 여행 노선이 달라 헤어졌다.

나는 해안도로인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이어서 인근 백석해수욕장에 짐을 풀까 잠시 고민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트로트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해수욕장의 경박한 분위기가 싫어 원래 계획대로 칠보산자연휴양림까지 가기로 했다.

자연휴양림까지의 거리는 불과 6km.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비포장 산길을 달리는 야간주행이라 힘들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해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시속 20km 정도의 속도로 달린 끝에 겨우 휴양림에 도착했다. 야영장에 짐을 푼 뒤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텐트 안에 누우니 자정이 넘었다. 첫날 주행거리는 411km.

‘헝그리 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자연휴양림에서의 캠핑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에 112곳의 휴양림이 있으며 이 중 국유 휴양림 36곳 대부분이 야영이 가능하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56곳, 개인이 운영하는 20곳 중에는 야영을 할 수 없는 곳도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자연휴양림에서 텐트 포스트 이용은 예약제가 아니라 당일 선착순제다. 국유 휴양림의 경우 입장료 1000원에 캠핑 데크 사용료로 2000~4000원을 받는다. 취사시설은 기본이고 샤워시설을 갖춘 곳도 있어 불편함이 거의 없다.

거미줄 도로 네비게이션 특히 유용

다음 날 낮 12시. 나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백합조개가 듬뿍 들어간 칼국수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한 뒤 동해의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지만 바닷물과 공기의 온도 차이 때문에 수면 위엔 안개가 자욱하다.

7번 국도보다는 해안에 좀더 가까운 20번 지방도가 달리는 맛이 더 있다. 도로는 한적했고, 적당히 굴곡진 코스는 라이딩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자동차는 앞바퀴를 꺾어 회전하지만, 두 바퀴의 바이크는 라이더가 몸을 눕혀 얻는 구심력으로 회전한다. 곡선 코스에 진입하기 직전, 속도를 적당히 줄이며 기어를 저단으로 변속해놓은 뒤 몸을 누이고 스로틀을 조금씩 열면서 곡선으로 나아간다.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엔진 배기량이 적어도 250cc 이상 되는 모터사이클이 적당할 듯하다. 언덕길 위에서도 자동차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가 돼야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렌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름, 길 위의 ‘자유와 스릴’ 만났다
운전면허증이 있어도 배기량 125cc 이상 모터사이클을 타려면 2종 소형 면허를 따야 한다. 모터사이클은 배기량에 따라 성능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고배기량의 바이크를 타려면 낮은 배기량부터 시작해 조금씩 배기량을 높여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망이 탁 트인 영덕의 해맞이공원 등대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 등대 앞엔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정해경(50) 씨가 있었다. 그는 5년째 경주에서 이곳까지 출퇴근한다. 군에서 사진병에게 어깨 너머로 배운 사진 기술이 그의 평생 직업이 됐다. 20년 동안 경주 불국사 등 관광지를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가지고 간 카메라로 몇 장 찍어달라고 청했다.

경주를 거쳐 저녁 무렵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 수영구의 할머니 댁에서 묵었다. 더위가 더욱 기승이다. 보양식으로 무장한 뒤 새벽 주행으로 무더위를 우회 돌파하기로 한다. 여행 나흘째인 10일 새벽 4시 반쯤 길을 나섰다. 아직 어둑한 부산 시내엔 라이더들의 적인 택시들만 질주하고 있었다. 시내를 빠져나와 서쪽으로 향하는 2번 국도를 탄 뒤, 텅 빈 도로에서 잔뜩 속도를 냈다.

도로 주변은 안개가 자욱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속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마산을 거쳐 진주에 도착했을 때 시계침은 오전 6시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차선 국도를 빠져나와 지도에도 없는 도로를 탔다. 논과 논 사이 길도 달렸다.

네비게이션의 위력은 대단했다. 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는 바이크 여행자에게 네비게이션은 특히 유용하다. 국도와 지방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속에서도 전혀 헤맬 필요가 없다. 경로를 벗어나면 다른 경로를 찾아주기 때문에 모르는 길도 도전할 수 있다. 또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표시돼 도착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하동을 지나니 곧 전라남도다. 861번, 60번, 1023번 지방도로를 갈아타며 지리산 깊숙이 자리한 지리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옆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저녁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지리산의 밤공기가 선선해서 오랜만에 깊은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새벽 지리산은 먹이를 구하러 나온 짐승들로 부산스러웠다. 도로 위에서 까마귀와 까치, 다람쥐들이 먹이를 주워 먹다 엔진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곤 했다.

해발 1172m의 정령치휴게소에서 바라본 전망은 시원했다. 산들이 끝도 없이 출렁거렸다. 지리산은 듣던 것보다 더 컸다. 지리산 안에 수십 개 마을이 있고 논밭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보성차밭을 둘러보고 광주로 올라가 하루를 묵었다. 광주에선 대학 졸업 이후 13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20만원 남짓 알뜰살뜰한 여행

여행의 마지막 밤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23번 국도 위에서 영광, 부안, 김제를 거치며 북상하는 동안 하늘은 높고 파랬다. 얼굴에 부딪히는 햇살도 이전처럼 따갑지 않았다. 바람엔 미세하게나마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오후 4시 무렵 부안을 지날 때쯤 이번 여행에선 처음으로 먹구름을 목격했지만,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토요일 밤의 안면도는 ‘편안히 잠잘 수 있는 섬 안면도(安眠島)’가 아니라 ‘불면도(不眠島)’였다. 펜션만 수백 개가 넘고 모텔과 여관, 민박 등 온갖 숙박시설이 집결해 있는 섬에 잘 곳이 없었다. 숙박시설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독서로 우아하게 보내려던 계획은 무참히 깨졌다. 2시간을 헤맨 끝에 꽃지해수욕장 부근 야영장에 2만원을 내고 텐트를 쳤다.

안면도는 잠을 잊은 사람들 천지였다. 자정이 조금 넘어 바로 옆에 떠들썩하게 텐트를 친 4명의 젊은이들은 오전 1시 반쯤 삼겹살을 구워 먹고 고스톱을 치며 놀다가 오전 4시부터 부근 주차장으로 나가 폭죽놀이를 벌였다.

끔찍한 밤이었지만 다음 날 새벽 돌아본 안면도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77번 도로를 타고 남쪽 끝에 있는 영목항까지 가서 아침식사로 먹은 1만원짜리 게장백반은 푸짐했고 맛도 훌륭했다.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달리는 운치가 있었다.

오전 10시 영목항을 출발해 190km를 달려 일원동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7분. 도로 위에서 빠르게 달린 만큼 여행도 빠르게 끝났다. 운행하지 않은 부산에서의 하루를 제외하고 6일간 풍경의 일부가 되어 1662km를 달렸다. 일정이 너무 빠듯했고 길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은 더 큰 아쉬움이다.

주유비는 12ℓ씩 네 번을 주유해 약 7만2000원이 들었다. 식사와 숙박비용은 10만원 조금 넘었다. 이만한 알뜰여행이 어디 또 있을까. 棟



주간동아 2006.08.29 550호 (p58~60)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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